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아 2010년에 교과교실제를 운영하는 학교는 전국에 647개교이다. 이 중에는 선진형(A 타입)교과교실제를 운영하는 45개교, 과목중점형(B-1, B-2 타입) 223개교, 수준별 수업형(C 타입) 379개교가 포함되어 있다. 한편 올해 선정되어 2011년에 정식으로 운영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학교가 선진형 60개교이며, 교과교실제 운영의 기본이 전제되면서 운영되는 중점학교(과학중점학교, 영어중점학교, 예 · 체능 중점학교) 105개교가 2011년에 시행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할 수 있다.
교과교실제란 각 교과마다 특성화된 전용교실을 갖추고 학생들이 교과교실로 이동해 수업을 듣는 방식이다. 특히 교과의 특성과 학생의 학습능력을 반영해 수준별 맞춤형 수업을 지원하는 학생중심의 교실운영 방식으로 교사는 교실에 상주하면서 수업을 준비하고, 대학교처럼 학생이 교사를 찾아다니면서 공부하는 형태를 말한다.
교육 패러다임 변화의 촉매가 될 것으로 기대
이러한 교과교실제 운영은 교사와 교과중심의 교육패러다임에서 교사와 학생중심의 교육패러다임으로의 변화를 의미한다. 학급교실제와 교과교실제 사이의 차이점을 비교해 보면 첫째, 시설환경면에서 학급교실제는 수업과 무관하게 모든 교과에 동일한 교실 환경이 제공되는 반면 교과교실제에서는 교과의 특성에 따른 차별화된 교실 환경이 구성되고 교실환경 자체가 중요한 교수자료가 된다.
둘째, 교과내용과 교수방법의 관계에 있어서 학급교실제 하에서는 교과내용에 비해 교수방법이 부차적인 위치에 머무는 반면 교과교실제에서는 교수방법이 교과내용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셋째, 교수방법에 있어서 학급교실제는 직접교수, 반복 및 연습 등 모든 교과에 적용되는 보편적이고 동일한 교수방법을 주로 사용하지만 교과교실제에서는 교과의 특성을 고려해 각 교과별로 차별화된 다양한 교수방법을 활용하게 된다.
넷째, 학습내용면에서도 학급교실제가 교과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숙지와 교과의 내용을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것에 초점을 두는 반면 교과교실제에서는 교과의 핵심적인 개념 및 원리에 대한 내면화와 교과별 성격에 따른 차별화된 학생의 수준, 흥미, 적성의 반영, 학생의 참여도가 주요 핵심이 된다.
한마디로 교과교실제를 운영하면 교과별 특성에 맞는 교육환경을 갖춤으로써 내실 있는 수업 운영이 가능해지고, 학생 개개인의 능력과 적성에 맞는 수준별 수업이 활성화되어 학생들의 수업 만족도가 제고되며, 교사들도 교과교실에 상주하면서 수업방법을 지속적으로 연구, 개선함으로써 수업의 전문성이 향상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환경개선과 수업혁신 동시에 이뤄져야
이처럼 교육현장의 패러다임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기대되는 교과교실제를 운영하는 학교에게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사항은 크게 학교 ‘시설환경의 변화’와 ‘교과교실에서의 수업 혁신’으로 나눠볼 수 있다.
구체적인 실행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 하드웨어 측면에서 학교 교육과정을 운영할 교과교실과 학생을 위한 다양한 공간이 필요하다. 교과별 특색을 살릴 수 있는 교과교실이 확보되어야 하며, 학생들이 교과교실로 이동해 수업하므로 자신의 물건을 보관하거나 교과미디어센터 역할을 하는 홈베이스, 휴식과 학습이 이루어질 수 있는 다양한 학습 공간 등을 구성해야 한다.
둘째,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는 학생 중심의 탄력적인 교육과정 운영과 수업방법의 혁신이 요구된다. 하드웨어만 갖추어 놓는다면 환경만 개선하는 정책에 불과하다. 하드웨어를 움직일 살아있는 O/S(Operation System)가 필요하며. 교과교실제에서 O/S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교육과정의 편성 · 운영이다.
이를 위해 교육과정 혁신학교를 함께 지정, 2009개정교육과정을 조기 도입해 학기당 8과목 이내의 이수과목 수 조정과 집중이수 및 블록타임 등 수업시간 운영의 자율화와 다양한 선택과목 개설로 학생의 진로 선택기회를 확대하고 있다. 교과의 수업시수를 학교에 따라 증감 운영하거나 창의적 재량활동을 통해 창의성을 기르는 학생활동을 학교 밖과 연계해 개발 · 제공하는 방법이 실현되어야 한다.
한편 학생 수준을 고려해 확대학급(2학급을 3개 학급으로 편성하거나 3개 학급을 4개 학급으로 등으로 편성하는 운영하는 것)의 방법으로 소수의 학생이 자신의 능력에 맞는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운영하고, 수업 후 평가에서도 일부 문항을 수준별 선택문항으로 출제해 학생들이 자신이 풀 수 있는 문항을 선택하게 하는 방법도 생각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수업 방법에 대한 혁신을 요구하는 것이다. 수업 방법의 혁신이야말로 교과교실제의 성공 유무를 결정하는 핵심요소가 된다. 교사 개인의 노력이 가장 필수적이지만 교사들이 함께 모여 수업 방법을 개발하거나 세미나를 통해 상호 컨설팅하는 교과 연구회를 활성화하고, 블록타임과 학생수준에 맞는 다양한 수업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 교과교실에 설치된 각종 기자재나 교구를 활용해 체험적이며 창의적인 수업을 운영하거나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수업 방법의 개발과 적용을 통해 자기주도적인 학습이 이루어지게 해야 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이다.
셋째, 휴먼웨어 측면에서 학교 문화의 혁신을 요구한다. 행정중심의 학교 문화가 아니라 가르치고 배우는 학교 문화를 조성해 학생이나 교원 모두 가고 싶은 학교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원 및 행정보조인력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또한 학교에 필요한 강사와 행정요원이 확보되고 각 교과교실 또는 교과연구실에 교사들이 상주하게 될 경우, 기존의 행정중심 교무조직으로는 교과교실의 성공을 기대할 수 없으므로 교과중심 교무조직으로의 변화를 통해 교사들이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에 몰두하도록 하는 휴먼웨어 측면의 혁신도 필요하다.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지만 아직 갈 길 멀어
교과교실제 운영의 기본 설계 등 준비를 모두 마치고 2010년 3월 1일부터 시범학교로서 약 8개월 정도 운영해 온 학교들이 이제는 어느 정도 정착 단계에 올라서있다. 1차적으로 지난 8월에 열린 우수학교 사례 발표회에서는 시설환경 분야와 교육과정 운영면에서 많은 사례가 발표됐다.
그러나 성공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많은 학교에서 아직도 강사나 행정보조 인력이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고, 교과교실은 만들어졌으나 그 속에 교구가 준비되지 않아 기자재나 교구를 활용한 다양한 수업을 운영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새로 증축된 학교가 아닌 경우 리모델링을 통한 교과교실이 타 학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해 환경면에서 교사와 학생들의 만족도가 낮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교사들이 가장 관심을 갖고 고민하며 해결해야 할 것은 교수중심의 수업에서 학생중심의 참여수업, 창의성을 기르는 체험중심의 수업, 개인별 맞춤형 수업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랫 동안 주로 교수중심의 수업을 해 오던 교사들이 다양한 수업 방법을 위한 자료를 구하고 학생중심의 수업방법을 찾아 직접 단기간에 교과교실에 적합한 블록타임 수업운영방식으로 전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학교현장에는 교과교실제 운영학교에 계속해서 운영비가 지원될지에 대한 걱정도 있다.
학생들의 생활지도 면에서도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교과교실제를 시행하면 교과교실마다 교사들이 상주하므로 큰 사고는 훨씬 줄어드는 반면에 학생들의 공동체의식이 낮아지고 이동 중 학생들 사이에 마찰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매 수업 시 학생들의 출석 여부를 파악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또한 학교 전체가 모든 학생들이 자유롭게 생활하는 공간으로 열리게 되면서 학생지도 영역이 더 넓어지게 되므로 성숙한 학교생활문화를 별도로 가르쳐야 하는 등 새로운 개념의 학생지도 방법을 찾아야 하는 문제점도 부각되고 있다.
따라서 교사들이 수업에 전념하도록 지원하는 행정보조 인력의 보수를 안정시켜 행정전담화가 되도록 하거나 강사비를 현실화해서 수준별 수업을 담당하는 강사들의 확보가 수월하도록 해야 된다.
여전의 과중한 교사들의 행정업무도 개선해야 한다. 행정 보조 인력이 2, 3명 배치된다 하더라도 전체 교사들의 업무를 줄이고 수업에 전념하도록 하기에는 부족하다. 특히 교과교실제 자체의 운영 업무나 교과교실 내에 나름대로의 업무가 존재하므로 가르치는 업무 이외의 행정 관련 업무는 행정실로 과감히 이양하고 업무 중심에서 교과 중심으로 교무조직 개편이 시급하다.
교과교실 내에서 수업에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교구나 기자재가 부족하다거나 구비되었더라도 활용률이 떨어지는 문제점에 대해서는 교과교실형 우수 수업 사례를 통해 교과교실에서 다양한 교구와 기자재가 활용되는 수업을 적극 홍보하도록 해야 하며, 현재 구입된 기자재를 활용한 수업 연수가 단위학교별로 강화되어야 한다. 교과별로 특성에 따른 교구를 구입할 수 있도록 추가 지원도 필요하다. 학생지도 문제에 대해서는 새로운 차원의 학생진로지도교사를 배치해 해결점을 찾는 방안이 연구되어야 하고, 학생들의 출결이나 학습정보 등의 관리는 전자시스템을 도입해 정확하고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해 교사에게 새롭게 추가되는 업무를 해소해야 한다.
또한 차후 교과교실제 시범운영이 끝나더라도 교과교실을 운영하기 위한 운영비는 반드시 지원된다는 정책적 신뢰감을 주어야 함은 물론 학교마다 갖고 있는 문제점들을 함께 개선해 나가려는 강한 의지도 보여야 한다.
특히 교과교실제와 관련해 교과교실에서 수업하는 것 그 자체를 교과교실제로 인식하는 경향을 보이는 교사들의 마인드를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동안 교과교실제 시행과 관련해 학교장과 핵심교원, 시설담당자 중심으로 연수를 진행해 왔으나 좀 더 폭을 넓혀 많은 교사들이 교과교실제를 정확히 이해하고 교수 · 학습에 대한 마인드를 전환하도록 하는 연수가 계속되어야 한다. 결국 교사들의 수업 개선 의지와 마인드 전환이 있어야만 교과교실제가 성공할 수 있으며, 학교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참여와 열정, 실천으로 교과교실제가 현장에 착근될 수 있다.
국내외 성공사례 본보기로 삼아야
최근의 어느 신문에 교과교실제를 운영하는 학교의 어떤 학생 이야기가 다음과 같이 소개 됐다.
“원하는 선생님의 수업을 듣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아 분초를 다퉈 수강신청을 했다. 쉬는 시간엔 과목별 교육자료, 책, 테이블과 의자가 구비된 미디어센터를 찾는다. 주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시험기간엔 책을 펴고 공부를 한다. 수업 전 영어전용교실에 일찍 도착하면 교실에 비치된 영자신문을 보며 시간을 보낸다.”
<시사기획 KBS 10>은 ‘떠들썩한 교실 수업을 바꾼다’는 제목으로 ‘핀란드는 OECD 국가 중 가장 적은 시간을 공부하지만 학업성취도와 학습효율화 지수가 세계 최고이다. 수업 풍경은 어떻게 다를까?’를 다뤘다. 학생과 교사는 수업 중에 끊임없이 대화하고 배운 내용을 모르면 언제든 질문한다. 학급당 학생 수가 적고 수업시간도 과목당 75분인 이른바 블록수업으로 배운 내용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돕고 있다. 학교에 따라 1년을 다섯 학기로 나눠 학기당 과목수를 줄이는 것도 학생들이 공부 부담을 줄이는 대신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다. 방송에서 5년 전부터 핀란드에서 살기 시작한 교포가정의 학생 최안희(14)는 “학원 없이도 스스로 공부하는 즐거움을 알아가고 있다고 말한다”라고 말했다.
이 두 가지 사례는 교과교실제를 운영하는 학교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모든 학교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보여 준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