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브랜드를 만들고, 이를 소비자의 머릿속에 각인시켜 판매하기 위해 들이는 노력의 깊이는 대단하다. 학교현장이 기업 활동을 따라갈 필요는 없지만, 참고해야 하는 부분이다. 지금 학교는 잠을 자고 있다. 우리 사회에 퍼져있는 다양한 문제들이 학교를 통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교사는 현장 연구자, 교육 디자이너, 학교 컨설턴트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전문가가 돼야 한다.
지난 반년 동안 가장 중요하게 한 일 중의 하나는 모 교육청에서 실시하는 학교평가에 참여한 것이다. 그 동안 필자의 주된 관심 분야가 학교조직인데 일선 학교와 가깝게 지내지 못하는 상황이 항상 죄스러웠다. 그러던 차에 학교평가위원으로 일해 달라는 부탁이 있었다. 시간적 부담은 있었으나 그동안의 죄스러움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고, 스스로에게도 좋은 배움의 경험이 될 것이라 생각되어 기꺼이 참여하게 되었다.
민감한 감각을 가진 우리 아이들 현장방문 평가에서는 각종 문서를 확인하고 관련 교사와 교장 및 교감을 면담했다. 필자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한 활동은 학교시설을 돌아보고,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교실을 살펴보는 일이었다. 첫 번째 학교에서부터 눈에 들어온 것은 책상에 엎드려 자는 학생들이었다. 그냥 조는 것이 아니라, 책상에 엎드려서 곤히 자는 학생들이 대여섯 명은 족히 되어 보였다. 처음에는 학생들이 밤늦게까지 공부하느라 힘들어서 잠깐 자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그렇게 자는 학생들을 한 학급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학급들에서도 볼 수 있었다.
지역사회 여건이 그렇게 좋지 못한 총 17개의 학교를 방문하였는데, 이러한 모습을 소수 학교를 제외한 대부분의 학교에서 볼 수 있었다. 30여명의 학생 중에는 자는 학생이 대여섯 명 포함되어 있었고, 음악을 듣는 학생, 멍하게 앉아 있거나 다른 책을 보는 학생들도 있었다. 심지어는 만화책을 보는 학생들도 있었다. 교사는 절반 정도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하고 있었다.
학교평가를 하는 중이었던 지난 9월, 모 일간지에 소개된 마틴 린드스트롬의 〈세계 최고 브랜드에게 배우는 오감 브랜딩〉이란 책을 접하게 되었다. 오감(五感) 브랜딩(branding)이란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의 신체 감각을 통해 감성적으로 브랜드를 경험하게 하는 마케팅 전략이다. 이는 인간 의사소통의 95%는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고, 80%는 감각을 통해 전해진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내일신문 2006. 8. 10). 오감 브랜딩의 내용을 읽는 순간, 방문했던 '잠을 자는 학교'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 내용은 새로운 깨달음과 함께 고민거리를 안겨주었다.
새삼 새롭게 깨달은 내용은 기업이 브랜드를 만들고, 이를 고객의 머릿속에 각인시켜 판매하기 위해 들이는 노력의 깊이이다. 자동차 회사는 자동차 엔진의 가속음에서 고급스러움을 느끼게 하기 위해 부드러운 저음으로 할지, 아니면 젊은 느낌을 주기 위해 경쾌한 소리로 할지를 연구하고 실험한다. 심지어 트렁크 여닫는 소리, 깜빡이와 에어컨 소리도 고객의 취향을 고려해서 만든다. 운행 시 타이어 타는 냄새가 역겨운 것에 착안해서 일정 속도 이상으로 달리면 라벤더 향이 나도록 하는 '아로마 타이어'를 개발한 사례도 있다.
이러한 깨달음에 이어진 고민거리는 변화를 예측하기 어려운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시켜야 할 것인가이다. 미국에서는 성인 한 명이 하루에 1500~2000개의 브랜드를 접한다고 한다(동아일보 2006. 9. 11). 이렇게 많은 브랜드 자극에 의해 민감해진 감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요즘 아이들은 MP3로 노래를 들으면서 군것질을 하고, 텔레비전을 보면서 수학 문제를 풀고 영어 단어도 외운다. 핸드폰 문자를 찍는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이들은 성인들에 비해 감각적으로 대단히 발달해 있다. 어떻게 이들을 가르칠 것인가? 이는 학교평가가 끝난 지금도 머릿속에 남아 있는 고민거리이다. 그런데 우리 교직 사회의 요즘 걱정거리는 무엇인가?
혼란한 교직사회 속에서 잠들어 지난 해 우리의 교직사회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이 혼란의 중심에는 교원평가제가 있었으며, 교사들은 교원 성과급 지급에 반대하는 운동도 하였다. 이 혼란 속에서 교장 공모제, 선출 보직제와 같은 교장 임용 제도와 수석 교사제 등이 단위 학교의 교육과 경영의 질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제기되어 논의되고 있다. 자립형 사립학교 확대 실시 논란, 개방형 자율학교 시범 운영, 방과 후 학교 제도 시행 등도 2006년 교직사회를 흔들어 놓았다. 교육위원회를 시·도의회로 통합하고, 교육감과 교육위원을 직접 선출하는 것이 국회 교육위원회를 통과한 일도 있었다. 이는 시·도 단위에서 교육제도 수립과 운영의 효율성을 기하고 주민들의 참여도를 높이기 위한 구상이었다. 이 문제에 관해서도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집단들 사이에서 뜨거운 찬반 공방이 벌어졌다.
이렇게 복잡하고 다양한 사안들에 대해 이해당사자들이 하는 주장들은 모두 명분이 있고, 논리적 설득력도 있으며, 실제적으로 필요한 측면도 있다. 여기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 주장의 타당성이나 합리성이 아니다. 교사들, 교육 행정가들, 학부모들, 정치가들이 이런 논의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갑론을박하는 동안 학교에 온 많은 학생들이 교실에서 잠자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려는 것이다. 다시 잠자는 학급으로 돌아가자.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자거나 딴 짓을 하는 것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대표적인 예로 철야 아르바이트, 컴퓨터 게임, 과외 수업, 혹은 건강 문제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학생들의 입장에서 볼 때 특정 과목은 대학입학에 도움이 안 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며, 몇몇 학생들은 대학입학에 관심조차 없을 수도 있다. 혹은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누적된 학습 결손으로 인해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데 교사들은 이러한 학생들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교장, 교감도 마찬가지이다. 직업반을 만들어 운영도 해 보지만, 학생도 학부모도 좋아하지 않는다. 성적이 낮은 학생들을 따로 모아 가르치면 좋겠는데 소위 우열반 편성은 금지되어 있다. 운동 등 공부 이외의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의 경우 각자 하고 싶은 것을 찾아서 하도록 하고 싶으나 그것도 규정, 재정 형편, 혹은 담당교사 문제 때문에 불가능하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학부모와 지역사회가 소위 'SKY 대학' 입학생 수만 세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는가?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중 하나일 것이다. 하나는 자는 학생, 딴 짓하는 학생은 지금처럼 그대로 놓아두고 공부할 학생만 데리고 수업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한 교실에서 학생 각자의 요구와 특성에 맞게 직업교육, 특기적성교육 그리고 입시준비교육을 모두 하는 것이다.
학교 공동체에서의 교사의 위상 교사는 '학교'라는 조직의 한 구성원이다. 학교는 학부모들과 지역사회 주민까지 구성원으로 참여하는 공동체이다. 때문에 교사는 학부모와 지역사회 주민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일하게 된다. 교사의 역할은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교사가 가지고 있는 위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진동섭, 근간). 교사직은 전문직이다. 동시에 교사직은 고도의 정신노동을 하는 근로자이기도 하다. 교사직의 근로자성은 교사의 노동조합 활동을 법률로 보장하는 것을 통해서 잘 알 수 있다(표시열, 2002: 215). 전문직이자 정신노동자인 교사는 구성원들과의 관계에서 다음과 같은 다양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는 서로가 선택해서 이루어지는 관계가 아니다. 이들은 우연적이고 일시적으로 만나서 가르치고 배우는 공적인 관계이다. 그러나 이들 간의 관계는 교육애와 애정, 신뢰와 존경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교사와 학부모의 관계는 학생을 매개로 해서 이루어지는 비선택적·일시적 관계이다. 교사는 교육공급자이고 학부모는 교사가 제공하는 교육의 수혜자 혹은 소비자이다. 교육에 있어서 비전문가인 학부모는 전문가인 교사에게 자녀들의 교육을 위탁했다. 교사는 교육전문가임과 동시에 학부모에 의해 자녀교육을 위탁 받은 사람이다.
교사와 교사의 관계를 살펴보면, 교사들은 서로를 가장 편안한 상대로 생각하지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이들 사이에서는 전문적 협력이 이루어지지만 이는 개인적인 친분에 의한 것인 경우가 많다. 교사와 교장은 학교에 의해 고용된 피고용자의 신분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이들은 같은 배를 타고 있는 동업자임과 동시에 학교조직의 상급자와 하급자 위치에 있다. 중요한 것은 어느 입장에서 보든지 교사는 자율성과 책임감을 가진 전문직이라는 점이다. 학교는 개방적 공동체다. 학교와 환경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면서 서로 도움과 영향을 주고받는다. 학교 내 구성원들 간 관계에서도 개방적인 교류가 이루어진다. 이 안에서 교사가 처한 상황은 매우 복잡하고 어렵다. 대표적인 예로 교사들은 학교라는 담장 안에서 제한된 시간 동안 학생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교사가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은 줄어들고 교사에 대한 기대와 책임은 높아져만 간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자명한 사실은 교사의 존재를 확인하는 곳은 '교실'이고, 교사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교육의 질'이고, 교사의 존재를 지켜 주는 것은 '전문성'이라는 점이다. 학생에 대한 선택권이 없는 교사로서 교사에 대한 선택권이 없는 학생을 상대할 때는 물론이고 하급자인 교사로서 상급자인 교장을 상대할 때, 피위탁자인 교사로서 위탁자인 학부모를 상대할 때, 전문가인 교사로서 똑같은 전문가인 동료 교사를 상대할 때, 교사는 당당하고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당당함과 자신감은 교사의 전문성에서 나온다. 교사전문성의 핵심은 교육에 대한 전문적 지식 및 기술 체계와 교직윤리 의식이 핵심을 이룬다. 교사들은 이러한 전문성을 기반으로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교육전문가'가 되어야 한다(진동섭, 2002).
전문가로써 해야 할 세 가지 역할 변화하는 학교사회에서 교사가 전문직으로서의 위상을 강화화기 위해 수행해야 할 역할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이 중 세 가지만 강조하고자 한다. 우선 현장연구자로서의 역할이다. 로티는 교사직을 '특수하지만 그늘에 있는 직업'이라고 했다. 교사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나 교육행정가, 교육대학이나 사범대학 교수의 그늘 속에 있다는 것이다. 교실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공간으로서의 의미뿐만 아니라 교육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연구하고 개발하고 학습하는 현장으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현장에 근거한 지식과 기술을 개발함에 있어서 이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교사보다 더 유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있겠는가?
다음은 교육 디자이너로서의 역할이다. 교사는 45분 혹은 50분의 교수·학습 활동을 디자인하는 디자이너가 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교육 디자이너는 정해진 교육내용을 기계적으로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학생의 특성과 요구에 맞게 학습내용, 학습방법 등을 디자인해주는 사람을 뜻한다.
세 번째는 학교 컨설턴트로서의 역할이다(진동섭, 2003). 학교 컨설팅은 교원들이 직무 수행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이나 새로운 과제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가지고 그 해결을 도와주는 일이다. 40만 교원들은 모두 나름대로 교육에 관한 비법들을 한 보따리씩 가지고 있다. 문제는 이것이 교사들 간에 공유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장연구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면 보다 체계적이고 객관적인 지식과 기술이 만들어진다. 이것을 다른 교원들의 전문성 개발을 위해 활용하고, 본인도 다른 교원의 도움을 받아서 서로의 전문성을 공유하자는 것이 학교 컨설팅의 취지이다.
이상과 같은 세 가지 역할은 교사들이 혼자서 고민하고 수행해야 하는 역할이 아니라, 학교 공동체 내에서 함께 이루어지는 역할이다. 현장연구는 개인 혹은 다수가 수행할 수 있다. 교육 디자이너의 역할도 마찬가지다. 학교 컨설턴트로서의 역할 역시 상대방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이 글에서 말한 인문계 고등학교 교실 상황은 전국 모든 학교의 상황이 결코 아니다. 오감 브랜딩은 학교가 아닌 기업의 이야기다. 이는 학교가 기업을 쫓아가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업이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노력하는지 알 필요는 있다. 그리고 이러한 기업들이 만들어가는 사회변화가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파악해야만 한다.
학교는 학생들을 위해 꼭 필요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일선 학교는 자력으로 그러한 조직으로 만드는데 어려움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현실에 안주할 수는 없다. 행정가와 정치가들이 여건을 마련해 줄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교사들은 교직의 현실을 자조(自嘲)가 아니라 자조(自助)해야 한다. 현장연구자, 교육 디자이너 그리고 학교 컨설턴트로서 교사의 역할을 돌아보고, 현재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함께 찾아서 함께 시행하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