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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다툼에는 새우 등 안터진다(다투다 : 싸우다)



김경원 |<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 저자

[문제] 괄호 안에서 자연스러운 표현을 고르시오.
1. 허구헌 날 밥그릇 (다툼만/싸움만) 허고 앉아 있는 놈들 좀 보게.
2. 갑돌이와 갑순이는 늘 1, 2등을 (다투는/싸우는) 라이벌이다.
3. 개 두 마리가 으르렁거리며 (다투는/싸우는) 장면이 볼만했다.
4. 그 친구는 말로 (다퉈서는/싸워서는) 도저히 당해낼 수 없는 상대다.
5. 고래 (다툼/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

[풀이]
‘다투다’는 어디까지나 말로 시비하는 것
매일같이, 아니 시시각각 다른 사람은 물론 자기 자신과도 부딪히며 다투거나 싸우는 것이 우리네 일상이다. 그런데 ‘권력싸움’이 아니라 ‘권력다툼’인 것은 왜일까? 그리고 ‘파벌다툼’이 아니라 ‘파벌싸움’인 까닭은? 또 ‘부부다툼’이 아니라 ‘부부싸움’인 것은 어째서일까? 실로 ‘다툼’과 ‘싸움’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먼저 ‘다투다’는 의견이나 이해관계가 맞지 않아 서로 따지며 옥신각신한다는 뜻이다. “다투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라”, “아이들 교육 문제로 아내와 다투다”, “돈 문제로 집안 사람들끼리 심하게 다투었다” 등에서 ‘다투다’는 어떤 사안과 관련해 상대를 누르고 자기를 내세우고자 하는 행동인데, 다행스럽게도 이때 이기고자 하는 의지는 ‘말’로만 나타난다. 즉, ‘다투다’는 상대의 감정을 언짢게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말로 시비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니 말을 할 줄 모르는 동물들은 ‘싸우기는’ 해도 ‘다투지는’ 못한다고 봐야겠다.

한편 ‘싸우다’는 사람이나 동물이 힘이나 무기를 써서 상대를 공격하여 이기고자 하는 행동을 가리킨다. 이때 ‘무기’에는 ‘말’이라는 수단도 들어간다. 따라서 ‘친구와 싸운다’나 ‘칼로 싸운다’ 같은 용례와 더불어 ‘말로 싸운다’는 표현도 성립한다. ‘다투다’ 안에는 이미 말로 치고받는다는 전제가 들어 있으므로 ‘말로 다툰다’는 표현은 어색할 수밖에 없으나 복합어로서 ‘말다툼’이나 ‘말싸움’은 모두 훌륭하게 성립한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지는 이유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속담은 힘이 센 놈들끼리 싸우는데 뜻하지 않게 사이에 끼여 애꿎은 피해를 입는 경우를 뜻한다. 필자는 어릴 때 이 속담을 들은 뒤로 “새우 싸움에 고래 등 터진다”와 곧잘 헷갈렸는데 이제 와 생각하니 ‘고래 싸움’의 이미지를 머릿속에 제대로 그리지 못했던 듯싶다. 고래 두 마리가 거대한 몸집을 서로 부딪쳐 싸우면서 바닷속을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장면을 생동감 있게 상상했더라면 그런 혼동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고래들이 벌이는 수중 소동이야말로 아무런 관계도 없는 제3자인 새우를 피해자로 만드는 원인일 테니 말이다.

여기서 조금 장난기를 발동해서 ‘고래 다툼’을 떠올려보자. 두 마리 고래 사이에서 끼이끼이 하며 고성(?)이 왔다갔다하는 장면이 그려진다. 흥분한 다혈질 고래라면 삿대질도 하고 몸부림도 칠 터이니 바닷속이 꽤나 시끄럽고 물살이 일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말만 왔다갔다하는 시비인 바에야 새우 등이 터지는 비극까지는 벌어지지 않을 듯하다. 물론 ‘다툼’이 ‘싸움’으로 번지면 새우의 안존이 위태로워질 터이니 눈치빠른 새우라면 몸을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것쯤은 진작에 알고 있으리라. 이렇게 ‘고래 싸움’이냐 ‘고래 다툼’이냐에 따라 새우의 등은 무사할 수도 있고 터질 수도 있으니, 여기에 ‘다툼’과 ‘싸움’의 큰 차이가 있다.

‘다툼’보다 ‘싸움’의 규모가 크다
이렇게 새우 등이 터지느냐 마느냐 하는 절실한 문제에서 충분히 알아챌 수 있듯이, 어쨌거나 말로 싸우는 편이 물리적인 완력으로 싸우는 것보다는 덜 격렬하다. 물론 한마디로 상대의 목숨을 위태롭게 만드는 ‘독설’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물리력 자체만 따져보건대, 아무리 심한 말이라도 상대를 땅바닥에 쓰러뜨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투다’와 ‘싸우다’ 사이에서 볼 수 있는 수단의 차이는 겨루는 주체들이 누구냐 하는 문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다투다’는 개인들 사이에서 일대일로 벌어지는 대립이나 갈등을 나타내는 데 비해 ‘싸우다’는 나라와 나라, 아군과 적군, 관군과 의병처럼 집단과 집단 사이에 벌어지는 큰 규모의 대결을 가리키기도 하는 것이다. 즉 “이라크와 미국이 싸운다”, “죽창을 들고 적과 싸웠다” 할 때 ‘싸움’은 ‘전쟁’이나 ‘전투’와 동의어가 된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갈등이 표현되는 격렬함의 정도에서도 두 낱말 사이에 차이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죽자사자 ‘다툰다’고 한들 ‘싸움’이 발산하는 격렬함에 비하면 약과일 따름이다.

‘싸움’의 대상이 더 고차원적이다
‘다투다’가 주로 개인들 사이에서 사적이고 일시적인 사안을 두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의견 대립을 의미하는 데 비해 ‘싸우다’는 윤리적인 견해나 정치적 입장을 둘러싸고 공적으로 혹은 장기적으로 대립하는 경우를 포함할 수 있다. 다르게 말하면 ‘다투다’는 감정적인 측면이 강하고 때로는 좀스러운 갈등이라는 느낌을 주는 반면, ‘싸우다’는 갈등의 면모가 거창하고 대단하게 느껴지는데다 때로는 정신적 분투나 내면적 투쟁처럼 추상적인 차원까지 아우르는 어감이 있다.

그래서 ‘싸우다’에는 가난, 굶주림, 고통, 죽음, 병마, 추위, 유혹, 자신 같은 추상적인 대상에 맞서 그것을 이겨내려고 노력하거나 시련을 참아낸다는 뜻이 들어 있다. “조국의 발전을 위해 싸우는 노동자들”, “시베리아에서 겨울을 맞이한 군대는 살인적인 추위와 싸워야 했다”, “자유는 피 흘려 싸워야 얻을 수 있다” 등이 모두 이런 경우다.

‘다투다’와 ‘싸우다’는 공격성에서도 차이가 난다. ‘다투다’가 상대를 제압해서 쓰러뜨리려고 하기보다는 자기가 옳다는 것을 주장하는 데 초점을 두는 데 비해 ‘싸우다’는 기필코 자신이 상대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이 목적이다. ‘싸우는’ 목적을 달성하려면 반드시 자기 발아래 상대의 무릎을 꿇려야 하니,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는 식의 오기와 승부욕이 따라붙을 수 밖에 없다.

목표가 초점이면 ‘다툼,’ 상대가 초점이면 ‘싸움’
앞에서 왜 ‘권력싸움’이 아니라 ‘권력다툼’이며 왜 ‘파벌다툼’이 아니라 ‘파벌싸움’이냐는 질문을 던졌었다. ‘다투다’는 남보다 앞서거나 상대를 이기기 위해 서로 겨루되, 어디까지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함이라는 긍정적인 뜻이 강하다. 즉 ‘권력을 다투다’, ‘왕권을 다투다’, ‘수석을 다투다’, ‘우승을 다투다’, ‘선두를 다투다’, ‘앞을 다투다’, ‘주도권을 다투다’ 등에서 ‘다투다’는 상대를 꺾어 누르기 위함이 아니라 권력, 왕권, 수석, 우승, 선두, 앞, 주도권을 쟁취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인 것이다. 따라서 ‘다툼’이나 ‘싸움’이 따라붙는 복합어의 경우에 앞에 오는 말이 어떤 목표를 제시하는 것일 때에는 응당 ‘다툼’이 되어야 한다.

이런 뜻을 좀 넓힐 때 ‘시간을 다툰다’는 관용 표현을 얻을 수 있다. “한시를 다투는 긴급한 출동”, “1분 1초를 다투는 위급한 수술”에서처럼 짧은 시간이라도 되도록 아끼려고 애쓸 때 ‘다툰다’고 하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목표가 초점에 놓여 있기 때문에 가능한 표현이다. “고도의 정확성을 다투는 기술”, “1mm를 다투는 정밀성”같이 아주 미세한 차이로 성패가 갈릴 때 ‘다툰다’는 말을 쓰는 것도 똑같은 맥락에서다.

한편 ‘싸움’의 경우에는 대결의 상대가 표면으로 떠오른다. “최선을 다해 싸운 경기였다”, “강한 팀을 맞아 힘겹게 싸웠다”에서 ‘다투다’가 아니라 ‘싸우다’가 쓰인 까닭은 승리라는 목표 자체보다는 상대를 염두에 둔 전투적 대결의식과 승부욕에 초점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 중요한 차이점이 또 하나 있다. ‘다투다’는 엇비슷한 힘을 소유한 이들끼리 대등한 관계에서 갈등하는 것인 데 비해 ‘싸우다’는 힘이나 실력에서 우위에 있는 상대와 대결하는 경우에 쓰인다는 것이다.

‘부부다툼’이 아니라 ‘부부싸움’인 까닭
그렇다면 목표가 앞에 제시되어 있는 ‘밥그릇싸움’의 경우에는 왜 ‘밥그릇다툼’이 아닌 걸까? 그 까닭은 ‘밥그릇’이 단순히 먹을 것이나 이익을 비유했다기보다는 부정적인 의미의 이권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밥그릇싸움’이라는 말에는 정당하지 못한 목표를 놓고 이전투구를 벌이는 사람들에 대한 윤리적 비난의 의미가 담겨 있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사실 한 가지는, ‘다툼’ 앞에는 어디까지나 긍정적인 목표가 제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은 ‘밥그릇’과 달리 긍정적인 대상인데 어째서 ‘사랑다툼’이 아니라 ‘사랑싸움’인 걸까? 여기서는 ‘사랑’이 쟁취의 대상이 아니라 갈등의 주체라는 데 열쇠가 있다. 즉 ‘사랑싸움’은 두 사람이 서로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사랑’이 서로 부딪치며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을 나타낸다. 이렇게 대결의 주체가 앞에 붙었기 때문에 ‘사랑다툼’이 아니라 ‘사랑싸움’이 된 것이다. ‘소싸움’, ‘닭싸움’에서 ‘소’와 ‘닭’이 대결의 주체인 것처럼 말이다.

마지막으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부부싸움’이다. ‘부부다툼’이면 좋았을 것을, 왜 하필 ‘부부싸움’이 된 것일까? 앞에서 살펴본 대로, 해답은 부부라는 갈등의 주체가 전면에 등장하고 또 ‘상대’가 초점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니 아무리 부부라도 일단 ‘싸움’을 벌인 이상 우열을 가리는 일은 피할 수 없다.

‘다투다’가 그저 남보다 더 잘하고자 하는 것이어서 상대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지는 않는 데 비해 전투성과 공격성을 전제로 하는 ‘싸우다’에서는 진 쪽이 쓰라린 피해를 입게 되어 있다. 따라서 ‘부부다툼’이 아니라 ‘부부싸움’이 된 까닭은 무릇 이런 갈등이 상대의 가슴에 크고 작은 상처를 입히기 마련이어서인지도 모른다. 실로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속담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요약]
다투다
∙개인들 사이의 일대일 대립만을 가리킴
∙말이 주요 수단
∙대등한 관계에서 벌어지는 갈등, 경쟁, 비교적 일상적인 대립

싸우다
∙개인 대 개인, 집단 대 집단 대결을 두루 가리킴
∙말보다는 힘이나 무기가 주요한 수단
∙제압을 목적으로 한 격렬한 대립

[답]
1. 싸움만 2. 다투는 3.싸우는 4.싸워서는 5.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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