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8월 어느 날 하와이에 있는 동서문화센터의 기숙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동일한 목적으로 초청되어 같은 방을 쓰게 되어있는 한 교육자가 나보다 며칠 늦게 동경에서 도착했다. 짐을 방안에 들어놓은 뒤 곧바로 화장실을 다녀온 그는 짐을 정돈하는 것은 제쳐둔 채 건너편 침대위에 앉아 무엇인가 손에 들고 요리조리 살펴보면서 혼자 무엇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젊은 세대들의 역사인식 안타까워 슬쩍 쳐다보는 순간 서로의 시선이 마주치자 그는 다소 당황한 듯이 정색을 하면서 무의식중에 다음과 같은 말을 틀어놓았다. “미국과는 언젠가는 다시 한 번 붙어야 하는데 아직은 안(되겠군…)”하면서 끝을 흐렸다. 그가 화장실에서 가지고 온 것은 화장지 조각이었다. 당시만 해도 미국의 화장지의 질이 일본 것보다 월등하게 좋은 것을 발견하고 놀랐든 것이었다. 생각할수록 놀라운 그의 태도와 관심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그는 동경교육대학을 나와 마지막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했던 교육계의 엘리트이었다.
지난 8월 6일과 9일에 히로시마(広島)와 나가사기(長崎)에서 각각 거행되었던 원자탄 투하 6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했던 일본 총리와 수많은 국민들은 과연 침략전쟁을 사죄하고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면서 세계평화만을 기원했었을까?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두 기념식을 보면서 35년 전 하와이에서 만난 그 일본 교육자의 일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일본은 이미 군사대국이며 단지 형식과 제도상의 뒷받침을 위한 수순만을 밟고 있을 뿐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은 지난날 침략을 받았던 사람들의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5년 전 일본의 어느 대학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해 10월 1일 중국 유학생 전원이 결석해서 저녁에 대표학생을 불러 연유를 물어 봤더니 다음과 같은 인상적인 이야기까지 듣게 되었다. “오늘은 우리나라 건국기념일이라 중국 유학생 전원이 별도 장소에 모여 국기를 게양하고 기념식을 거행한 후 식사도 같이 하고 학교는 전원이 쉬기로 했습니다” 그들의 국가의식이 확고한데 놀라서 어떻게 그와 같은 행사를 주선했느냐고 캐물었더니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국에서는 소학교부터 ‘애국교육’이 철저해서 애국심과 국가의식은 확고합니다” 이것이 바로 얼마 전 중국에서 반일운동이 확산되었을 때, 일본 외무장관이 거론한 이른바 ‘반일교육(反日敎育)’을 말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유학생 가운데는 태극기를 갖고 있는 학생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광복절이나 3․1절에 기념식을 생각하는 학생은 물론 없었으며, ‘명성황후 시해사건’도 알지 못하는 학생이 많았다. 일본이 ‘방재(防災)의 날’로 정해두고 전국적인 행사를 하는 9월 1일에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사건’에 대해 물어봐도 알고 있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 젊은 세대들의 역사인식을 보고 우리의 역사교육이 얼마나 잘못되어왔던가를 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문제가 양국간의 외교문제화 된지 오래며 특히 최근에는 그 왜곡의 정도가 심해져 그 저의를 들어내기 시작하면서 우리국민의 감정을 더욱 분노케 하고 있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끈질긴 시위가 계속되는가 하면 또한 일본의 일부 지각 있는 양심세력과 연대하여 왜곡된 교과서 채택을 저지하는데 안간 힘을 쏟고 있다고 보도되기도 한다.
지난 8월 3일에는 서울시가 일본의 왜곡된 역사교과서 채택 저지를 위해 산하 전 공무원들로부터 성금 1억3200만원을 모아 ‘아시아 평화와 역사교육 연대’측에 전달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리고 ‘동북아의 평화를 위한 바른 역사 정립 기획단’에서는 왜곡된 교과서 채택을 반대하는 광고를 일본 내의 신문에 게재하기 위해 모금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나 여의케 진전되지 않고 있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국민들은 착잡한 감정을 억누르기 어려웠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독도문제, 역사교과서의 왜곡문제, 식민통치동안에 저지른 각종 잔악행위에 대한 사과 등의 일련의 문제는 일본의 인접국과의 관계에 대한 잘못된 역사인식과 맥을 같이 하고 있으며, 바로 이것이 모든 문제의 근본원인이라 봐야 할 것이다.
우리의 요구에 무반응인 일본정부 정치인들과 유력인사들은 일본을 직접 방문해서 관계 인사들을 만나 우리의 입장을 전달․설득에 주력하고 있다. 그리고 소위 ‘일본의 양심세력’과 협력해서 왜곡된 교과서 채택을 저지시키려고 안간힘을 쏟고 있다고 한다. 이상과 같은 안타깝기까지 한 우리의 일련의 대응에 대해 일본정부는 냉담한 무반응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처음에는 분노를 금할 수 없다가, 지쳐서 이제는 우리의 처지가 측은하게까지 느껴지게 된다. 이와 같은 상황에 이르다보니 우리도 스스로의 입장을 재정리하고 지금까지의 자괴(自愧)마저 느끼게 하는 대응방식을 반성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일본으로부터 해방 된지 60년, 부끄럽고 어설펐던 한일협정이 체결 된지 40년이 지난 오늘날 한일양국의 현황과 현재의 위상을 대비해보는 것은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해 지금 우리가 취하고 있는 대응을 반성해보는데 좋은 지침이 된다고 본다. 최근 통계에 의하면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은 우리의 약 2.7배, 인구도 약 2.7배, 국민총생산은 약 6.8배이다. 그리고 경제규모면에서는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인 반면, 우리는 11위에 끝이며, 한국 대만 홍콩과 싱가포르를 합해도 일본 경제규모의 절반에 조금 못 미친다고 한다.
그리고 공작기계 분야에서는 이미 독일과 미국을 앞질러 세계를 제패(制覇)한지 오래며 적어도 제조업에서는 세계에서 1위임을 자랑하고 있다. 그 외에도 우리보다 기술면에서 앞서거나 우수한 분야가 많다고 한다. 특히 우리 산업계에서는 전자산업분야 등에서는 일본과 제휴해가는 것이 우리에게 큰 득(得)이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그들이 자부하고 있는 것을 몇 가지 더 나열하면 다음과 같은 것들을 들 수 있다.
1949년에서 시작된 노벨상 수상자는 12명에 이르며 이 가운데 과학 분야가 9명을 차지하고 있으니 그들의 과학기술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외국원조를 위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고 자랑하고 있다. 언어학자들은 지난날 중국과 한국으로부터 한자를 배웠으나 현대에 와서는 자기들이 만든 과학용어 등이 양국으로 역수출되고 있다고 자랑하고 있다. 세계의 저명한 서적을 거의 모두 자기나라 말로 번역해서 읽는 나라는 서구선진국을 제외하고는 일본이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라고 하며, 심지어 일부 영어교육학자는 이제부터는 일부 전문가를 제외하고는 전학생에게 외국어를 가르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까지 있다.
우리의 대일 경제교류 실태가 어떠한지 살펴보면, 무역통계가 체계화된 1960년부터 2004년 7월까지 대일무역적자 규모는 2100억 달러 이상이 된다고 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 기술무역적자 가운데 전기전자가 48.4%, 기계류가 13.7%로 첨단산업의 수입의존도가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2003년도의 일본으로부터의 총수입액 363억1300만 달러 가운데 원자재가 34.9%, 자본재 55.8%, 소비재는 불과 7.4%로 기록되고 있다. 이 통계에 따르면 기술 분야에서 우리 산업이 얼마나 일본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우리 산업이 자본재와 기술면에서 일본에 너무 예속되어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싱가포르의 초대 수상이었던 리콴유(李光耀)는 1970년 미국 하와이의 동서문화센터 케네디극장에서 행한 ‘The East Meets the West'란 제목하의 디링함 강연(Dillingham Lecture)에서 동양에서는 유일하게 일본만이 서양과 대결한 국가였으며 지금도 서양과 대등한 위치를 유지하는 아시아에서 단 하나의 나라라고 극구 찬양해서 미국사람들의 주목을 받은바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같은 싱가포르의 학자인 키쇼어 마흐부마니(Kishore Mahbubani)가 “아시아는 일본에게 크게 감사한다는 감사장을 보낼 필요가 있다. … 그리고 넷째번의 호랑이인 남한은 일본에 의해 고무‧분발된 것이다”란 논지의 글을 타임(Time) 아시아판 최신호에 실어 화제가 되고 있다. 오만해져가고 있는 일본의 일부 세력이 이와 같은 기사를 잘못 이해하고 다시 더 우쭐해질까 걱정되기도 한다.
일본과 독일 두 패전국이 다른 이유 일본과 같은 패전국인 독일은 피해국에게 철저히 배상하고 사죄도 하고 있는데, 일본은 왜 역사교과서를 왜곡하고, 1급 전범(戰犯)이 합사(合祀)된 야스쿠니 신사(神社)를 총리까지 참배하며, 사과도 제대로 하지 않고, 심지어는 피해국들의 근대화에 큰 도움을 주었다는 괴변까지 하고 있는 것일까? 무엇이 이 두 패전국을 이렇게 다르게 행동하도록 하고 있는가를 찾아보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침략전쟁 전과 후에 있어서 독일과 그의 교전국 간의 경제적인 차이와, 일본과 그의 침략을 당한 나라와의 경제적인 대비는 일본의 오만을 설명하는 한 가지 가닥을 제공해 줄지 모른다. 독일은 교전국이었던 영국, 불란서보다 한때 후진국이여서 독일 상류계급은 자녀들을 파리대학에 유학시키는 것을 자랑으로 여겨왔을 때가 있었다. 그리고 종전 후인 현재도 1인당 국민소득에서 큰 차이를 볼 수 없다. 그러나 일본은 한국과 중국에 비해 침략 전에는 근대화뿐만 아니라 생활수준에서도 현격한 차이가 있었을 것이며, 종전 후인 지금에는 그 격차가 많이 벌어진 상태에 있다. 따라서 혹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말하는 못사는 이웃을 업신여기는 오만한 태도를, 일본도 우리에 대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의심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또 다른 이유로는 독일과 일본의 문화적인 차이에서 찾아볼 수도 있다. 일본의 ‘수치의 문화’가 기독교 문화인 ‘죄의 문화’보다 자기가 저지른 범죄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작게 받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즉 수치의 문화는 주위 사람들의 반응과 평가를 의식하여 행동하는 반면, 죄의 문화는 주위 사람들을 의식할 필요 없이 개인이 지은 죄를 직접 하나님에게 용서를 구하는 자기 양심의 보다 강력한 가책을 수반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일본은 지난날 우리를 어떻게 봤으며 또한 지금은 어떻게 보고 있기에, 제대로 된 사죄도 없이 역사교과서마저 왜곡해서 자기 민족을 미화하려는 역사관으로 2세들을 교육시키려 하는 것인지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지난날 우리를 침탈(侵奪)했던 일본이 우리를 어떻게 취급했던가를 뒤돌아보는 것은 그들의 우리에 대한 오늘날의 태도와 진심을 가늠해보는데 도움이 된다고 본다. 명성황후 시해사건, 1919년에 있었던 3․1운동 탄압과정, 1923년 9월 1일에 있었던 ‘관동지진 조선인 대학살사건’ 등을 보면 우리민족을 짐승보다 더 못하게 취급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전쟁을 일으킨 죄의 응보(應報)에 대해 일본과 독일이 각각 다른 태도를 취하고 있는 이유를 밝히려고 화제의 책을 낸 이안 부루마(Ian Buruma)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대부분의 일본 병사들은 중국인이나 조선인과 같은 ‘열등(劣等) 민족'을 학살하는 것은 천황(天皇)의 뜻과 일치할 뿐만 아니라 충성의 표시라고 믿었다”
치욕의 역사 후손들이 깊이 새겨야 위와 같은 생각을 가진 일본에게 사죄하라 또는 배상하라는 등을 외친다는 것은, 우리가 마치 사죄와 배상을 구걸하고 귀찮게 매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은 다른 외국사람들 눈에 혹시나 그렇게 비추어지는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 차라리 그 힘과 정력을 국력신장에 기울려 일본을 이기는 일에 매진해야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보게 된다. 지난날의 씻을 수 없는 치욕과 형언할 수 없는 혹독한 폭정으로 고통 받은 우리, 침략했던 자가 지금도 지난날에 대한 사죄도 없이 아직도 우리보다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인 발전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에 착잡한 심정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아직도 옛날처럼 내심 우리를 멸시하고 있다면, 그들로부터 얻는 형식적인 사죄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 가운데 첫째는 우리 스스로가 일본의 학정에 대한 올바른 역사인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일간의 역사인식 분쟁의 해결방법으로서 자기 민족중심 역사인식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탈 민족주의적 역사서술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적으로 볼 때 이상적인 논리에 불과함에 틀림없다. 따라서 가해자이면서 반성도 없이 역사왜곡을 시도하기 시작한 일본에게 이와 같은 이상론을 거론 해봤자 별 소용이 없음은 분명하다.
피해자인 우리는 우선 우리 자신의 바른 역사인식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로선 국권찬탈과 학정과 잔악한 탄압에 관한 철저한 국민교육이 먼저이고 다음이 친일진상규명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국민의 역사의식이 바로서야 친일진상규명의 효력과 진정한 목적이 달성되기 때문이다. 지금의 국민들의 의식수준으로서는 친일진상규명의 목적마저 흐리게 되고 말 염려가 있기 때문인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둘째 일은 국력을 증강시키고 문화수준을 높이는 일이다. 사죄도 않을뿐더러 능글능글하게 역사왜곡까지 서슴지 않고 있는 오만한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우리보다 월등한 강자로서 엄연하게 존재하는 상황에서, 우리 스스로가 이를 근원적으로 극복하기 위한 특단(特段)의 노력도 없이, 다만 규탄(糾彈)의 구호만 외치는 것은 공허(空虛)한 몸부림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오늘날과 같은 빠른 근대화와 경제개발에 성공하지 못했다고 가정해 보자. 즉 우리의 국력이 지금의 수준보다도 더 낮았더라면 그들이 과연 우리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취했을지는 능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와 같은 가정(假定) 속에서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해야 할 셋째 일은, 지난 약 1세기 동안의 우리와 일본과의 불행했던 관계를 재조명하는 일은, 그동안 우리가 너무나 일방적으로 그것도 너무 부끄러울 정도로 당했다는 역사적 사실과, 지금도 그들의 오만과 멸시의 구실을 줄 수 있는 우리의 현실을 겸허하게 받아드릴 각오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이 역사적인 엄연한 사실을 가르치는 것을 자학사관(自虐史觀)이라고 우겨댄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또는 꼭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를 잘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겪은 치욕의 역사적 사실을 빠짐없이 국민교육을 통해 널리 후손에게 알려야 한다. 그리고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계속되는 반일시위에서 나타난 국민의 분노를 국력의 증강과 문화수준의 향상으로 승화(昇華)시켜 다시는 우리를 능멸할 수 없는 나라로 발전시켜나가도록 노력하는 것이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한 차원 높은 대책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일의 추진은 현 지도층의 역사적인 임무이자 그들의 지혜와 능력을 시험해 보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PAGE BREAK]
일본과 독일 두 패전국이 다른 이유 일본과 같은 패전국인 독일은 피해국에게 철저히 배상하고 사죄도 하고 있는데, 일본은 왜 역사교과서를 왜곡하고, 1급 전범(戰犯)이 합사(合祀)된 야스쿠니 신사(神社)를 총리까지 참배하며, 사과도 제대로 하지 않고, 심지어는 피해국들의 근대화에 큰 도움을 주었다는 괴변까지 하고 있는 것일까? 무엇이 이 두 패전국을 이렇게 다르게 행동하도록 하고 있는가를 찾아보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침략전쟁 전과 후에 있어서 독일과 그의 교전국 간의 경제적인 차이와, 일본과 그의 침략을 당한 나라와의 경제적인 대비는 일본의 오만을 설명하는 한 가지 가닥을 제공해 줄지 모른다. 독일은 교전국이었던 영국, 불란서보다 한때 후진국이여서 독일 상류계급은 자녀들을 파리대학에 유학시키는 것을 자랑으로 여겨왔을 때가 있었다. 그리고 종전 후인 현재도 1인당 국민소득에서 큰 차이를 볼 수 없다. 그러나 일본은 한국과 중국에 비해 침략 전에는 근대화뿐만 아니라 생활수준에서도 현격한 차이가 있었을 것이며, 종전 후인 지금에는 그 격차가 많이 벌어진 상태에 있다. 따라서 혹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말하는 못사는 이웃을 업신여기는 오만한 태도를, 일본도 우리에 대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의심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또 다른 이유로는 독일과 일본의 문화적인 차이에서 찾아볼 수도 있다. 일본의 ‘수치의 문화’가 기독교 문화인 ‘죄의 문화’보다 자기가 저지른 범죄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작게 받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즉 수치의 문화는 주위 사람들의 반응과 평가를 의식하여 행동하는 반면, 죄의 문화는 주위 사람들을 의식할 필요 없이 개인이 지은 죄를 직접 하나님에게 용서를 구하는 자기 양심의 보다 강력한 가책을 수반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일본은 지난날 우리를 어떻게 봤으며 또한 지금은 어떻게 보고 있기에, 제대로 된 사죄도 없이 역사교과서마저 왜곡해서 자기 민족을 미화하려는 역사관으로 2세들을 교육시키려 하는 것인지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지난날 우리를 침탈(侵奪)했던 일본이 우리를 어떻게 취급했던가를 뒤돌아보는 것은 그들의 우리에 대한 오늘날의 태도와 진심을 가늠해보는데 도움이 된다고 본다. 명성황후 시해사건, 1919년에 있었던 3․1운동 탄압과정, 1923년 9월 1일에 있었던 ‘관동지진 조선인 대학살사건’ 등을 보면 우리민족을 짐승보다 더 못하게 취급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전쟁을 일으킨 죄의 응보(應報)에 대해 일본과 독일이 각각 다른 태도를 취하고 있는 이유를 밝히려고 화제의 책을 낸 이안 부루마(Ian Buruma)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대부분의 일본 병사들은 중국인이나 조선인과 같은 ‘열등(劣等) 민족'을 학살하는 것은 천황(天皇)의 뜻과 일치할 뿐만 아니라 충성의 표시라고 믿었다”
치욕의 역사 후손들이 깊이 새겨야 위와 같은 생각을 가진 일본에게 사죄하라 또는 배상하라는 등을 외친다는 것은, 우리가 마치 사죄와 배상을 구걸하고 귀찮게 매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은 다른 외국사람들 눈에 혹시나 그렇게 비추어지는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 차라리 그 힘과 정력을 국력신장에 기울려 일본을 이기는 일에 매진해야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보게 된다. 지난날의 씻을 수 없는 치욕과 형언할 수 없는 혹독한 폭정으로 고통 받은 우리, 침략했던 자가 지금도 지난날에 대한 사죄도 없이 아직도 우리보다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인 발전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에 착잡한 심정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아직도 옛날처럼 내심 우리를 멸시하고 있다면, 그들로부터 얻는 형식적인 사죄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 가운데 첫째는 우리 스스로가 일본의 학정에 대한 올바른 역사인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일간의 역사인식 분쟁의 해결방법으로서 자기 민족중심 역사인식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탈 민족주의적 역사서술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적으로 볼 때 이상적인 논리에 불과함에 틀림없다. 따라서 가해자이면서 반성도 없이 역사왜곡을 시도하기 시작한 일본에게 이와 같은 이상론을 거론 해봤자 별 소용이 없음은 분명하다.
피해자인 우리는 우선 우리 자신의 바른 역사인식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로선 국권찬탈과 학정과 잔악한 탄압에 관한 철저한 국민교육이 먼저이고 다음이 친일진상규명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국민의 역사의식이 바로서야 친일진상규명의 효력과 진정한 목적이 달성되기 때문이다. 지금의 국민들의 의식수준으로서는 친일진상규명의 목적마저 흐리게 되고 말 염려가 있기 때문인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둘째 일은 국력을 증강시키고 문화수준을 높이는 일이다. 사죄도 않을뿐더러 능글능글하게 역사왜곡까지 서슴지 않고 있는 오만한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우리보다 월등한 강자로서 엄연하게 존재하는 상황에서, 우리 스스로가 이를 근원적으로 극복하기 위한 특단(特段)의 노력도 없이, 다만 규탄(糾彈)의 구호만 외치는 것은 공허(空虛)한 몸부림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오늘날과 같은 빠른 근대화와 경제개발에 성공하지 못했다고 가정해 보자. 즉 우리의 국력이 지금의 수준보다도 더 낮았더라면 그들이 과연 우리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취했을지는 능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와 같은 가정(假定) 속에서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해야 할 셋째 일은, 지난 약 1세기 동안의 우리와 일본과의 불행했던 관계를 재조명하는 일은, 그동안 우리가 너무나 일방적으로 그것도 너무 부끄러울 정도로 당했다는 역사적 사실과, 지금도 그들의 오만과 멸시의 구실을 줄 수 있는 우리의 현실을 겸허하게 받아드릴 각오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이 역사적인 엄연한 사실을 가르치는 것을 자학사관(自虐史觀)이라고 우겨댄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또는 꼭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를 잘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겪은 치욕의 역사적 사실을 빠짐없이 국민교육을 통해 널리 후손에게 알려야 한다. 그리고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계속되는 반일시위에서 나타난 국민의 분노를 국력의 증강과 문화수준의 향상으로 승화(昇華)시켜 다시는 우리를 능멸할 수 없는 나라로 발전시켜나가도록 노력하는 것이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한 차원 높은 대책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일의 추진은 현 지도층의 역사적인 임무이자 그들의 지혜와 능력을 시험해 보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