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 당시 부모를 잃은 고아들은 뚜렷한 이유 없이 죽어갔다. 연구 결과 접촉 결핍이 사망의 원인으로 밝혀졌다. 아기들에 대한 스킨십이 부족하면 뇌에 심각한 손상을 가져오고, 심할 경우 죽음으로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피부 접촉의 효과는 언어나 감성적 접촉보다 10배는 강하다. 그리고 아기들이 말을 빨리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소리를 들려줌으로써 예민한 귀를 자극해 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아기는 생후 1년이 되기까지 듣는 소리를 통해 언어를 배울 수 있는 결정적인 기술을 개발하게 된다.
피부는 우리 몸에서 가장 무거운 기관이다. 추위와 위험물질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무게 3㎏의 피부는 감촉을 느끼는 수용체로 가득 차 있다. 누군가가 나를 쓰다듬을 때 촉감 수용체에 가해지는 물리적 자극은 전기 신호로 바뀌어 뇌에 독특한 감정을 만들어 낸다.
피부 접촉은 뇌 발달의 필수 영양소 이때 뇌에서는 아름다운 불꽃놀이가 뇌세포의 회로를 수놓으면서 부드럽고 행복한 사랑의 감정이 만들어지고 새로운 신경망이 형성된다. 특히 갓 태어난 아이에게는 피부 접촉이 뇌의 정상적인 발달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영양소이다. 접촉에 굶주린 아이는 잘 먹지 않고 두뇌와 건강에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어 심하면 죽기도 한다. 또 성인이 되어서도 사회, 이성 관계에 적응을 못하고 우울증과 불감증에 시달리게 될 확률이 높다. 신생아의 접촉 결핍증은 2차 대전 당시 고아가 하나 둘씩 이유 없이 죽으면서 연구가 시작됐다.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고아에게 좋은 약과 음식, 깨끗한 환경을 제공했는데도 이상하게 아이들은 하나 둘씩 죽어갔다. 처음에는 죽음의 원인을 전혀 알 수 없었으나 '접촉 연구의 아버지'로 불리는 위스콘신 대학 해리 할로우 교수가 접촉 결핍이 사망의 원인이란 사실을 뒤늦게 밝혀냈다. 1970년대에 그는 한 살 미만의 갓 태어난 원숭이에 대한 실험을 통해 오감 가운데 접촉을 제거하면 다른 네 개의 감각보다 뇌에 주는 손상이 훨씬 크다는 것을 밝혀냈다. 촉감만 느낄 수 있으면 어려서 귀머거리나 맹인이 되더라도 정상적으로 크는 경우가 많다.
접촉 없이 자란 원숭이는 판에 박은 행동을 반복하고, 어울리지 못하고, 주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며, 접촉을 두려워하고, 공격성을 나타내며, 비정상적인 성 행위를 하고, 어른이 되어서도 아기를 돌보지 않는다. 호르몬의 불균형으로 건강도 나빠진다. 아프리카에서 침팬지와 함께 살았던 제인 구달도 엄마가 죽은 뒤 고아로 혼자 살았던 '멀린'이란 이름의 침팬지를 지켜보면서 엄마가 얼마나 아기에게는 중요한 존재인가를 실감했다. 멀린은 엄마가 죽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성격이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또한 사회 관계나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고 어른 수컷 침팬지들에게 얻어맞거나 질질 끌려 다녔다. 그의 성격은 점차 침울해지고 몸도 약해졌고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생을 마쳤다.
촉감은 뇌를 끊임없이 바꾸고 재조직 미국국립보건원 신경심리학자 제임스 프리스콧은 세계 400개 문화권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 결과 어려서 아이를 많이 만져주고, 키스나 포옹 같은 연인의 애정 표현에 개방적인 사회일수록 폭력이 적다는 것을 통계 분석을 통해 밝혀냈다. 피부 접촉이 많은 사회가 평화스런 사회인 것이다. 왜 그럴까? 전문가들은 피부 접촉의 효과가 언어나 감성적 접촉보다 10배는 강하다고 한다. 사실 부부나 부자지간에는 열 마디의 말보다 한 번의 피부 접촉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경험한 분이 많을 것이다. 촉감의 또 다른 특징은 평생에 걸쳐 변하는 변화무쌍한 존재라는 점이다.
촉감은 뇌를 끊임없이 바꾸고 재조직한다. 예를 들어 시각은 뇌의 시각중추가 일단 형성되면 거의 변화하지 않는다. 반면 촉감은 훈련을 통해 얼마든지 발달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투수가 하루 몇 시간씩의 연습을 하면 손끝의 극히 미묘한 촉감 차이로 공을 컨트롤 하고 다양한 변화구를 던질 수 있게 된다. 부부가 신혼 시절 느꼈던 촉감과 결혼 10년 뒤 느끼는 촉감이 다른 것도 같은 이유다. 이처럼 촉감이 평생을 통해 계속해서 발달하는 이유는 촉감을 담당하는 뇌세포가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절묘한 균형 상태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하워드 휴즈 의학연구소는 2002년 특수한 레이저 현미경을 통해 촉감과 관련된 뇌세포에서는 매일 20%나 되는 새로운 가지가 만들어지고 소멸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촉감을 담당하는 뇌세포의 수상돌기 표면에서는 마치 나무줄기에서 가지가 뻗어 나오듯 매일 20%나 되는 새로운 가지가 생기고 20%는 없어지고 있다. 같은 현미경으로 시각 대뇌피질의 변화를 관찰했지만 시각을 담당하는 뇌세포에는 이런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시각중추는 이처럼 한번 형성되면 쉽게 바뀌지 않는 데 반해 촉감은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새로운 감정과 느낌을 만들어 낸다.
성공적인 육아법의 첫째는 '접촉' 요즘 미국에서는 '터치 운동' 물결이 일고 있다. 피부 접촉을 촉진하기 위한 단체가 생기고, 아기 마사지 가이드북, 베이비 마사지용 오일 광고가 넘쳐난다. 병원에서는 미숙아 마사지 치료가 보편화되고, 일부 아동병원은 "오늘 아이를 안아주었습니까?" 하는 문구를 벽에 붙여 놓고 있다. 중국과 인도에서는 베이비 마사지가 오랜 전통이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베이비 마사지를 하는 병원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한국도 선진국형 생활 문화가 뿌리를 내리면서 가정에서 아이와의 피부 접촉이 줄어들고 있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맞벌이 엄마의 품에서 떨어져 잠도 혼자서 자고, 뒷좌석의 시트에 묶여 있게 된다. 하지만 피부 접촉은 인간이 정상적으로 성장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영양소이다. 지금의 기성세대는 어머니의 등에 업혀 심장 소리를 느꼈고, 볼을 비벼대는 부모와 눈을 맞추었고, 젖꼭지를 물고 잠이 들었다. 그러나 생활이 서구화되면서 요즘 아이들은 엄마와의 접촉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 특히 미숙아의 경우 마사지가 약이나 주사보다 훨씬 효과적인데도, 우리나라의 병원은 삭막한 아파트식 인큐베이터 속에 아기들을 방치해 놓고 있다. 우리나라의 의료 수가에는 미숙아에 대한 마사지 치료가 반영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외국에서는 미숙아에게 마사지를 하면 그냥 놔둔 미숙아보다 50%나 빨리 자란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자신감 있는 아이 키우기>>란 책을 쓴 미국의 심리학자 수잔 베일도 성공적인 육아법 5개 가운데서 '접촉'을 첫째로 꼽는다. 유아기에 접촉은 왜 그렇게 중요할까? 갓 태어난 아이는 엄마와 공생 관계이다. 이때 아기에게는 우리만이 있을 뿐 나와 타인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접촉을 통해 나와 다른 사람의 경계를 발견하면서 자아란 개념이 싹튼다. 또 다른 사람이 만져줄 때 내가 가치 있는 존재란 느낌을 갖고, 사람과 접촉하면 위로를 얻을 수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탄생 초기의 접촉을 통한 부모와의 상호 작용이 나중에 커서 사회적 관계의 틀이 된다.
하지만 우리의 유교 문화 속에는 여전히 '접촉=섹스=죄악'이란 고정관념이 뿌리 깊게 박혀 있다. 또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을 지나치게 귀여워하면 버르장머리가 없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접촉에 목말라 하는 신생아는 아무리 안아줘도 지나치지 않다는 것이 심리학자들의 지적이다.
소리를 들려주는 것도 중요한 교육 그렇다면 접촉은 신생아들에게만 필요한 것인가? 물론 접촉은 출생 1, 2년 뒤까지가 가장 중요하지만,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말썽을 부리는 아이들에게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런 아이에게는 나무라는 것보다 쓰다듬어 주고 안아주면서 사랑을 느끼게 하는 부모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접촉보다는 덜 중요하지만 아기가 말뜻을 못 알아들어도 주변 사람들이 자꾸 말을 걸어주는 것도 아기의 인생에는 큰 보탬이 된다. 필자의 딸은 말을 빨리 했다. 보통 아기는 18개월이 지나야 '엄마, 아빠, 우유, 응아' 같은 단어를 비교적 또렷하게 말하지만 딸아이는 돌이 지나면서 말을 해 나와 집사람을 즐겁게 했다. 당시에는 아내가 직장에 다녀 할머니가 돌봐 주었는데 얼러주기를 잘 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갓난아기는 귀가 예민하다. 말은 못해도 사람이 내는 소리를 거의 다 듣는다. 갓난아기는 태어나자마자 몇 시간 안에 소리가 나는 쪽에 귀를 기울인다. 갓난아기는 특히 고음을 좋아한다. 과학자들이 갓난아기가 고음을 좋아하는지 저음을 좋아하는지 알기 위해 인공 젖꼭지를 만들어 실험했다. 이 젖꼭지는 아기가 세게 빨수록 고음이 난다. 실험 결과 갓난아기가 높은 여자 목소리에 맞춰 젖 빠는 세기를 조절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아기는 고음의 목소리에 자연스럽게 익숙해지기 때문에 아빠보다는 엄마의 소리에 더 민감하다. 그리고 아이가 고음에 잘 반응하기 때문에 엄마들이 아기들에게 이야기할 때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특히 갓난아기는 여러 목소리 가운데 엄마의 목소리를 찾아내는 능력도 갖고 태어난다. 아마 아기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이미 엄마의 소리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이런 능력을 갖고 태어나는 것 같다. 옛날부터 할머니들이 말 못하는 아기를 '까꿍' 소리로 어르고, 속삭이고, 흉내 소리를 들려준 것은 오랜 경험의 산물이다. 소리로 어르면 아기들이 소리를 기억하고 옹알이를 하거나 흉내를 내는 반응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유아들은 단어가 무슨 뜻인지 깨닫기 거의 일 년 전부터 그 단어의 소리를 기억한다는 흥미로운 사실도 실험을 통해 밝혀졌다. 이렇게 보면 할머니와 어머니는 모두 과학자인 셈이다.
소리를 통해 언어 습득 기술 개발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 심리학자인 피터 주스칙 교수팀은 어휘를 전혀 모르는 아기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말을 습득하게 되는지 실험했다. 이 실험을 통해 아기는 말을 하기 훨씬 전부터 친숙한 소리 패턴을 저장하고, 생후 18개월 무렵부터 여기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언어를 배우게 된다는 것이 밝혀졌다. 아기는 언어 능력이 나타나기 훨씬 전부터 무의식적으로 언어를 배우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기는 생후 1년이 되기까지 말을 하지 못하지만 언어를 배울 수 있는 결정적인 기술을 이 기간 동안에 개발하게 된다. 그리고 생후 1년이 되면 아이는 음성을 분명히 구분하게 된다. 이때가 되면 아기는 똑같은 말을 빨리 하거나 느리게 해도 소리를 구분할 줄 알게 된다.
또 외국어와 모국어도 구분을 하게 된다.연구팀은 아직 말을 못 하는 생후 8개월 된 아기들의 집을 매일 방문해, 녹음한 어린이 동화 테이프를 틀어주고 함께 놀았다. 이어 아기들을 실험실로 데려와 본격적인 실험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다른 동화를 들려주고 아기들의 반응을 세밀하게 분석했다. 동화에는 두 가지 종류의 단어가 포함돼 있었다. 한 가지는 'elephant, best, jungle' 같은 단어로, 이 단어는 전에 오디오 테이프를 통해 들려준 동화에도 포함돼 있던 것들이었다. 그리고 'apricot, beach, camel' 같은 단어는 발음은 비슷하지만 처음 들려주는 단어였다. 아기들은 처음 듣는 단어보다 이미 오디오 테이프로 들어 익숙한 단어에 대해 15% 정도 더 길게 집중하면서 귀를 기울였다.
이는 아기가 의미는 모르지만 단어를 기억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아기는 무의식적으로 소리의 세밀한 패턴을 기억하고 비록 말뜻을 이해하지는 못하면서도 그 소리에 집중력을 나타낸다. 이는 아기들이 먼저 개념을 알고 단어를 아는 것이 아니라 우선 소리를 기억하고 여기에서부터 시작해 개념과 단어를 익히게 된다는 것을 말해 준다. 따라서 아기는 다양한 소리로 키워야 한다.
옹알이는 말을 하기 위한 사전연습 그렇다면 왜 갓난아기는 말을 하기 전에 옹알이를 할까? 갓난아기가 보통 생후 5개월이 지나면 시작하는 옹알이 역시 말을 배우는 방법을 습득하기 위해 내는 소리이다. 신생아의 옹알이는 소리를 어떻게 결합해야 말이 되는지를 열심히 연습하는 과정이다. 미국 다트머스 대학 로라-앤 페티토 박사는 생후 5∼12개월인 아기 10명이 옹알이를 하거나 웃는 소리를 낼 때 입의 움직임을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옹알거릴 때 입의 오른쪽이 주로 움직이고 그냥 소리를 지를 때에는 양쪽 입이 비슷하게 움직이지만 웃을 때에는 왼쪽 입이 실룩거렸다.
왼쪽 뇌는 몸 오른쪽의 움직임을 총괄하고 반대로 오른쪽 뇌는 몸 왼쪽의 움직임을 담당한다. 따라서 아기가 옹알이할 때 입의 오른쪽이 주로 움직이는 것은 왼쪽 뇌의 작용이다. 왼쪽 뇌에는 언어중추가 있기 때문에 언어중추의 작용이 바로 옹알이라는 것이다. 반면 아기가 웃을 때에 입 왼쪽이 움직이는 것은 감정을 주관하는 오른쪽 뇌의 작용이라는 것이다. 뇌의 언어중추는 '옹알이 → 단어의 첫 발음 → 기본적 문법의 자연적 체득 → 문장의 사용' 순으로 발달하면서 학습을 통해 뇌가 조직화된다. 그렇다고 아기의 말을 흉내 내기 위해 틀린 말을 사용하는 것은 금물이다. 예를 들어 "물" 대신에 "무우~"라고 하면 아기는 나중에까지 그렇게 발음한다. 아기에게는 정확한 발음을 들려주어야 하며 그래야만 나중에 올바른 발음을 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