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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직 후배들에게 다하지 못한 이야기(III)

스승과 선생
교단에서 평생을 살아온 내가 종종 ‘스승’과 ‘선생’ 문제로 고민해본 적이 있다. <국어사전>(새 국어사전, 교학사)에서 ‘스승’은 자기를 가르쳐 이끌어 주는 사람’이라 정의하고 있다. 선생, 사군(師君), 함장(函丈), 영어로 master를 첨부해 놓았고 ‘선생’은 ① 스승. teacher, ② 학예에 능한 사람, ③ 교원에 대한 일컬음. sir, ④ 나이나 학식이 맞서거나 그 이상인 사람에 대한 일컬음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선생과 스승은 동의어인가 하면서도 석연치 않았다.
‘선생’은 일찍이 저명한 정치가나 사회 인사의 호칭으로 써왔고 최근에는 원로 연예인들에게도 자주 쓰인다. 그렇다면 나도 선생이었으니까 김구 선생이나 김대중 선생의 반열에 서게 된다는 것인가? 아니다. 그런 등식은 너무 어색했다. 뿐만 아니라 엄청난 비약이 되어 묘한 이질감과 자괴감마저 들었다.
재직시절, 주변의 동료들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선생이면 어떻고 스승이면 어떠냐며 하찮은 일에 신경을 쓴다면서 부질없다고 했다. 그래도 나는 언제나 두 단어의 뉘앙스가 다른 것을 느끼며 ‘스승’과 ‘선생’을 동의(同意)로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기독교 문화권과는 달리 불교 문화권에서는 일찍이 그것을 구분하고 있었다. 불가(佛家)에서는 스승을 일컬어 ‘열반(涅槃)을 얻게 하는 위대한 사람’이라 해 여래교사를 사부(師傅)라 했고 티베트에서는 ‘라마’라 했다. 산스크리트어로 스승이라는 뜻이다. 傅는 사람이 실타래를 들고 있는 형상에서 온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교사를 스승이라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일본에서처럼 선생(せんせい)이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선생의 날’이라 하지 않고 ‘스승의 날’이라고 한다.


스승, 그는 누구인가
우리의 전통 가치 속에는 스승을 하늘처럼 존중했다. 더구나 선비 사회에서는 서로가 누구의 문하생(門下生)인가를 묻곤 했으며 거기서 연유된 것이 학파(學派)와 학맥(學脈)이었다.
철학자 플루타크는 부모로부터는 생명을 받았으나 스승으로부터는 생명을 보람 있게 하기를 배웠다고 했다. 사사(師事)라는 말도 “스승으로 삼고 가르침을 받는다”는 뜻이다. 진화론을 증명한 찰스 다윈의 뒤에는 스승 헨슬로가 있었고, 삼중고의 장애인 헬렌 켈러의 뒤에는 설리번이라는 스승이 있었으며, 증자(曾子)의 뒤에는 맹자가 있었다.
스승을 두고 “수양산 그늘이 관동팔십리를 간다”라고 한 것이나 ‘청출어람(靑出於藍)이 청어람(靑於藍)’이라는 명언의 뜻이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훌륭한 스승의 문하에서 훌륭한 제자가 태어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나에게는 ‘선생님’만 계셨지 ‘스승’은 없던 것 같고, 나 또한 분명히 ‘선생’일 뿐이었지 ‘스승’은 아니었다. 게다가 나는 사범교육을 마칠 때까지 교사는 어떤 인격의 소유자여야 하며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를 배운 바도 없고 들은 바도 없이 약관의 나이에 교과서 하나만을 들고 교단에 섰다. 가히 무식(無識)과 무지(無知)는 두려움조차 몰랐다.
그 황량(荒凉)한 땅에서 수십 성상 암담하게 살면서 뒤늦게 나 나름대로 터득한 것이 영문자 ‘TEACHER’에 담긴 개똥철학(?)이었다.
T는, Technique라고 생각했다. 교사이자 스승은 가르치는 방법은 물론이고 아동을 정신적으로 양육하고 지도하는데 남달리 독특한 기술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고 여겼고 또한 그것이 전문가의 조건이라고 보았다. 어쩌다 집에 놀러 온 엄마의 친구나 가가호호 가정을 방문해 도서와 학습지를 파는 아줌마들이나 학원 강사들도 학교 선생님과 똑같이 가르칠 수 있다면 교직을 전문직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그들이 교사의 지도 능력을 능가한다면 이는 교사의 신성불가침의 영역을 침해하는 중차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고 여겼다. 똑같은 구구단을 암기하는 데도 교사가 가르치는 방법과 엄마가 가르치는 방법은 확연히 달라야만 한다는 뜻이다.
E는 Excite이다. 매일 교수 • 학습 자료를 인터넷이나 전자 매체에서 제작한 프로그램 같은 공산품에만 의존해 여과 없이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답습(踏襲)한다면 교사를 전문가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만일 음악 시간에 인터넷 교육 프로그램을 모니터에 띄어놓고 아이들보고 따라 하기를 요구하고 있다면 전문가이기는커녕 기계에 교수권을 빼앗기고 전쟁에 나가 제대로 싸움 한 번 해보지 못한 채 투항(投降)해 버린 패장(敗將)과 다를 바 없다.
교사는 날마다, 시간마다, 새로운 교수 방법과 학습자의 흥미와 관심을 유도할 수 있는 참신성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그래서 어린이들로 하여금 교수 • 학습 시간에 “야! 요것 봐라!”하는 탄성이 나오게 해야 하고 언제나 그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며 신(新)나고 신(神)나고 신(信)나는 장(場)이 되게 해야 한다. 공자도 이르기를 일일신(日日新), 우일신(又日新), 구일신(苟日新)이라 했다. 날마다 새롭고 또 새롭고 영원히 새로워야만 한다는 뜻이다.
A는 Assist이다. 교수 • 학습을 교사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자의 자율성을 존중해 학습자 중심으로 유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교사는 사고의 전환, 방법의 전환이 필요할 것이다. 타율에서부터 자율로의 전환, 교과서로부터 참고서로의 전환, 지도하는 것으로부터 구성하는 것으로의 전환, 교사 중심으로부터 학생 중심으로의 전환, 이끄는 것으로부터 밀어주는 것으로의 전환, 강화로부터 흥미로의 전환이 있어야만 한다. 농구경기에서는 자신이 충분히 득점할 수 있는데도 그 기회를 동료에게 돌려주는 것을 ‘어시스트’라고 한다. 어시스트는 나의 영광보다 다른 사람의 성공을 도우며 대리 만족을 하는 것이다. 아무리 실력이 있을지라도 교사가 전면에 나서서 장(場)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측면에서 어린이에게 어시스트하는 역할을 많이 해야한다.
C는 Character이다. 교사는 교사다운 인격과 개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교사가 장사꾼다운 개성을 가지고 있거나 정치꾼다운 인격을 가지고 있어서는 곤란하다. 교사는 항상 학습자를 생각해야 하고 이들을 위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노심초사(勞心焦思)해야만 한다. 직업을 말하는 영어에는 Job, Work, Profession, Occupation, Vocation, Employment, Business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이 중에 우리들이 생소한 단어 하나가 있다. 그것은 ‘부른다’는 뜻의 Calling이다. 교직이 여기에 해당한다. 스승이요, 교사는 단순한 노동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또한 자기가 하고 싶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전문가의 자질을 갖추고 있을지라도 하늘의 부름을 받는 소명(召命)이 없으면 될 수 없는 것이 교사이다. 따라서 국가와 사회는 그에게 특별한 인격과 품성을 요구한다. 어린이들에게 말이나 글로 가르치지 않더라도 선생님의 태도와 행동을 통해 감동할 수 있도록 본(本)을 보여야만 한다. 제자들 앞에서는 바르고 아름다운 차림으로 서야 하며 올곧은 인격 관리를 해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는 지극히 상식적인 교직의 불문율이요, 규범이다.
비록 범부(凡夫)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그는 교사라는 신분 때문에 극한의 경지에서도 도덕과 윤리를 저해하는 행위를 할 수가 없다. 아무리 상대가 미워도 살인할 수 없으며 아무리 배가 고파도 빵을 훔쳐 먹을 순 없고 아무리 놀고 싶어도 오락실에 드나들 수 없으며 아무리 급하다 할지라도 길에다 방뇨할 수 없다. 교사는 자기 아들딸보다 사랑하는 제자를 위해 눈물을 흘릴 줄 알아야 하고 자기 자신의 영달에 앞서 문제아동을 위해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학교 선생님과 학원 강사의 다른 점일지도 모른다.
H는 Heart이다. 교사는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몸도 마음조차 가난하고 궁핍할지라도 교사다. 스승은 자기 직업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하고, 아무리 남들이 멸시하더라도 자기 직업에 대해 강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아무리 힘들지라도 교직에 충성을 다할 줄 알아야 한다.
사도(師道)의 길은 헌신의 길이며 보시(布施)의 길이다. 몸과 마음을 태워 몽매한 제자들의 가슴에 촛불을 밝혀야 하고 척박하고 썩어가는 세상에 한 줌의 소금이 되어야만 한다. 교육과정이 천 번을 바뀐다 한들 교사에게 제자 사랑과 교육에 대한 열정이 없으면 속빈 강정에 불과할 뿐이다.
얼마 전에 강원도 홍천군 내 산간벽지에 있는 C초등학교를 방문했더니 교무실에 가슴 뭉클한 현판이 눈길을 끌었다. ‘평범한 교사는 말로하고, 좋은 교사는 설명으로 하고, 수월한 교사는 모범을 보이지만 위대한 스승은 감화를 준다.’
E는 Evaluation이다. 교사는 가르치면서 동시에 평가를 하는 업무를 수행한다. 수시로 진단평가도 하고 특정 기간에 총괄평가도 한다. 이것은 아동의 평가이면서 동시에 자신에 대한 평가이기도 하다. 어떻게 가르쳤나를 알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교사는 학부모로부터, 아동으로부터, 나아가서는 사회로부터 알게 모르게 자신이 평가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R은 Responsibility이다. 교사는 적어도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교내에서 교수 • 학습을 수행하는 일이나 아동의 생활지도를 하는 일까지 모든 것을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이다. 아동의 학습이 부진한 일이나 교우관계가 나쁘거나 나아가서는 정신발달이 지체되는 일까지 책임을 지는 것이다. 나쁜 결과를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거나 순간의 실수를 모면하기 위해 합리화하거나 핑계 대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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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교사인가
44년간, 나는 교단에서 젊었을 땐 열정 한 가지만 있었지 제자에 대한 애정은커녕 판단력이나 분석력도 부족한데다가 제도마저 지식 중심의 입시(入試)라는 현안(懸案)에 매달려 마치 전쟁터 같은 생활을 했다. 스승이 아니라 ‘선생질’을 한 것이다.
많은 시간, 우리 반 아이들은 외워야만 했다. 이유는 불문곡직하고 음악이나 미술 교과마저도 달달 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시험 점수가 나쁘면 여지없이 매를 들었고 매일 나약한 아이들의 어깨에 산더미 같은 숙제를 얹어주었다. 독하고 매서우며 점수와 등수에 무지하게 인색한 선생이었다. 그런 내가 더러는 유명 교사로 불려 다녔다. 그 시절은 교사의 자질이나 테크닉은 필요 없었다. 아이들에게 매질을 잘하고 잘 외울 수 있도록 어떤 ‘메커니즘’을 만들어 주기만 하면 유능한 교사였으니까.
그런 모진 세월이 가고 어느 날 문득 이순(耳順)을 넘기면서 직을 물러났을 때에 나의 심신은 물론 인격조차 몹시 피폐해 있었다. 내 평생에 가르친 사람을 헤아린다면 족히 수천 명에 이를 테지만 명절이라고 해야 세배는커녕 눈먼 생선 한 꾸러미 보내는 제자가 한 사람도 없다. 어쩌다 경향 각지에서 졸업생들이 동창회를 한다고 연락이라도 오는 날이면 감히 얼굴을 들고 갈 수가 없어서 이 핑계 저 핑계로 숨어버리기 바쁘다. 나는 실패한 교사였다. 인생도 헛산 것이다.
훗날 내가 죽으면 제자들이 내 묘비 앞에 서서 “참 지독한 선생이었어, 숙제 안 해오면 그날은 죽는 날이었지….”, “왜 그렇게 들들 볶았는지 몰라” 하면서 손가락질을 할 것 같았다. 교직 생활은 물론이고 인성도 그렇고 인간관계도 용렬(庸劣)했다. 그런데 이런 모질고 척박했던 내 마음에 한 가지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다. 그것은 아이들이 무척 귀엽고 예뻐 보인 것이다. 조건 없이 사랑스러워졌다는 것이다. 서로 눈물을 흘기며 두 주먹을 쥐고 싸우는 모습도 귀엽고, 무엇인가 토라져 입술을 삐뚤어 문 채 눈을 흘기는 모습도 예쁘고, 심지어는 바지에 똥을 싼 모습도 예뻤다. 이순(耳順)이라는 나이가 나를 바꾸어 놓은 것이었나, 아니면 이제야 겨우 철이 드는 것인가.
그때부터 나는 지난 일들을 참회했다. 점수 좋은 순으로 사랑을 배분(配分)했던 일이며, 내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외우기만 잘하는 아이만을 사랑했던 일이며, 시험지와 책을 팔아서 용돈에 보탠 일이며, 때마다 어머니가 봉투를 가져다주는 아이를 더욱 사랑했던 일 등, 참으로 더럽고 치사하고 수치스럽던 일들이 부유물(浮遊物)처럼 떠올랐다. 그뿐만이 아니다. 더욱 가증스러운 것은 지식중심의 교육, 입시중심의 교육에 찌들어 모질고 각박하게 지내며 오로지 자기 유익과 영달만을 찾아 교단을 더럽혔던 내가 교감, 교장을 하면서 도덕과 윤리와 인성을 운운했고 교육연구원 연구사, 교육청 장학사를 거쳐 교육부 연구관의 자리까지 올라가 견강부회(牽强附會)하였으니 참으로 기가 찰 일이었다. 이런 인간이 국가백년대계를 섭렵한다 했으니 이러고도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만도 천우신조(天佑神助)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단에서 겨우 철이 드는가 싶더니 참회할 겨를도 없이 바로 옷을 벗어야만 했다. 교단에서 내가 지은 죄는 아마도 무덤까지 가지고 가서 신 앞에 준엄한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 아닌가 싶다. 그 유명한 주자십회(朱子十悔) 중에도 “교사가 제자들을 잘 못 가르치고 나중에 후회한다”는 말이 없다. 꼭 있어야 할 말이라 여겨 ‘불성교제(不誠敎弟)하면 퇴후회(退後悔)’라는 구절을 만들어 봤다.

묘비에 새길 비문
제삿날에 쓰는 ‘顯考學生府君神位’(현고학생부군신위)라는 지방(紙榜)은 ‘돌아가신 아버지께서는 생(生)을 궁극까지 배워서 명덕을 밝히고 마음 본연의 상태, 곧 선신(仙身)의 상태로 화현(化現)하시어 이 자리에 강림하소서’라는 뜻으로 쓴다. 여기서 학생이라는 신분이 눈에 들어온다. 벼슬이나 관직이 없는 사람에게 쓰인다고 하니까 내가 죽으면 ‘현고선생부군신위’로 쓰게 되는 것인가. 아주 어색해진다.
묘지에 가면 ‘○○○之墓’라는 묘비가 있다. ‘인류의 교사 요한 • 하인리히 • 페스탈로치 여기 잠들다.’ 스위스의 페스탈로치 묘비에 새겨 있는 비문이다. 망자(亡者)의 행적을 한마디로 요약한 것이다.
훗날 내 묘비에는 어떤 비문을 남기게 될까. 그날이 가까워지는 것이 두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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