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방학이다. 한 학기 동안 많은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며 학습지도, 생활지도, 행정 업무, 각종 행사 등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2학기를 준비하는 기간이다. 이 기간 동안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연찬의 시간을 갖는다.
뇌를 100% 활용하는 톡톡 수업 아이디어, 꿈과 끼를 키우는 행복교육의 이해, 마음을 열어주는 인성교육, 사례를 통한 학교에서의 개인정보보호, 수업에 날개를 달아주는 수업설계의 실제…. 방학 기간 동안 학생지도에 필요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배우고 익히며 1학기 교육활동을 반성하고, 알찬 2학기를 준비한다.
몇 가지 연수를 신청하고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내던 어느 여름방학 때의 일이다. 학교에서 실시하는 1박 2일 교육과정 연수를 전체 교직원과 함께 가게 되었다. 개학을 앞두고 2학기 학교 교육활동을 점검하기 위해 각부서 및 동학년 단위 협의회와 전체 회의가 진행되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가르침은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다, 적어도 내 마음속에는…….
연이은 협의로 모두가 피곤한 아침이었다. 그래도 정해진 시간에 모두 일어나 아침 식사가 예약된 장소로 삼삼오오 이동하여 테이블마다 자리를 잡고 담소를 나누었다. 한적한 지방 소도시에 연수원이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침 식사를 하기로 한 음식점도 그리 크지 않은 소박한 곳이었다. 노부부가 운영하고 있었는데 단체 손님을 받은 경우가 별로 없어서인지 몹시 분주해 보이기는 했지만, 테이블마다 음식이 차려지는 데는 많은 인내심이 필요했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 민첩하게 테이블 사이를 누비며 음식을 나르고 있었다. 김치며 나물이며 멸치 볶음, 어묵 조림 등 밑반찬을 대충 대충 바쁘게 접시에 담아 커다란 양은 쟁반으로 부지런하게 나르는 모습이 주변 선생님들의 시선을 끄는 순간, 나를 포함한 선생님들은 모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아 …!!! 교장 선생님!!
교장 선생님은 “어이, 앉어.” “앉어.” 하며 하시던 일에 열중하고 계셨다. 그때부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선생님들은 수저를 놓고, 물병을 나르고, 밥을 푸고, 국을 나르기 시작했다. 갑자기 손님보다 종업원이 더 많아지는 진풍경이 벌어진 것이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꿀맛 같았던 그 날의 아침식사를 생생히 기억한다. 음식점에서 다 같이 음식을 날라 먹은 색다른 경험 때문인지 분위기도 화기애애했다. 교장 선생님의 말 없는 가르침은 그 날 아침의 일 뿐만이 아니었다. 부임해 오시던 첫 해, 교장 선생님은 해가 잘 들던 교장실과 반대편에 위치해 다소 춥고 어두웠던 보건실을 바꾸셨다. 아픈 아이들이 오는 곳인데 따뜻하고 해가 잘 드는 곳에 있어야 한다고 하시며…….
교장 선생님은 행동으로 보여 주고 계셨다. 학생들을 아끼고 사랑하며, 교직원들을 믿고 존중하고 있다는 것을……. 당신을 한없이 낮추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들은 그 분을 늘 우러러 보았음을 부인할 수 없다.
교직 경력이 20년이 다 되어 가는 만큼 셀 수 없이 많은 연수를 받았지만, 그 어떤 연수보다도 그때의 기억과 그 분의 말 없는 가르침은 내가 우리 학생들을 대하는 마음가짐에 고스란히 담기게 될 것 같다. 그늘지고 어려운 곳에 서서 먼저 솔선수범하시던 아름다운 모습이 예기치 않게 나의 마음을 움직였듯이, 나를 바라보는 학생들도 나의 말과 행동을 통해 언제 그들의 마음이 움직일지 모를 일이기에 오늘도 작은 말과 행동이라도 가다듬게 된다. 선생님들에게는 매일 매일이 연수고 가르침이고 배움이다. 어느 순간 어떤 방식으로 배움이 기습적으로 다가올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