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경남여고 조갑룡 교장 입시 고민이 없는 한국과학영재학교 교감에서 인문계고교 공모교장에 도전하신 계기는 무엇입니까? “영재학교에서의 3년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남다른 과학 영재들, 70% 이상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는 최고의 교사진, 카이스트에서 파견됐거나 외국인인 교수들 등 학교구성원 모두가 함께 융화되기엔 너무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었죠. 이들 모두를 이끄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챙겨야 하는 학교 살림 규모도 일반 학교와는 비교가 되지 않고요. 하지만 그 덕분에 풍부한 경험을 쌓아 어떤 일이든 해낼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무엇보다 국내 최고의 영재교육을 통해 배운 노하우를 살려 일반 학생들도 자신이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학입시에 묶여 운신의 폭이 좁은 일반 인문계고보다 교장에게 많은 자율권을 주는 개방형 자율학교가 꿈을 펼칠 수 있는 매력적인 곳이었습니다.”
경남여고에 오시면서 특별히 강조하는 것이 있다면.
“저는 취임식에서부터 ‘사람이 왜 비전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아이들에게 꿈을 키우라는 의미에서 ‘No Dream, No Gain’을 주제로 3주 동안의 모든 학급을 돌며 특강을 했죠. 학교 운영을 할 때도 꿈을 심어주고 비전을 제시하려고 합니다. 이번에 과제연구 우수학생들이 미국 아이비리그에 다녀온 것도 그런 의미에서 반응이 좋았습니다.”
“학교는 학생이 원하는 교육을 해야 하는 곳”
말씀하신 것처럼 학생들의 미국 아이비리그 탐방이 화제가 됐습니다. 열심히 하는 학생들에게는 확실한 인센티브를 보장하시는 것 같습니다.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인센티브라고 생각합니다. 공모교장으로 오기 전부터 구상해왔던 일이에요. 열심히 한 만큼 알아주고 격려해주면 아이들은 신나서 더 열심히 하게 되죠. 가장 좋은 교육은 학생이 잘할수록 도와주고 더 잘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경남여고의 경우 과제연구 우수학생, 성적 우수학생, 친구들끼리 서로의 공부를 돕는 2+2 상생학습에서 최고의 학력신장을 한 학생들, 과제연구 최우수팀 지도교사 등 모든 면에 인센티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형식적인 인센티브가 아니에요. 미국 중에서도 아이비리그를 간다든지, 일본은 조선통신사의 행로도를 따라 탐방하며 민족적 혼을 키우고 도쿄대, 교토대 등을 둘러보고 옵니다. 아이들이 또 다른 경험을 쌓고 자극을 받을 수 있도록 구성하죠.”
경남여고의 특색 교육과정인 과제연구에 대해 설명해주십시오.
“과제연구는 과학고 등에서 주로 진행하는 연구교육프로그램인 R&E(Reserch & Education)인데 ‘학생 1인 1과제 연구’라는 이름으로 학생들 스스로 흥미 있는 연구 주제를 정해 과제를 설계하고 연구하는 것입니다. 저희 학교는 정규 교육과정에 포함되어 있어요. 공부하기도 바쁜 인문계 고교에서 무슨 과제연구냐고 하겠지만 학생들이 낸 아이디어와 결과물들을 보면 아마 놀라실 것입니다. 과제연구를 통해서 학생들은 스스로 자신의 관심사를 알아가고, 공부하는 데 흥미를 느끼게 됩니다. 또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포트폴리오도 만들어지죠.”
교사선택형 보충수업을 하시는데 반대는 없었습니까?
“물론 반대의견도 많았습니다. 토론을 통해 실(實)보다는 득(得)이 많다는 결론에 이르렀죠. 학교 일이 교장이 주도한다고 모두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학교에서 결정할 중요한 사항이 있다면 학교 연수에서 전체 선생님이 난상토론을 합니다. 모두가 한마디씩 언급하는 것이 원칙이에요. 토론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학교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교과통합형 수업, 코티칭(Co-teaching)을 계획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학교에 왔을 때 또 하나의 목표가 경남여고만의 수업브랜드를 키우는 것이었습니다. 지난해부터 5월에 일주일간 수업공개를 하고 있는데 200여 명이 참관합니다. 힘들지만 교사들이 자신감을 찾고 있어요. 교과통합형 수업도 그런 차원에서 준비했는데 통섭(統攝)의 시대에 앞으로 더욱 요구되는 교육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98년 미국에서 연수받을 때 대학교수가 두 명 또는 다섯 명까지도 함께 수업을 진행하는 것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던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
코티칭은 어떻게 진행되고, 어떤 효과를 기대하십니까?
“영어 교과서에 과학 관련 내용이 있다면 대부분 적당히 넘어가거나 과학 선생님에게 물어봐서 수업을 합니다. 그렇지만 과학교사가 직접 가르치는 것과 영어 선생님이 들어서 전달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죠. 30분은 영어 선생님이, 15분은 과학 선생님이 수업합니다. 나머지 5분은 두 교사가 이야기를 나누며 진행하죠. 코티칭을 위해 간(間) 학문적으로 두 교사가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 자체로도 의미 있고 굉장히 발전적인 일입니다. 경남여고 교사라면 누구나 1년에 두 번은 의무적으로 코티칭을 해야 합니다.”
개방형 자율학교여서 학부모나 학생이 학력신장에 대한 기대가 높을 텐데 예술적 감성을 학교 발전의 원동력으로 꼽으셨습니다.
“앞으로는 점점 더 ‘감성의 시대’로 갈 것입니다. 그래서 21세기형 글로벌 인재의 필수 요건인 창의성도 예술적 감성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에게 문화예술적인 마인드를 심어주고 싶어 ‘1인 20제 가지기’1), 단체 오페라 관람, 시인 초청 특강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선생님들에게도 똑같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학생, 선생님들에게 감성교육을 할 다양한 방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미래형 교육과정이 화두인데 앞으로 어떤 교육을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요즘 시대의 문제아는 공부 못하는 학생이 아니라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것이 없는 아이입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미치는 사람이 21세기의 신(新) 천재라고 생각해요. 그에 따라서 우리는 ‘N0. 1’ 인간이 아니라 ‘Only One’ 인간을 키워야 하죠. 아이들이 자신의 소질을 발견하려면 다양한 경험이 필요한데 공부만 시키다 보니 자신의 길을 찾는 데 오래 걸립니다. 앞으로 미래 교육은 특히 아이들의 소질을 계발하고 창의성을 키우는 쪽으로 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감성적 • 문화적으로 노출을 많이 시켜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이에요.”
학교를 운영하면서 어려움이나 한계가 있다면.
“정부차원의 연속성 있는 정책지원이 부족합니다. 실험적으로 새 시대에 맞는 미래형 교육과정을 만들기 위해 학교를 운영하고 있는데 현장에 적용하면 결국 현실적인 대학입시 문제에 부딪힙니다. 학교가 앞서 나가는 만큼 입시제도가 빨리 개선되지 않아요. 이제라도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돼 다행이지만 좀 더 다양하고 우수한 인재를 선발하는 쪽으로 대학 입시가 정착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학교장의 리더십이 점점 강조되는 추세인데 교장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교장의 리더십은 무엇인가요. “영재학교에서 몸부림치다보니 리더십이라기보다 같이 살아가는 방법들을 깨닫게 됐습니다. 교장으로서 제일 중요한 것은 상대가 누구든 그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죠. 그러면서 생각의 차이를 틀리다고 규정하지 않아야 합니다. 두 번째는 믿고 맡기는 것입니다. 큰 그림과 방향은 제시하지만 그 외에는 담당자가 열심히 하도록 전적으로 믿고 맡깁니다. 상대를 인정해주고 믿음을 보여주면 책임감이 생겨 더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서로 공감대가 쌓여가죠.”
“정보는 생명, 메모하는 습관은 나의 경쟁력”
아이디어 뱅크로 통하시는데 자기개발의 노하우가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정보는 생명입니다. 6년 전부터 시작한 메모 습관은 아무도 못 따라오는 저만의 경쟁력입니다. 자다가도 일단 메모해 놓고 다시 찾아봅니다. 또 하루에 13개 정도의 신문을 봅니다. 신문을 보면 상식과 정보도 얻고 누구보다 빨리 트렌드를 읽게 되죠. 마지막으로 이외수씨, 신경림 시인 등 각 분야의 고수들을 찾아가서 인생에 대해 한 수 배우고 옵니다.”
다른 선생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가르친다는 것은 모범을 보이는 것이고, 배운다는 것은 수그린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배우면서 가르치는 사람으로 자세를 낮추고 끊임없이 공부해야 합니다. 선생님이 학생에게 어떤 본(本)을 보여주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인데 인생을 살아가는 선배로서도 실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선생은 잘하려고 하면 할수록 어렵습니다. 30년 이상 교직에 몸담아 보니 이제야 조금 감이 오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