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교직에 첫발을 디딘 날지 26년이 됐다. 첫 부임지도 바닷가 학교였는데 올해 찾아온 이 학교도 운동장 너머로 출렁이는 바다를 배경으로 앉아 있다. 이제 보니 저 바다가 거기에 있었다는 것을 편안하게 바라본 적이 없었던 150일이었다. 마량항에서 완도 고금도를 향해 건너가는 여객선을 2층의 우리 반 교실에서 바라볼 수 있을 만큼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 없었던 시간이었다.
우리 반 20명 개구쟁이들이 남기고 간 이야기 부스러기들을 하나씩 주워 담아 청소를 하며 혼자서 실실 웃는 시간이 늘어나는 오후 시간의 즐거움. 며칠 전, 알림장을 제때에 쓰지 않고 영찬이와 쫑알대며 장난치는 승현이에게, “그렇게 늦게까지 알림장을 안 쓰면 선생님이 뽀뽀를 해버릴 거야! 선생님이 볼에 뽀뽀를 하면 장가도 못 가요”했더니, 승현이가 얼른 대꾸를 하였다. “그럼, 선생님한테 장가가면 되지요.” 뭐라고? 선생님은 이미 시집을 갔고 너무 늙었는데?” 그러자, 이번에는 영찬이가 말대꾸를 했다. “아니에요. 선생님은 하나도 안 늙었어요.”
그것뿐이 아니다. 밥을 늦게 먹는 강이와 아영이의 식사 지도를 하고 교실에 들어오니 유림이와 고은이는 “선생님, 사랑해요”를 써 넣은 쪽지 그림과 편지를 몰래 넣어두고 갔다. 아직도 나는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연인처럼 아이들이 던지는 사랑의 밀어에 코끝이 찡해지는 철없는 선생이다.
필자는 이 선생의 자리를 오래도록 아끼고 사랑하고 감사하며 살아왔다. 그 사랑이 잠시 흔들렸던 2006년의 아픈 기억을 이제는 담담히 반추해 낼 수 있게 되었다. 고학년 담임교사 20여 년의 경험이 무색할 만큼 1학년 아이들에게 적응하지 못해서 좌절하고, 다시 ‘교육학’ 공부를 하기 위해 퇴근 후 도서관에 출근하며 이론과 현장을 접목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ADHD 증후군) 아이들과 특수교육 대상 아동이 함께 사는 교실에서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마저 느낄 수 없었던 1학기를 보내면서 몇 번이나 포기를 생각했던 아픈 상처들이 이제는 진주가 되어 20개의 보석을 만들어가고 있으니, 이제는 마음 놓고 2학년으로 올려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서 참 다행이다.
이른 아침이면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발소리 줄여가며 책을 보는 귀여운 모습, 별점을 많이 올려서 더 좋은 선물을 받으려고, 모둠장이 되려고 자신을 통제하고 바람직한 생활태도를 습관들이는 모습, 이제는 글쓰기 공부를 할 수 있을 만큼 의젓해진 모습, 읽기 책 속에 나오는 동화들을 까만 눈 반짝이며 줄줄 외우며 드러낸 앞니 빠진 모습들은 한 볼때기 깨물어 주고 싶을 만큼 예쁘기만 하다. 싸우고 소리 지르고 다쳐서 단 1분도 교실을 비울 수 없어 전전긍긍 했던 지난 일들을 추억으로 떠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학교라는 울타리에 처음 들어온 나의 꼬마 고객들에게서 학교에 오는 것이 즐겁고 행복하다는 소리를 듣는 요즈음, 나도 행복한 교단일기를 써서 종업식 날 아이들 품에 안겨 줄 숙제를 하고 있다. 교단일기를 20명의 어린 왕자들이 읽고 즐거워할 것을 상상하니 나도 행복하다.
아직도 필자에게 아이들을 향한 처음 사랑을 타오르게 하는 우리 반 아이들은 나의 스승이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자는 자신만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다.”고 한 아미엘의 말처럼 아이들의 아름다운 변모를 글로 노래할 수 있었던 2006년의 한복판에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내 생애의 어린 왕자들이니 그들이 남긴 사랑의 언어를 기록으로 남겨 2006년을 가득 채우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