제자리비행의 명수인 토종 텃새 우리나라 400여종 조류 중에서 가장 멋있는 놈을 고르라면 난 단연 황조롱이(천연기념물 323호)를 꼽고 싶다. 매목(─目 Falconiformes) 매과(─科 Falconidae)에 속하는 중형의 맹금(猛禽)으로 까치처럼 우리 땅에서 사계절을 보내며 우리나라에서 번식한 순 토종이다. 물론 황조롱이는 유라시아대륙 전역에 골고루 분포하지만 먼 거리를 이동하는 철새가 아닌 일정한 세력권을 가지고 우리주위에서 생활하는 텃새이다. 황조롱이의 가장 큰 특징은 제자리비행(정지비행 : Hovering Flying)을 한다는 점이다.
꼬리깃을 부채꼴로 펼치면서 머리는 지상을 쳐다보고 양 날개를 펄럭이며 정지비행을 할 때는 주로 지상의 먹이를 노리고 있을 때이다. 목표물을 찾으면 쏜살같이 활강하여 날카로운 발톱으로 잽싸게 덥친다. 황조롱이의 사냥술은 모든 맹금류가 마찬가지지만 잘 발달된 눈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공중의 높은 곳에서 들쥐 같이 작은 먹이를 찾을 때는 눈을 망원렌즈처럼 클로즈업했다가 정해진 목표를 향해 돌진할 때는 광각렌즈처럼 넓은 시야로 점차 변한다. 인간이 이용하는 카메라의 줌렌즈 보다 더 완벽한 줌 기능의 눈을 지녔다.
뛰어난 적응력으로 도시에도 서식 도시화, 산업화로 삼림이 줄어들고 자연환경이 점차 악화되고 있는 오늘날 야생조류도 개체수가 현저하게 줄고 있고, 크낙새처럼 거의 멸종상태에 이른 것들도 있다. 그러나 황조롱이는 까치처럼 인간이 만든 주변의 환경에 비교적 잘 적응해 산다. '도시의 사냥꾼'이란 새 별명을 얻은 것처럼 자연환경이 척박한 대도시 주변에도 그들은 강인한 생명력을 유지해 오고 있다. 아파트 옥탑이나 고층의 베란다 화분, 도시의 광고탑, 교통감시 카메라 철탑 등 인간이 만든 구조물에도 둥지를 튼다. 먹이를 찾아 도심으로 역 이주 했는지, 원래 황조롱이가 살고 있던 곳인데 인간이 파괴한 자연에서 어쩔 수 없이 황조롱이들이 적응해 살고 있는지 조류학자들이 연구 할 대상이다.
황조롱이와 까치는 영원한 맞수이다. 크기는 까치가 10cm정도 크지만, 1대1 싸움에서는 당연히 날카로운 발톱과 부리를 가진 황조롱이가 이긴다. 황조롱이가 까치집을 빼앗아 둥지를 트는 경우가 이를 말해 준다. 그러나 까치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세력권 안에 황조롱이부부가 오면 근처의 까치들을 다 불러 집단 공격을 한다. 빼앗긴 둥지에도 끊임없이 찾아가 괴롭힌다. 인간 거주지 주변에서 번식하는 황조롱이와 까치의 주도권 싸움을 보고 있으면 왠지 처량한 생각이 든다. 물론 생태계의 약육강식과 경쟁논리가 당연히 존재하겠지만 인간들의 개발 탓에 얼마 남지 않은 번식처(전망 좋은 곳의 듬직한 나무)를 놓고 치열한 생존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들쥐잡이의 명수 황조롱이부부 대부분의 맹금류처럼 황조롱이도 암컷이 수컷보다 크다. 수컷이 33cm정도, 암컷은 38.5cm 정도이다. 비행술에 능숙하지 못한 작은 새의 날개 길이가 어미보다 길다. 수컷의 등은 진한 갈색에 옅은 갈색의 반점이 있으며, 황갈색의 배에는 커다란 검정색 반점이 흩어져 있다. 머리는 회색, 꼬리는 회색 바탕에 넓은 검정색 띠가 있고 끝은 흰색이다. 암컷의 등은 진한 회갈색으로 암갈색의 가로무늬가 있다. 꼬리는 갈색이고 어두운 색의 띠가 있다. 울음소리는 '키, 키, 키' 또는 '킷, 킷, 킷'하고 날카로운 소리를 낸다.
황조롱이는 주로 들쥐를 잡아먹는다. 작은 새나 곤충들도 잡아먹지만 번식기 수컷이 잡아오는 먹이를 보면 70% 이상이 쥐이다. 새홀리기처럼 갓 부화한 새끼들에게는 잠자리와 같은 곤충들을 잡아다 주지만 그 기간은 극히 짧다. 대부분 쥐를 잡아 잘게 찢어 먹여주다가 새끼들이 어느 정도 크면 스스로 찢어 먹게 들쥐를 통 채로 던져다 준다. 4월부터 7월까지 번식기로 2~5개의 알을 낳아 암컷이 주로 포란하고 수컷은 열심히 먹이를 잡아다 준다. 27~29일 포란 후 새끼들이 부화하면 암컷은 초기 10여 일간은 둥지를 지키며 수컷이 잡아온 먹이를 새끼들에게 공급하다가 새끼들이 어느 정도 크면 수컷과 동시에 사냥에 나선다. 이 때 종종 까치들이 습격해 새끼들을 없애는 경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