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환율 제도를 바꾸고 위안화 가치 평가를 높였다. 중국 현지 날짜로 지난 7월 21일 중국인민은행은 위안화의 '페그(peg) 제도'를 폐지한다고 밝혔다. 동시에 앞으로 위안화 환율은 복수 통화 바스켓 제도에 따라 변동하는 시스템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변동 폭이 적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미비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이 이른바 관리변동환율제를 도입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중국은 오늘날 세계 경제의 성장 엔진이라고 부를 만큼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크다. 그런 점을 감안할 때 중국의 환율 내지 환율제도 변경은 중국은 물론 세계 경제와 우리나라 경제에도 큰 의미가 있다. 중국의 이번 조치가 무엇을 뜻하는지, 이번 조치는 어떤 사정을 배경으로 나온 것인지, 향후 전망과 함께 알아보자.
변동환율율제도와 고정환율제도 오늘날 세계 대부분의 나라는 환율이 외환의 수급(수요와 공급)에 따라 자유로이 정해지고 수시로 변할 수 있게 하는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이런 환율 제도를 '변동환율제도(floating exchange rate system)'라고 한다. 변동환율제도는 1973년 이래 세계의 대세다. 우리나라도 변동환율제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과 홍콩 등 몇몇 나라는 예외적으로 '고정환율제(fixed exchange rate system)'를 운영하고 있다. 고정환율제란 변동환율제와 달리 자국 통화와 외화의 환율을 '1 달러에 얼마' 식으로 고정시키는 환율 제도다.
중국은 지난 1994년 이후 지금까지 12년 동안 위안화의 가치를 미국 달러화에 1달러 당 8.28위안의 비율로 고정시켰다. 그래놓고, 달러 당 8.28위안을 기준으로 상하 0.3% 안에서만 외환시장에서의 통화 수급 사정에 따라 위안화 시세가 변할 수 있게 허용하는 제도를 운영해 왔다. 이렇게 자국 통화의 가치를 특정한 외환의 가치에 고정시켜 운영하는 환율 제도를 '페그 제도', '페그 시스템(peg system, Pegged exchang rate system)'이라고 한다. '페그(peg)'란 본래 쐐기못을 뜻한다. 페그 시스템은 쐐기를 박듯 고정한 시스템을 가리키는 말이다.
복수 통화 바스켓 제도로 변경 중국의 환율제도는 이번 인민은행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페그 시스템을 유지한다. 달라진 점은, 이제까지 위안화 시세를 오로지 미국 달러 시세 하나에만 고정해 연동하게 했던 것을 포기하고 향후 미 달러뿐 아니라 유로화, 엔화, 원화 등 여러 통화의 시세를 기준으로 삼아 연동하게 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단일 통화 페그 시스템에서 복수 통화 페그 시스템으로 환율제도를 전환한다는 이야기다.
중국이 채택한 새로운 환율제도는 공식적으로는 '복수 통화 바스켓 제도(Multiple Currency Basket Peg System)'라고 부른다. 위안화의 환율을 결정하는 복수 통화 바스켓 제도는 위안화 환율을 예전처럼 달러 하나에만 연동시켜 정하지 않고 중국이 주로 국제교역에서 많이 쓰는 여러 통화의 시세에 연동시켜 정하는 환율제도다. 인민은행이 밝힌 바로는, 앞으로 위안화 환율은 우선 미 달러화나 유로화 혹은 엔화 등 여러 통화(즉, 복수 통화)를 한 개의 바구니(곧 바스켓)에 담고, 바구니에 담은 각 통화별로 위안화의 환율 평균치를 산출하고, 여기에 중국 내 경제성장률이나 물가상승률을 감안해 정한 수치로 기준치(기준가격=기준환율)를 삼게 된다.
은행 간 외환시장에서 장이 마감되고 나면 인민은행이 통화 바스켓 내 여러 통화의 시세 평균을 감안해 위안화 대비 달러 환율의 종가를 공시하는 식으로 기준환율을 공시한다. 위안화 대비 달러의 환율이 기준으로 공시되면 유로화나 엔화, 원화 등 다른 통화의 시세 역시 인민은행이 공시한 위안화 대비 달러의 기준시세 범위를 따라 결정될 것이다. 새 제도를 이행하면서 인민은행은 하루 중 가능한 위안화 환율변동폭을 여전히 기준환율 ±0.3%로 고정했다. 다만 이전에 달러 당 8.28위안이던 기준환율을 전보다 2.1% 올려, 달러 당 8.11위안으로 고시했다. 12년 만에 2.1%의 위안화 평가절상이 이루어진 셈이다.
변동환율제로 넘어가는 중간 단계 단일 통화 페그 시스템에서 복수 통화 바스켓 제도로 환율 제도를 전환함으로써 위안화는 이제 달러에만 연동되던 시절을 떠나 여러 외환의 시세를 따라 함께 움직이게 된다. 그만큼 중국의 환율제도엔 유연성이 높아지고, 위안화 시세에는 더 많은 시장원리가 작동하게 된다. 그러나 완전한 변동환율제에 비한다면 복수 통화 바스켓 제도는 고정환율제에 가깝다. 변동환율제의 변형으로 봐준다 하더라도, 중앙은행이 바스켓 환율을 참고해 시장의 외환 수요와 공급을 반영해 환시세를 결정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관리변동환율제도에 속한다. 이런 뜻에서는 준변동환율제도 혹은 제한적 변동환율제도라고 부를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는 복수 통화 바스켓 제도를 고정환율제에서 변동환율제로 넘어가는 중간 단계에 해당하는 환율제도로 본다. 이 제도는 특정 통화 가치가 급하게 상승 또는 하락하더라도 다른 통화의 시세를 반영해 위안화 시세 변동폭을 줄임으로써 환율의 급격한 변화가 자국 경제와 금융시장에 가져오는 충격을 완화하고 시장 안정을 꾀할 수 있는 점, 중앙은행이 기준환율을 정할 때 물가상승률이나 경제성장률과 같은 국내 경제변수를 제한적으로나마 반영함으로써 환시세를 자국 경제 사정에 보조를 맞춰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점 등이 두드러진 장점이다. 시장평균환율제도 역시 고정환율제와 비슷한 환율 제도다. 정부가 은행간 거래환율의 당일 변동폭을 0.4%로 제한하고 금융결제원이 전날 은행 간 시장에서 거래된 현물 환율을 외환 거래량으로 가중평균해서 계산해낸 '시장평균환율'이라는 것을 고시함으로써 다음날 외환거래 때 기준환율로 삼게 했다.
중국 안팎의 압력으로 제도 변경 이번에 중국이 전격적인 위안화 평가절상과 환율제도 유연화로 나선 데는 근년 중국을 안팎에서 압박한 두 가지 압력이 요인으로 작용했다.
하나는 중국 내부로부터의 압력이다.중국엔 지난 10여 년 동안 왕성한 수출로 무역흑자가 누적되고 외국인투자가 급증해 외화가 엄청나게 유입됐다. 시장 원리로 따지면, 중국시장에서 외화가 늘어나고 위안화로의 환전 수요가 늘어나면 위안화 가치는 높아지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중국 외환당국은 달러 당 8.28위안으로 시세를 고정한 고정환율제를 운영했고, 이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위안화 시세를 끌어내려야 했다. 그래서 외환시장에 개입, 계속 외화를 사들이고 위안화를 팔았다.
그 결과 외환보유액은 7000억 달러에 이를 정도로 급증했고, 시중에는 위안화 유동성이 엄청나게 풀려 물가를 끌어올리고 부동산 가격을 급등시켰다. 이처럼 부작용이 커지는데도 위안화 시세를 계속 낮은 수준에 묶어 유지한다는 것은 경제 불안, 나아가 정치 불안을 자초하는 일이 된다. 이런 배경에서 중국은 '고정환율제 유지→통화 팽창'이 야기하는 경제 불안, 정치 불안의 수위가 높아지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다른 하나는 위안화 평가절상을 촉구하는 바깥으로부터의 압력이다. 근년 대중 무역적자가 확대일로에 있는 미국은 물론 일본과 유럽 국가들은 중국을 상대로 위안화 절상을 포함한 환율제도 개혁을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각국은 특히 중국 기업들이 미 달러에 고정시켜 지나치게 저평가된 위안화 환율로 값싸게 제품을 수출함으로써 무역흑자를 쌓고 있다고 비난해왔다. 이런 비난의 선봉에 미국이 있다. 미국은 부시 정권 이후 경상수지 적자가 매년 큰 폭으로 늘어, 6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늘어나는 경상수지 적자를 덜기 위해 미국은 달러 가치를 떨어뜨림으로써 미국이 수출하는 상품, 서비스 가격은 싸게 하고 상대적으로 외국 상품, 서비스 가격은 비싸게 만들어 수입을 줄이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중국은 고정환율제를 운영하고 위안화 가치를 미 달러에 연동시킨다. 달러 가치가 떨어지면 위안화 가치도 그만큼 함께 떨어져 미국의 약 달러 정책이 중국에는 먹히지 않는다. 이런 이치로, 중국은 미국이 달러 가치를 떨어뜨리는 동안에도 여전히 미국을 향한 수출 공세를 계속하며 무역흑자를 늘려왔다. 결국 미국은 다른 나라들과 함께 중국을 향해 환율제도의 변경과 위안화 가치의 절상을 강력히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중국은 상당 기간 동안 미적거리면서 미국, 일본, 유럽 등과 위안화 절상 문제를 놓고 밀고 당기는 실랑이를 계속했다. 급기야 미국은 위안화를 절상하지 않으면 중국산 대미수입상품에 고율 보복 관세를 물려 수출을 막겠다는 의회 결의로 중국을 압박했다. 이번 중국의 환율제도 변경과 위안화 가치 절상은 이 같은 미국 등의 압력 등을 중국이 수용한 결과이기도 하다.
추가 평가절상은 좀 더 지켜봐야 중국의 이번 위안화 평가절상은 그 폭이 2%로 미미한 수준이다. 이 정도의 평가절상이 세계 무역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라면 당장은 '간에 기별도 안 가는' 수준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일단 중국이 그 동안 미 달러화에 고정시켜 왔던 위안화 환율을 포기하고 엔화, 유로화 등 복수통화에 연동하는 이른바 관리변동환율제를 도입했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
이번에 제도 변경에 나서게 만든 안팎의 여건을 감안할 때 중국은 앞으로도 추가적인 위안화 절상, 나아가 완전한 변동환율제로 나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민은행도 '향후 중국의 금융과 경기 상황에 따라 변동폭을 조정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중국 경제의 성장세가 지속될 경우 위안화 시세를 추가 절상할 가능성을 열어 놓은 셈이다. 전문가들은 위안화가 지금 수준에서 대략 10% 내지 30%까지 추가 절상 여력이 있다고 본다. 중국의 무역흑자, 미국의 상대적 적자폭 확대와 국제 경제의 균형 유지 등 다양한 변수를 고려한 수치다.
문제는 위안화 추가절상이 중국 경제에 미칠 영향을 중국 정부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점이다. 위안화 절상은 중국의 수출 증가 속도를 둔하게 만든다. 앞으로 추가절상을 한다면 수출 둔화가 한층 심해질 것이다. 수출 둔화는 실업을 늘려 정치·사회적 불안요인을 증대시킨다. 중국 정부가 가장 염려하는 시나리오다.
그런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아지면 위안화 추가 절상은 여의치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중국 경제는 '자전거 경제' 수준이다. '경제가 쓰러지지 않고 굴러가기 위해서는 계속 페달을 밟아야 하는 현실에서 페달 밟는 속도를 줄이기가 쉽지 않을 것(월스트리트저널)'이다. '경제 복지는 정부가 책임진다'며 자본주의 경제 도입 후 빈곤한 국민을 설득해 온 중국 정부로서는 경기가 둔해질 경우 국민의 불만을 감당하기가 한층 어려울 것이다.
미국이라고 해서 위안화 절상을 무조건 반길 입장도 못된다. 위안화 절상은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 증가폭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지만 다른 편에서는 미국 국민이 수입해 쓰는 중국제 저가 소비품 가격을 올리기 때문이다. 위안화 평가절상으로 수입물가가 올라 인플레이션이 확산된다면 미국에도 큰 사회문제가 생긴다. 부시 정부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의회의 강경 자세에도 불구하고 위안화 절상 요구를 적극 밀어붙이지 못했다. 결국 향후 위안화의 추가 절상은, 되더라도 시간을 두고 진행될 것이고 절상폭도 큰 걸음을 딛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