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가 먹는 음식의 55%는 석기시대에는 먹지 않던 것이다. 그만큼 먹거리가 늘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야채와 과일에 대한 섭취는 석기시대 사람들이 무려 3배나 많았다. 야채와 과일 섭취가 줄고, 곡류와 육류에 대한 섭취가 늘어나면서 현대인들은 당뇨, 암 등의 병에 시달리고 있다. 야채와 과일을 통해 식물이 생산하는 화학물질 섭취를 늘리고 또 고혈압, 뇌졸중, 심장병의 원인인 소금 섭취를 줄여야 한다. 전통 음식을 늘리게 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다.
우리는 옛날 사람들이 자동차나 컴퓨터 없이 살았다는 것은 잘 알면서도 옛날 사람들이 어떻게 먹고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러나 기술과 환경만큼이나 크게 바뀐 것이 음식이다.
농업 혁명 이후 곡류, 육류 섭위 늘어 우리가 먹는 음식은 두 번에 걸쳐 크게 바뀌었다. 약 1만 년 전에 시작된 농업 혁명 때, 그리고 약 200년 전 시작된 산업 혁명 때 혁명적인 변화를 겪었다. 인간이 처음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은 1만 년 전 중동에서 밀을 재배하면서부터다. 쌀은 7000년 전 동남아시아와 인도에서, 옥수수는 멕시코와 아메리카에서 7000년 전쯤부터 재배가 시작됐다. 초기 농경민은 그 이전의 사냥꾼보다 키가 작고, 영아 사망률이 높았다. 또한 수명이 짧고, 전염병에 취약하고, 철 결핍으로 인한 빈혈에 시달리고, 치아에도 에나멜 결함 등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이 화석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하지만 급격히 불어나는 인구를 먹여 살리는 유일한 방법은 농업뿐이었다.
농업 혁명 이전의 석기시대와 비교해 볼 때 인류는 과일과 야채, 식이섬유, 불포화 지방산, 비타민, 미네랄 섭취량이 줄고 곡류, 포화 지방산 섭취량이 급속도로 늘었다. 미국 에모리 대학의 진화영양학자인 보이드 이튼 교수는 1988년 <구석기 처방>에서 현재의 음식 가운데 55%가 석기시대 때 먹지 않았던 음식이라고 밝혔다. 석기시대 사람들은 곡식을 적게 먹은 대신 과일과 야채를 많이 먹었다고 한다. 이튼 교수에 따르면 구석기인들은 동물성·식물성 단백질에서 열량의 33%를 얻었고 46%는 탄수화물에서, 21%는 지방에서 얻었다. 미국심장학회도 이런 구석기인의 식사 비율이 건강에 좋다고 권고하고 있다.
야채와 과일로 비타민 섭취 늘려야 한국인의 식사는 어떤가? 현재 한국인의 영양 권장량에 따르면 하루 열량의 15%를 단백질에서, 65%를 탄수화물에서, 20%를 지방에서 얻도록 권고하고 있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한국인은 탄수화물에 대한 의존도가 대단히 높다. '밥이 하늘이다'란 말이 있을 만큼 한국인은 밥에 대한 집착이 대단하다. 하지만 단언컨대 밥은 결코 하늘이 아니다. 굳이 먹으려면 현미로 먹고 그보다는 과일과 야채가 더 좋다. 석기시대 사람들은 지금보다 3배나 많은 과일과 야채를 먹었다고 한다. 당시 사람이 먹던 과일과 야채는 무려 100종이나 됐다. 지천에 깔린 것이 야생의 과일과 야채였던 것이다. 과일과 야채는 석기시대 음식의 65%를 차지하는 주식이었다. 요즘에는 이렇게 다양한 야채와 과일을 구할 길이 없다. 현재 미국에서 정부가 권장하는 5종의 야채와 과일을 매일 제대로 챙겨 먹는 사람은 9%에 불과하다.
세계적으로 17종의 곡물이 90%의 식량을 공급하고 있다. 밀, 옥수수, 쌀, 보리, 콩, 사탕수수, 수수, 감자, 귀리, 카사바 등이 그것이다. 어떤 나라에서는 단 하나의 곡식에 칼로리의 80%를 의존하는 경우도 있다. 곡물만 먹게 되면서 인간은 복합 비타민제 없이는 살 수 없게 됐다. 과일과 야채에는 비타민과 미네랄이 곡식보다 훨씬 풍부하다. 반면 곡물에는 오메가-3 지방산, 비타민 C, 비타민 B12, 카르테노이드, 나트륨과 칼슘 등 미네랄이 매우 적다. 곡물만 먹을 경우 자칫 필수 영양소의 결핍에 빠질 수 있어 하루 열량의 70% 이상을 탄수화물로 섭취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특히 탄수화물 과잉 섭취가 가져온 가장 큰 문제는 비만과 당뇨병이다. 흔히 살이 찌는 원인을 지방 과다 섭취라고 생각하지만 더욱 중요한 원인은 탄수화물이다. 탄수화물은 당을 여러 개 합쳐 놓은 것이다.
탄수화물 과잉이 당뇨병의 주 원인 인체는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서 탄수화물을 포도당으로 분해한다. 체내에서 당장 쓰이지 않는 탄수화물은 포도당이 여러 개 연결된 글리코겐 형태로 간과 근육에 저장된다. 근육에 저장된 글리코겐은 운동을 하는 데 쓰이고, 간에 저장된 글리코겐은 뇌를 작동하는 데 에너지로 쓰인다. 뇌는 무게로 보면 인체의 2%에 불과하지만 에너지의 20%를 쓴다. 특이하게도 뇌는 에너지를 포도당으로부터만 얻는다. 그래서 머리를 많이 써야 하는 수험생에게 엿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간과 근육이 포도당을 저장하는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탄수화물이 필요 이상으로 몸에 들어오게 되면 인체가 할 수 있는 일은 딱 한 가지 방법뿐이다.
지방으로 변환시켜 체내에 저장하는 것이다. 이를 담당하는 것이 인슐린이다. 탄수화물을 먹어 혈당치가 상승하면 췌장이 인슐린 호르몬을 만들어 혈액에 공급한다. 인슐린은 본질적으로 포도당 저장 호르몬이다. 과잉 섭취한 탄수화물을 미래에 닥칠지도 모르는 굶주림에 대비해 지방 형태로 바꿔 저장하도록 명령을 내리는 게 인슐린의 역할이다. 정상적인 사람의 경우 섭취한 탄수화물의 40% 가량을 지방으로 전환한다. 탄수화물을 먹었을 때 일어나는 인슐린 반응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탄수화물이 지방으로 전환되는 속도가 느려 더욱 더 많은 인슐린을 생산하게 된다. 이런 경우를 인슐린 저항성이 크다고 한다. 이런 사람의 가족들을 보면 대개 당뇨병 환자가 많다. 인슐린 저항성을 보상하기 위해 체내에서는 더욱 많은 인슐린을 만들게 되고 결국 췌장이 혹사돼 인슐린 생산 능력이 떨어지면서 당뇨병에 걸리게 되는 것이다. 비만, 특히 복부 비만인 사람들은 인슐린 저항성이 높다.
또한 탄수화물은 단백질보다 체내에서 빨리 분해되므로 쉽게 허기를 느낀다. 식사 시간이 아직 되지도 않았는데 배가 심하게 고플 경우 아까 어떤 식사를 했는지 보면 대개 탄수화물이 많은 식사를 한 경우이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채 배가 고프다고 자꾸 탄수화물을 더 먹게 되면 뚱뚱해지게 된다. 당뇨병이 대표적인 현대병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은 농업 혁명으로 곡식을 많이 먹게 되고 특히 산업 혁명 뒤 정제, 도정한 흰 빵과 백미를 많이 먹게 된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다. 비만과 당뇨병을 예방하려면 밥과 빵의 양을 줄이는 대신 과일과 야채를 더 많이 먹고 운동을 통해 간과 근육에 저장된 글리코겐을 태워야 한다.
파이토케이컬이 암과 노화 예방 미국 애리조나 주에 사는 피마 인디언은 미국인보다 당뇨병 발병률이 8배나 높다. 반면 멕시코의 피마 인디언은 같은 종족인데도 건강하게 산다. 왜 그럴까? 애리조나 주는 대부분이 사막이다. 피마 인디언은 사막에 살면서 기근과 가뭄에 견디기 위해 가능하면 몸에 많은 지방을 축적해야 했다. 그러려면 단백질과 지방을 많이 섭취해야 했고 비만한 사람이 더 생존에 유리했다. 20세기 후반 들어 미국 인디언들의 식사 패턴이 바뀌면서 이들은 그 이전까지 먹던 콩과 닭 대신 빵을 먹기 시작했고 운동량도 매우 부족해졌다. 그래서 당뇨병 환자 집단이 되고 말았다.
반면 멕시코에 사는 피마 인디언은 전통적 주식인 콩과 감자, 옥수수와 닭을 먹었고 지금도 농사를 짓고 있어 운동을 훨씬 많이 한다. 그래서 같은 유전자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뇨병이 별로 없다. 몇 년 전 세계암연구재단과 미국암연구재단은 4500건의 연구 논문을 분석해 과일과 야채를 많이 먹으면 당뇨병뿐 아니라 암, 심장병, 고혈압을 예방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요즘 암이 늘어난 것도 갑자기 야채와 과일 섭취량이 줄고 암 예방 효과가 거의 없는 곡물을 주식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라는 게 과학자들의 분석이다.
야채와 과일이 암과 노화를 예방하는 이유는 파이토케미컬 때문이다. '식물(phyto)이 생산하는 화학물질(chemical)'이란 뜻의 파이토케미컬은 인체 세포에 나쁜 영향을 주는 산화 작용을 억제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토마토의 리코펜 성분이다. 리코펜은 남성의 전립선암과 여성의 자궁경부암을 예방한다. 포도 껍질과 씨나 적포도주에 많은 폴리페놀 성분은 체내에서 해로운 활성 산소를 제거해 노화를 억제한다. 또 동맥 혈관 내의 혈전을 없애줌으로써 동맥경화를 예방한다. 따라서 과일 가운데서도 토마토와 포도를 많이 먹는 것이 몸에 가장 좋다.
칼륨 섭취는 늘리고 소금은 줄여야 또 하나 석기시대에 비해 먹거리 패턴이 달라진 것이 있다. 전해질이다. 전해질은 우리 몸속에서 물에 녹아 이온 상태가 되면서 전기를 통하게 하는 물질이다. 인체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생리 활동은 세포 간의 전기 신호를 통해 이루어진다. 근육을 움직이고 눈과 귀로 듣는 것도 세포 간에 전기가 통하기 때문이다. 석기시대인은 전해질로 하루 7000㎎의 칼륨과 600㎎의 나트륨을 먹었다. 반면 요즘 현대인은 2500㎎의 칼륨과 4000㎎의 나트륨을 먹는다. 현대인은 칼륨의 섭취가 부족한 것이다. 칼륨은 바나나, 건조한 과일, 오렌지, 땅콩, 말린 콩, 완두콩, 육류, 고구마에 많다. 나트륨 섭취가 7배나 늘어난 것은 염화나트륨, 즉 소금의 과잉 섭취 탓이다. 나트륨 과잉 섭취는 고혈압, 뇌졸중, 심장병의 원인이다. 소금이 부족한 아마존 원주민과 목축민에게는 고혈압 환자가 없다.
소금을 과잉 섭취하게 된 것은 야채나 고기 같은 음식을 오래 보존하고 음식의 맛을 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지만, 요즘은 냉장고가 있고 많은 향신료가 나와 있어 굳이 소금을 많이 먹을 필요가 없다. 영어 속담에 'We are what we eat'이란 말이 있다. 무엇을 먹느냐가 곧 인간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인간의 99.99%의 유전자는 농업과 산업 혁명이 시작되기 이전에 주로 사냥꾼과 채취자였을 때 만들어진 것이다. 석기시대 사람들의 식사, 굳이 석기시대까지 가지 않더라도 전통 음식을 배워야 한다. 밥상을 차릴 때,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 선조들은 어떤 음식을 먹었을지 한번쯤 생각해 보자. 그것이 우리의 DNA를 갖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비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