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과 자기조절력은 뇌과학에서 시작” Q 최근 우리 사회 주요 키워드 중 하나가 ‘힐링’입니다. 이렇게 ‘힐링’에 집중하게 된 배경, 무엇이라 보십니까?
A 반세기 동안 우리는 격동의 세월을 보내왔어요. 밤낮없이 ‘돌격 앞으로!’를 외치며 앞만 보고 달려왔죠. 그동안은 몸과 마음이 받은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고 쌓아만 뒀어요. 현재도 마찬가지예요. 아침에 지하철을 타서 주위를 둘러보세요. 절반 이상이 졸고 있죠. 한국인은 정신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다들 만성피로에 빠져 있는 거예요.
세대별로 보면 학생은 대입 준비로 대학생은 취업 준비, 직장인은 살아남기 위해서, 중년은 정년퇴직이 얼마 남지 않아 노후준비를 해야 하므로, 어느 연령층 하나 편하질 못해요. 마음에 입은 상처를 치유해 행복해지자는 것. 이것이 바로 ‘힐링’이예요.
Q 박사님께서는 힐링과 더불어 행복물질이라 불리는 세로토닌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이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A 만성피로, 우울, 공황증 등 한국인의 7대 사회 정신병은 세로토닌 부족으로 발생해요. 저는 사회정신과 의사이기 때문에 당연히 세로토닌에 주목하게 됐죠. 앞서 힐링은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라고 했잖아요. 그러면 힐링이 필요한 사람은 당연히 마음이 편하지 않은 사람이겠죠. 성격이 급하거나 흥분, 분노, 우울증에 빠진 이들은 평상심을 유지하기가 어려운 사람이에요. 그런데 인간은 평상심을 유지하고자 하는 본성이 있어서 매우 기쁘거나 슬퍼도 시간이 지나면 원래대로 돌아와요. 이것이 ‘항상성의 법칙’이예요. 그리고 평상심을 유지하도록 돕는 물질이 바로 세로토닌이죠. 세로토닌은 우리 뇌 속에 있는 신경전달물질 중 하나로 본능적인 행위를 할 때 분비돼요. 뇌과학 쪽으로 설명하자면 뇌 속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을 분비하게 하는 것이 힐링이라고 할 수 있죠. 세로토닌은 크게 4가지 능력이 있어요. 평상심을 유지하는 자기조절력, 공부를 잘하게 하는 주의집중력과 행복감을 키워주고, 항중력에너지를 발생시켜 예뻐지게 만드는 능력이죠.
Q 그렇다면 감정노동자로 인식되는 교사에게 적합한 ‘세로토닌’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A 세로토닌은 본능적인 리듬운동을 할 때 가장 분비가 잘돼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 씹고 먹는 것이죠. 요즘 사람들은 먹는 양은 많은데 잘 씹지를 않아요. 옛날에는 평균 6000번을 씹었어요. 그런데 현대인은 200회도 씹지 않죠. 우유, 크림과 같은 부드러운 음식이 많으니 씹을 일이 없는 거예요. 게다가 채소처럼 많이 씹어 먹어야 하는 음식은 맛이 없다고 잘 먹지 않거든요. 세로토닌 신경은 입 바로 뒤 뒤통수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씹는 행동은 신경을 직접 자극해 분비가 활발해져요. 운동선수를 보면 시합 중에 껌을 씹는 것을 볼 수 있잖아요. 건방져 보일 수도 있겠지만 세로토닌을 분비해 불안을 없애려고 껌을 씹는 거예요.
두 번째는 걷기 운동이에요. 걷는 것도 리드미컬한 운동이죠. 일이 안 되고 잘 안 풀릴 때면 나도 모르게 일어서서 서성이게 되잖아요. 걸으면 세로토닌이 분비돼 평상심을 찾고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본능적으로 움직이게 되는 것이죠. 대신에 15분 이상 걸으면 피곤해지므로 세로토닌 분비가 멈춰요.
마지막으로 명상하듯이 아랫배로 천천히 호흡하는 방법이 있어요. 호흡 또한 리듬감 있는 운동이라 명상호흡을 하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아요.
Q 근래 들어 우리 사회가 ‘인성교육’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박사님도 청소년 인성교육을 위한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요.
A 중학교 2학년 때가 정서적으로 가장 흔들리는 시기예요. ‘가출해 버릴까?’, ‘자살해 버릴까?’ 등 고민도 많고 정서적으로 불안하죠. 그래서 중학교 2학년을 ‘정상적인 정신분열’이라고 이야기해요. 이 고비는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잘 이겨내야만 하는 시기죠. 때문에 중학생을 대상으로 세로토닌 드럼클럽을 창설해 운영하고 있어요. 현재는 총 130개의 중학교에 북을 후원하고, 동아리 활동을 지원하고 있죠. 학생들이 북을 치는 리드미컬한 운동을 하면 정서가 순화되고 인성교육에 도움이 돼요.
Q 최근 교육계는 학교폭력, 교권추락, 자살, 게임 중독 등으로 그 어느 때보다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이렇게 된 원인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A 한번은 세로토닌 드럼클럽 때문에 중학교에 강의를 간 적이 있어요. 근데 떠들거나 자거나 딴 짓하면서 좀처럼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학생이 많더라고요. 요즘 교실상황을 보면 제가 미국에서 정신과 공부를 하던 1960년대 상황이랑 똑같아요. 그때 하이스쿨 카운슬러로 1주일에 한 번씩 상담을 나가보면 폭력을 비롯해 미국 공립학교의 문제가 심각했어요. 그런데 작년에 다시 미국을 방문했더니 학교가 완전히 달라져 있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된 거냐고 물어봤더니 1980년대 레이건 대통령이 학교붕괴를 바로잡기 위해 연구를 시작했다고 하더군요.
20년에 걸친 연구를 토대로 1997년 ‘유아원에서 나온 유령들’이란 제목의 보고서가 발표됐죠. 이 보고서는 뇌과학 이야기가 주를 이뤄요. 교육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닌 제가 영아교육에 관한 <아이의 자기조절력>이란 책을 발간한 게 바로 이 이유예요. 보고서는 뇌과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면 이해하기 힘들거든요. 교실붕괴의 원인은 바로 요즘 아이들이 뇌의 한 부분인 안와전두피질(OFC)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해서예요.
OFC는 전두엽의 한 부분인데 눈 뒤쪽에 위치해 있어요. 감정, 폭력과 같은 원시적인 감정을 컨트롤하는 본능적인 뇌인 ‘구피질’과 이성과 의식을 담당하는 ‘신피질’을 잇는 곳이기 때문에 이 부분이 잘 발달하지 않으면 원시적 감정이 폭발할 때 이성이 제대로 눌러주지 못해 자기감정을 억제하지 못하죠. 그러므로 OFC가 발달하지 못하면 충동적이고 폭력을 일삼거나 쉽게 좌절하고 우울증에 빠지는 아이로 자라게 돼요.
요즘 아이들을 보면 남을 때리거나 왕따 시키며 괴롭혀도 ‘장난으로 했어요’라며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잖아요. 피해자가 맞아서 피를 흘려도 저 아이가 얼마나 아플지에 대한 감정이입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이는 OFC가 공감, 감정이입, 참고 기다릴 줄 아는 능력, 복구력, 스트레스 감내력 등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기본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기관이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OFC가 결여된 아이들은 끔찍한 짓을 저지르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거죠.
Q 그렇다면 OFC를 발달시킬 방법에 대해 알려주세요.
A OFC가 제대로 형성되려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해요. 첫 번째는 생후 6개월까지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는 거예요. 무조건적인 애정을 통해 애착과 신뢰감이 형성돼야 해요. 이 시기가 지나고 나면 차츰 엄마에게도 ‘NO’라는 억제 자극이 필요해요. 요즘 부모들은 아이들 기죽인다고 ‘안 된다’는 말을 하지 않잖아요. 오냐 오냐 키우느라 바빠 통제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육아 방식이에요. 아이에게는 적절한 제재도 필요해요. 억제적인 자극이 주어져야 OFC가 정상적으로 발달할 수 있어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OFC가 적어도 2~3살 전에 형성돼야 한다는 점이에요.
우리나라와 미국이 다른 점은 미국은 이혼 가정이 많아 1단계가 잘 형성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혼 가정에서는 아이가 방임상태가 돼 기본적인 믿음이 생기지 않거든요. 이렇게 자란 아이는 세상을 불신해 공격적이고 반항하는 아이로 자라죠.
OFC가 형성되지 않은 아이는 유아시기에 잘 관찰하면 표가 나요. 남을 때리거나 욕심이 많고, 떼를 쓰죠. 이 시기까지는 진단이 붙지 않아요. 그러나 초등학교 1학년이 되면 ‘주의력결핍증’, ‘행동과다증’이라는 진단이 붙기 시작해요. “하면 안 된다”는 선생님의 말에 공감과 감정 이입이 없어 수업 분위기를 흐리거나 말썽을 일으키게 되죠. 갓난아이 때 형성되는 OFC야말로 아이의 백년 미래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