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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 때도 없이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는 일

시키지 않았는데도 자꾸만 하고 싶고, 몸과 마음을 다해 정성을 쏟고 싶은 일이 있다. 진지한 눈빛과 진심이 담긴 마음만 있다면 비록 어설프더라도 좋다. 어떤 일을 잘 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해보는 경험은 가치를 헤아릴 수 없이 귀중하다. 좋아하는 일을 잘 하게 되었을 때 한 뼘 성장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교정에 물든 노랗고 빨간 단풍만큼이나 아이들과 선생님의 얼굴이 벌겋다. “자, 박자 잘 맞추고, 하나 둘 셋 넷, 그렇지!”, “둘 둘 셋 넷, 오른쪽으로 돌고, 반대로 돌고….” 힘내서 다시 한 번만 해보자고 아이들을 달래는 선생님과 힘들다고 투정부리는 아이들. 가을 운동장은 학예회 준비로 한창이다.
학예회 준비를 위해 우리 반 역시 맹연습에 돌입했다. 매번 하는 연습인데도 아이들은 할 때마다 흥분하곤 한다. 연습을 하기 위해 책상을 교실 뒤로 밀라치면 아이들은 뭐가 그리 좋은지 마음만 들떠서는 자기들끼리 장난만 치기 일쑤였다. 책상은 제대로 밀어 놓지도 않은 채 교실을 마구 돌아다니다 선생님의 제지를 받고 나서야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곤 했다. 늘 그런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연습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공부 시간에는 별로 존재감이 없던 아이들도 이 시간만큼은 적극적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교사인 나로서는 무대에 올려야 하는 만큼 될 수 있으면 동작이 좀 더 정확하고 시원스럽게 표현될 수 있도록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 어렵지 않은 동작인데도 번번이 틀리는 아이들, 쑥스러운지 자신감 있게 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개별 지도를 하기도 하고, 틀리는 일이 자꾸 반복되면 꾸중을 하기도 하였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정확하게 무용 동작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딸아이가 자기 방 거울 앞에 서서 무엇인가 열심히 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행여나 엄마가 보고 있다는 것을 알면 안 할까봐 문틈으로 조심스럽게 들여다보니, 자기 학년 학예회 무용 연습을 하고 있었다(저희 아이는 저와 같은 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엄마가 보기에는 손동작과 발동작이 좀 더 자신감 있게 쭉쭉 나왔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는데, 중요한 것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진지하게…. 거울에 비춰 보이며 자신의 동작을 점검하는 아이의 눈빛에는 이미 총기가 있었다.

그 순간 개구쟁이 우리 반 아이들이 떠올랐다. 너희들도 아마 집에서 이러고 있겠지….
그 후로도 우리 아이는 “엄마, 이제 학예회가 3일 밖에 남지 않았어요.”하며 설레는 감정을 드러냈다.
‘아마, 우리 반 아이들도 그렇겠지!’
“엄마, 제가 무대에서 떨지 않고 잘 할 수 있을까요?”하며 긴장된 마음도 드러냈다.
‘아마, 너희들도 그렇겠지!’

우리 아이의 모습에서 우리 반 아이들의 모습이 겹쳐졌다. 설레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자꾸 교실을 방방거리며 돌아다녔던 장면들도 떠올랐다. 그리고 비록 동작은 정교하지 않았지만, 아이들의 마음을 쉴 새 없이 두근거리게 하고, 시키지 않았는데도 하고 싶게 만들고, 그때 만큼은 온 몸의 에너지를 모으는 데 주저함이 없었던 모습이 차례로 지나갔다.

그동안 아이들의 어설픈 동작만 보느라, 어느 때보다 진지했던 그 눈빛과 진심이 담긴 마음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몇 년 전부터 학예회 업무를 담당하면서 늘 업무가 힘겹다고 느꼈었는데, 이를 통해 아이들이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니 한결 수월하게 다가오는 것은 물론이고, 보람이라는 값진 경험도 하게 되었다.

그 날 이후 우리 반은 더 신나게 연습을 한다.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면서 서툰 아이들의 동작은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되었다. 대신 학예회 연습을 계기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배웠을 것이다.
마음을 시도 때도 없이 두근거리게 하고, 시키지 않았는데도 자꾸만 하고 싶고, 몸과 마음을 다해 정성을 쏟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것을…. 이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나 또한 배움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오늘도 아이들이 연습하는 모습을 보며 가수 윤도현의 노래가 새삼 떠오른다.
‘……날개를 활짝 펴고, 세상을 자유롭게 날거야, 노래하며 춤추는 나는 아름다운 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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