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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의 특징과 ‘의’의 운명



한국어다운 표현을 찾아서

이제까지 두 번에 걸쳐 관형격조사 ‘의’ 이야기를 해왔다. 그리고 ‘의’를 생략해도 좋은지 잘 따져야 깔끔한 말과 글을 구사할 수 있다는 것과, ‘로의’, ‘로서의’, ‘에의’, ‘에서의’, ‘으로부터의’, ‘와의’ 같은 일본어투 조사를 그대로 옮기지 말고 적절히 손질하여 한국어다운 표현을 몸에 익힐 것을 제안해보았다.

실제로 글쓰기를 할 때 ‘의’를 어떻게 하면 잘 구사할 수 있는지를 적잖이 고민하게 된다. 이른바 세계화시대를 맞이한 오늘날, 영어나 일본어, 중국어 같은 외국어의 물결은 점점 더 거세게 밀려올 것이 틀림없다. 사람의 이동이 많아지고 교류가 늘어나면 언어가 뒤섞이고 변화를 겪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밀려온다고 손 놓고 떠밀려 가기보다는 자기 자신한테 어울리는 알맞은 언어 환경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마치 한국어에 남의 옷을 걸쳐 놓은 듯한 관형격조사 ‘의’의 어색한 쓰임새를 점검하여 바로잡는 일은 한국어다운 글쓰기에 여간 중요하지 않다.

서술어 중심이란
‘의’가 던져주는 문제를 곰곰이 곱씹어보면, 한국어 표현의 특성이 동사와 형용사 같은 서술어 중심이라는 점을 새삼스레 확인할 수 있다. 서술어란 문장 안에서 ‘주어의 성질, 상태, 움직임을 나타내는 말’로 동사, 형용사, 서술격조사가 붙은 말을 가리키는데, 여기서 서술격조사는 어디까지나 조사인 만큼 체언에 붙는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서술어 중심이란 과연 어떤 특징을 가리키는 것일까.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아마도 깊이 있는 언어철학 분야의 통찰을 동원해야 할 것이나, 여기서는 단순하게나마 개괄해보기로 한다(무엇보다 필자의 능력이 닿지 않는다는 점을 양해해주시길 바란다). 우선 다음 두 예문을 읽어보자.

(1) 참 맛이 좋구나.
(2) 참 좋은 맛이구나.


아주 단순한 문장들이지만 말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1)은 ‘맛’이라는 주어에 그것의 상태를 나타내는 형용사 ‘좋다’라는 서술어를 결합한 반면, (2)는 ‘좋은 맛’이라는 명사를 서술어로 삼았다. 특히 (2)는 주어를 생략한 채 서술어만으로 문장이 성립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이 문장의 주어는 ‘이것은’ 혹은 ‘이 음식은’ 정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서술어 중심이란 ‘좋은 맛이다’보다는 ‘맛이 좋다’처럼 명사+서술격조사로 이루어진 서술어보다는 동사나 형용사를 서술어로 취하는 표현이 좀 더 자연스럽다는 특징을 가리킨다고 이해할 수 있다. 또한 (2)에서 보듯이 주어 없이 서술어만으로도 문장이 되기에 모자람이 없다는 점도 서술어 중심이라는 특징을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라 하겠다.

명사가 중심을 이루는 표현
영어를 공부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내가 생각하는 것은 ~이다’(I think that~)라는 문장구조를 기억할 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려고 할 때 일단 ‘내가 생각하는 것’이라는 명사구를 맨 앞에 턱 내놓는다. 예를 들어 ‘내가 느낀 점은 한국이 꽤 경제적인 성장을 이루었다는 것이다’라는 문장을 들여다보면, 자연스레 첫 자리를 차지한 주어가 강한 인상을 주면서 ‘~라는 것이다’라는 식의 서술어를 취하기 쉽다. 이렇게 주어도 명사, 서술어도 명사인 특징을 명사 중심이라 부를 수 있다.

일부러 지어낸 문장이라 좀 어색하지만 명사 중심의 표현과 동사 중심의 표현을 비교하기 위해 ‘나의 올해의 희망은 해외로의 파견 근무다’ 같은 문장을 살펴보자. 한국어 표현으로서는 누구나 불만을 가질 법하지만 영어나 일본어를 직역한 문장으로서는 가끔 목격할 수 있는 표현이다. 이것을 ‘나는 올해 해외파견 근무를 희망한다’로 바꾸어 써보면, 역시 한국어다운 표현은 동사가 중심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불어 명사가 중심을 이루는 표현에서는 ‘의’가 지대한 역할을 떠맡는다는 점도 알아챌 수 있다. 따라서 서술어 중심인 한국어를 잘 다루려면 적재적소에 ‘의’를 쓰는 요령을 익힐 필요가 있다.

‘의’를 없앨 수 있다면 없애자
지난 호 <‘나의 살던 고향’이 어색한 까닭-관형격조사 ‘의’에 대하여(1)>편의 마지막 부분에서 ‘의’를 생략하는 경우를 요약한 바 있다. 복습 겸 되풀이하자면, 그것은 ①‘언니 연필’처럼 ‘의’로 이어진 두 체언이 소유주와 소유물 관계를 나타낼 때, ②‘코끼리 코’처럼 전체와 부분의 관계를 나타낼 때, 그리고 ③‘선생님 아들’처럼 친족 관계를 나타낼 때였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자연의 관찰’, ‘학문의 연구’, ‘상품의 수출’처럼 앞에 나온 말이 뒤에 오는 말의 목적어인 경우도 생략이 가능하다.

생략의 묘미는 뜻을 해치지 않으면서 모양새가 좋게 하는 데 있다. 명사구 표현은 ‘의’의 부작용을 금방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예인데, 제목을 떠올리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즉, 누구나 글을 쓰다 보면 크고 작은 제목을 다는 일에 고심을 하기 마련인데, 왜냐하면 간추린 맛이 나면서도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축약된 표현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3) 수사에 있어서의 정확한 내용의 발표 → 수사의 정확한 내용 발표
(4) 헤겔의 있어서의 모멘트의 개념 → 헤겔의 모멘트 개념
(5) 근대 문학사에 있어서의 언문일치의 성립 → 근대문학사에서 언문일치의 성립


왼쪽의 예들은 흔히 논문이나 보고서의 제목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명사구 표현이다. 세 어구에 쓰인 ‘~에 있어서(의)’는 직역투를 그대로 차용한 말이므로 문맥에 따라 ‘~의’, ‘~에서’ 등으로 다듬을 수 있으며, 거기에 없어도 무방한 ‘의’를 생략하면 오른쪽과 같이 된다.

축약을 위해서는 명사를 나열하게 되고, 그 명사들을 연결하려면 ‘의’를 빈번하게 등장시킬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국어의 명사구 표현에서 ‘의’가 두 번 이상 들어가면 어법에도 맞지 않고 의미도 혼동을 일으키기 쉽다. 따라서 명사구 표현으로 맛깔스런 제목을 달기 위해서는 ‘의’를 다루는 요령과 연습이 필요하다.

서술어를 사용해서 다른 표현으로 바꾸어보자
‘의’는 두 명사가 소속, 소유, 속성, 주체, 대상, 목적 같은 관계에 있음을 나타내기 때문에 적절한 서술어를 사용하면 자연스러운 표현으로 가다듬을 수 있다. 특히 ‘의’가 두 번 이상 나올 때는 뜻이 명확해지고 글이 잘 읽히도록 서술어를 동원해 손을 볼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소설 속의 주인공의 성격’은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의 성격’으로 고치면 훨씬 읽기가 편해진다. ‘푸리에와 프루동의 계층 부정의 사상’은 ‘푸리에와 프루동이 말한 계층 부정의 사상’으로 고칠 수 있는데, 이때 ‘말한’을 문맥에 따라 ‘언급한, 주장한, 이야기한, 호소한’ 등으로 다양하게 응용하면 더욱 효과적이다. 다음의 예들도 눈여겨보자.

(6) 당국으로부터의 발표 내용 → 당국이 발표한 내용
(7) 환경 보호의 입장 → 환경을 보호하는 입장


(6)에서 ‘당국으로부터의 발표’는 ‘당국의 발표’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발표’라는 명사를 ‘발표하다’라는 동사로 바꾸어주면 의미가 더욱 살아난다. (7)의 ‘보호’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서술어를 사용하면 ‘의’로 명사를 연결된 어구의 뜻이 선명해진다.

맵시 있게 시침질하듯 ‘의’를 쓰자
이제까지 살펴본 바에 따르면 ‘의’의 쓰임새를 바로잡으려면 마치 문장 안에서 ‘의’를 쫓아내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과연 ‘의’는 추방당할 운명을 안고 태어난 조사일까. 다음 예문을 읽어보자.

(8) 중년에 학생 생활을 한다는 것은 의외로 불편하다.

이 문장의 주어는 ‘중년에 학생 생활을 한다는 것’이라는 절(節)로 되어 있다. ‘절’이란 주어와 술어를 갖추었으나 독립하여 쓰이지 못하고 다른 문장의 한 성분으로 쓰이는 단위를 가리킨다. 이 절을 ‘중년의 학생 생활’이라는 구(句, 둘 이상의 단어가 모여 절이나 문장의 일부분을 이루는 토막)로 바꾸면 표현이 간결해지면서도 의미에 조금도 손상을 입히지 않는다. 이렇듯 ‘의’의 존재 가치는 압축적인 표현으로 간결한 맛을 구사하는 데 있다.

바느질이 뛰어난 사람은 바늘땀이 보이지 않도록 공그르기(blind stitch)로 시침질을 한다. 마찬가지로 ‘의’가 겉으로 툭 불거지지 않으면서 맵시 나게 명사와 명사를 이어주도록 하는 것이 글쓰기 요령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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