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을 떠올리면 늘 생각나는 분이 있다. 그분을 떠올리면 말할 수 없는 죄송함으로 가슴이 아려 온다. 그분은 내 지도교수님도 아니셨고, 전공교수님도 아니셨다. 그저 내가 다니던 대학의 스물네 분 학과교수님 중 한 분이셨다. ‘대학에서의 진정한 사제동행?’에 관한 원고청탁을 받았을 때 나는 내 마음 속에 새겨 있던 이 스승을 떠올렸다.
나의 대학시절, 학과교수님 중 한 분이셨던 그분이 학과장이 되신 이후 어느 날, 그는 나를 자신의 연구실로 불렀다. 공부는 잘 되느냐고, 어떤 강의가 제일 어려우냐고 물으시고는 내가 가장 어렵다고 대답한 강의와 관련된 책을 다섯 권이나 주셨다. 덕분에 나는 그 어려워했던 강의에서 A+를 받았다. 얼마 후 장학금을 받았는데 장학금이 등록금보다도 많아 생활비에 보탤 정도로 큰 장학금이어서 너무나 고마웠고 행복했다.
진정한 스승 그리고 전하지 못한 고마움 나는 그 아름다운 기억을 간직한 채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 석사과정에 진학했다. 늘 고마움의 대상이었지만, 그분은 내게 여전히 학과교수님 중 한 분이었다. 그러다가 박사과정에 진학한 후에야 비로소 그분의 강의를 수강했다. 전공과목은 아니었지만, 나는 학부 때를 추억하며 열심히 수강했다. 그분은 강의 중에 많은 질문을 통해 내 무식한 식견을 바로 잡아주셨다. 어느 날, 그 분은 내게 박사논문은 무슨 주제로 쓸 것인가를 물었고 머뭇거리는 내게 아주 중요한 고문서를 일러주셨다. 읽어보면 좋은 논문 주제를 잡을 수 있을 거라고 말씀하시면서, 혹시나 그 논문을 쓰면 전인미답의 멋진 논문이 될 것이고, 나라면 그런 논문을 충분히 쓸 수 있을 거라고 격려하셨다. 나는 곧바로 그 문집과 조선왕조실록을 읽기 시작했고 그 난해함 때문에 많은 고생을 했지만, 거의 아무도 가지 않은 처녀지를 밟으며 느끼는 경탄과 희열을 맛볼 수 있었다. 그리고 비록 전인미답의 멋진 논문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의미 있는 공부를 했고 또 큰 보람을 얻은 박사학위 논문을 쓸 수 있었다. 지금 내가 말할 수 없는 탄식과 죄송함으로 그분을 떠올리는 것은 큰 은혜를 입었으면서도 그분께 한마디 고마움의 표현도, 고마운 손짓도 해드리지 못함 때문이다. 주신 책을 잘 읽었다는 표현도, 장학금 덕분에 기혼의 대학생이었던 내가 와이프에게 존경을 받고 있다는 즐거운 표시도, 말씀해주신 문집 덕분에 내게 큰 보람을 가져다준 박사논문을 쓸 수 있었다는 한마디 말도 전해드리지 못했다. 심지어 교수가 돼서도 일부러 찾아뵌 적도 없고 그분이 서울대학교를 퇴임하는 자리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숫기 없는 나는 그저 마음속으로만 흠모하고, 그분 앞에 나서지 못했고, 지금도 여전히 나서지 못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 새교육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