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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메르 제국의 영광, 앙코르(Ankor)

앙코르 왕조의 역사를 증명하기 위해
400여 년의 깊은 잠에서 깨어난 '앙코르'
앙코르의 영광은 오늘날도 살아 숨쉬고 있다.

글 | 박하선/사진작가·여행칼럼니스트


캄보디아 밀림 속의 수수께끼
이 지구상 곳곳에서는 일찍이 수많은 문명들이 피어나 전성기를 누리다가 어느 틈엔가 사라지곤 했다. 그 문명들은 모두가 나름대로의 특색을 갖고 있었으며, 오늘날까지도 어떤 것들은 신비의 베일에 싸여 많은 수수께끼를 남긴 채 깊은 관심의 대상이 되곤 한다. 그 대표적인 문명의 하나가 캄보디아의 밀림 속에서 피어난 '앙코르(Ankor)'다. 앙코르는 고대 크메르 왕국 앙코르 왕조시대(9∼15세기)의 유적군 소재지로 1431년 크메르 왕조의 수도가 남동 메콩강 본유역에 천도된 것을 계기로 버려져 그 존재가 잊혀져 있었으나, 현재는 캄보디아의 대표적 관광지이다.

기심으로 발견한 역사의 신비
19세기에 '앙리 무오'라는 프랑스 박물학자가 있었다. 그는 이 밀림 지대를 다니면서 나비를 채집하다가 원주민들로부터 전해오는 이상한 소문을 들었다. 이 밀림의 한쪽에는 악마의 저주가 내리는 곳이 있다는 것. 그래서 조상 대대로 어느 누구도 그 근처에는 얼씬도 해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 소문에 호기심이 당긴 박물학자는 원주민들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설득하여 그 악마의 숲을 찾아 나선다. 밀림은 그야말로 앞을 분간하기도 힘들뿐만 아니라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거기다가 '악마의 저주'가 기다리고 있다고 하니 공포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그 밀림 속에서 드디어 기기괴괴한 형태의 구조물들과 직면하게 되자 안내하던 원주민들은 혼비백산하여 달아나고 자신 또한 두려움에 한동안 정신을 잃을 정도였다. "정말 이곳은 악마의 집인가!" 잠시 후 정신을 가다듬은 그는 용기를 내어 온갖 나무 뿌리들과 이끼들로 뒤범벅이 된 돌들을 딛으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악마의 집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섰다. "우아∼, 세상에…!" 잔뜩 긴장하고 있는 앙리 무오의 눈앞에는 엄청난 사실이 꿈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밀림 사이사이로 우뚝 우뚝 솟아 있는 해묵은 거대한 돌탑들이었다.

이렇게 엄청난 발견을 하게 된 앙리 무오는 귀국하여 곧 바로 보고서를 냈다. 하지만 당시에는 첨부된 사진이 없어서인지 어느 누구도 그 보고서를 믿어주지 않았다. 답답한 그는 곳곳을 다니면서 열변을 토해봤지만 모두가 허사였고 도리어 그를 정신병자 취급을 했다. 결국 그는 현지에서 얻어온 말라리아가 발병하여 병상에 누워 '앙코르! 앙코르!'만을 외치다가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 후 앙리 무오의 귀중한 보고서는 도서관의 자료실에 잠들어 있게 된다. 그러다 어느 날 인도차이나 식민지를 관할하던 한 해군 장교의 관심을 받게 되어 그 보고서를 밑바탕으로 탐사 작업에 들어가게 되고, 1873년 드디어 크메르 제국의 영광 앙코르가 400여 년의 깊은 잠에서 깨어나게 된 것이다.

비라문교와 불교 양식이 공존
앙코르는 캄보디아 프놈펜 북서쪽 약 250㎞, 주도(州都) 시엠레아프 북쪽 5㎞의 톤레사프호 북안(北岸) 근처에 있다. 유적군은 동서 약 20㎞, 남북 약 10㎞에 걸쳐 산재되어 있다. 이곳에 포함되는 수십에 이르는 유적 가운데는 특히 '앙코르와트'와 '앙코르톰'이 유명하다. 앙코르는 산스크리트어로 '나라', '도읍'을 뜻하는 '나가라'에서 어원이 나와, 후에 캄보디아인은 사투리로 '노코르(Nokhor)'라 부르고 이것은 다시 앙코르가 되었다. 앙코르와트는 12세기 중반 경에 건립된 사원이다. 앙코르 왕조의 전성기를 이룩한 수비아바르만 2세가 바라문교 주신의 하나인 비슈누와 합일하기 위하여 건립한 바라문교 사원이다.

그러나 후세에 이르러 불교도가 바라문교의 신상을 파괴하고 불상을 모시게 됨에 따라 불교사원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건물·장식·부조(浮彫) 등 모든 면에서 바라문교 사원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앙코르톰은 톤레사프호(湖)의 북방에 위치한 유적으로 앙코르(王都) 톰(大), 즉 '대왕도'라는 뜻이다. 현존하는 유구(遺構)는 자야바르만 7세(1181∼1218?)가 왕국의 수도로서 조영한 것이다. 앙코르톰의 핵심 유물은 바이욘묘로서 앙코르와트와 함께 앙코르 문화의 쌍벽을 이루고 있다.

역사 속의 비밀을 간직한 유적
앙코르의 재발견 이후 그 엄청난 규모와 화려함 등이 세상을 놀라게 해 오면서 많은 추측을 낳고 있지만, 오늘날까지도 이 앙코르 유적에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하나, 둘이 아니다. 그 중에서도 이 엄청난 문명의 멸망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한 채 가장 궁금해하고 있을 뿐이다.
"제국의 용사들이여! 그들은 과연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가?"
금방이라도 벽에서 튀어나와 춤을 출 것만 같은 '압사라' 천녀들에게 물어볼까. 앙코르톰의 분위기를 꽉 잡고 있는 '바욘상'의 미소 띈 얼굴들에게 물어볼까. 그것도 아니면 저 밀림 너머로 지는 붉은 태양을 붙들고 물어볼까. 밀림 속 곳곳에서 오늘도 앙코르의 영광은 살아 숨쉬고 있다.

* 앙코르의 신비한 풍경들은 새교육 11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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