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2024.11.16 (토)

  • 맑음동두천 10.9℃
  • 구름많음강릉 16.0℃
  • 맑음서울 14.0℃
  • 맑음대전 13.2℃
  • 맑음대구 13.6℃
  • 구름많음울산 17.4℃
  • 맑음광주 14.1℃
  • 맑음부산 19.2℃
  • 맑음고창 11.3℃
  • 맑음제주 19.9℃
  • 맑음강화 12.4℃
  • 맑음보은 11.3℃
  • 구름조금금산 7.5℃
  • 맑음강진군 15.9℃
  • 구름조금경주시 14.7℃
  • 맑음거제 17.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우리 민족의 다정한 벗, 호랑이

글 | 김연수/생태사진가


구한말 서울에 나타나기도
러시아 연해주, 중국 헤이륭장성과 지린성, 북한의 백두산과 개마고원 일대에는 400여 마리의 동북호랑이가 자연 상태로 생존해 있다. 그러나 남한에서는 1943년 이후 공식적으로 확인된 개체수가 단 한 마리도 없다. 1910∼1930년대에 일본제국주의는 조선사람들을 맹수로부터 보호한다는 구실을 내세워 조선총독부 산하의 포수들을 시켜 호랑이를 무차별로 포획했다. 일본은 섬이어서 호랑이가 없는 까닭에, 조선총독부의 고위관리들이 일본황실에다 호랑이가죽을 상납하는 것은 출세길이 보장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설이나 민화에서 등장하는 것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호랑이는 맹수라기보다 의리 있고 정감 있는 이웃이었다. 깊은 산골동네면 어디든 '범바위', '범골', '범고개' 등 호랑이와 관련된 지명과 전설이 남아있다. 구한말에 서울 시내 한복판에 있는 러시아공사관 주변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기록도 있다. 아마 인왕산호랑이가 먹을 것이 궁해서 인가로 내려왔던 것 아닌가 싶다.

사람을 보면 피하는 삼림의 왕
호랑이의 정확한 우리말은 범이다. 하지만 일제가 범과 늑대 같은 맹수 구제(驅除)를 하면서 총칭으로 부르던 호랑(虎狼)이가 굳어졌다. 옛 이름에 범골, 범바위는 있어도 '호랑이골', '호랑이바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북한에서는 지금도 '조선범'이라고 부른다. 조선범(아무르 호랑이)은 동북아시아에 분포하며, 벵갈 호랑이나 수마트라 호랑이, 인도차이나 호랑이보다 덩치가 크고 이마에 임금 왕(王)자 무늬가 뚜렷하며 용맹하다. 전체적으로 붉은 빛이 도는 오렌지색 털이 나 있고 수염, 가슴, 허리, 사지 안쪽의 털은 하얀색 또는 밝은 크림색이다. 수직 줄무늬는 회색, 붉은 밤색, 검정 등이다. 털 무늬는 호랑이마다 다르다. 꼬리 끝 부분은 검정 털로 돼 있으며 얼굴 털은 다른 부위에 비해 다소 긴 편이다. 고양이과 동물들은 주로 뒤에서 목덜미를 습격하는 사냥습성을 가졌고 실제로는 겁이 많은 동물이다. 삼림의 왕자로 통하는 호랑이도 사람들을 보면 도망친다. 지난 1997년에 필자는 야생 상태의 호랑이를 취재하기 위해 한 달 넘게 러시아 연해주의 '시호테 알린' 산맥 일대를 샅샅이 돌아다녔지만, 녀석들은 먼발치에서 우리 일행을 보면 도망쳐 흔적만 남길 뿐이었다.

인간들에게 밀려난 호랑이들
시베리아 호랑이 야생연구소를 돕고 있는 미국의 '호노커(Hornorcker)' 자연생태연구소에 의하면 구 소련 시절의 러시아 극동지방에는 600여 마리의 호랑이들이 살고 있었으나, 1980년대 중반에 소련의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지면서 혹독한 추위와 생활고에 시달린 러시아인들이 엘크와 우수리사슴을 닥치는 대로 사냥해 호랑이들의 먹이가 크게 줄었다. 설상가상으로 울창한 삼림이 벌목되고 무분별한 광산개발로 호랑이들은 인간들에게 점점 밀려나갔다. 심지어 일부 몰지각한 밀렵꾼들은 한약재로 쓰이는 호랑이 뼈와 값비싼 가죽을 팔기 위해 마구 포획, 지금 생존해 있는 호랑이는 400마리도 채 안 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자연의 먹이사슬을 유지해야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백두대간 줄기를 따라 호랑이나 표범으로 보이는 고양이과 동물의 커다란 발자국들이 종종 목격된다는 보도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생태계의 상위포식자인 호랑이가 생존해 있으려면 그들의 먹이인 대륙사슴이며 노루, 산토끼 등이 풍부해야 한다. 하지만 러시아나 백두산 일대에 떼지어 사는 대륙사슴도 남한에서는 멸종된 지 오래다. 그리고 하루의 행동반경이 40∼70㎞에 이른다는 호랑이들이 전국의 산 구석구석을 누비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은 지도 62년이 넘었다. 온 국민의 노력으로 헐벗은 민둥산이 울창한 산림으로 바뀌었지만, 그렇다고 호랑이가 하늘에서 뚝 떨어질 일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생태계 먹이사슬의 상위포식자인 호랑이가 없으니까 그만큼 천적이 없어진 멧돼지며 너구리 같은 중간포식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호랑이를 다시 만나려면 그들이 살 수 있는 먹이조건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삼림의 이동로가 연결되어야 한다. 설령 남한 땅에 호랑이 한 두 마리가 생존해 있다 해도, 그것은 그리 의미 있는 일이 못 된다. 남북통일이 되어서 휴전선의 철책이 사라지는 순간 백두대간을 따라 호랑이들이 러시아와 중국에서부터 남북한까지 자유스럽게 오갈 수 있게 생태계의 먹이사슬이 이어지는 자연보존이 우선이다. 지금과 같이 무분별한 개발이 계속된다면, 우리 자손들은 동물원 우리 속에 갇힌 나약한 호랑이들만을 보게 될 것이다.

*벗과 같이 친숙한 호랑이의 모습! 새교육 12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