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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이 쌓일수록 반성도 늘어난다

우리 반 대표 말썽쟁이 현민이는 분노조절이 힘들었다. 처음엔 그저 단순히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는 아이로만 생각했는데, 상담 결과 ‘느린 학습자(경계선 지적 지능아동)’였다.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고,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수업 시간에 더 관심 있게 살피며 도움을 줘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경력이 쌓일수록 반성이 늘어난다.



현민이는 곧잘 예측할 수 없는 행동으로 학급을 난감하게 했다. 수업 시간에 동물 소리 같은 이상한 소리를 자주 냈고, 자나 연필로 짝을 툭툭 건드리며 성가시게 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어느 날은 짝이 교과서를 제대로 펴지 않은 현민이를 도와주려다 갑자기 화를 내는 바람에 당황하기도 하였으며, 다른 아이들도 이런 일을 비슷하게 당한 터였다. 한 번은 급식을 받으려는데 뒤에서 아이들이 자꾸 민다고 화를 내면서 무거운 식판 통을 바닥으로 밀어 버려서 다른 아이가 다칠 뻔하기도 하였다. 아이들과 잘 놀다가도 사소한 행동을 빌미로 감정이 격해져 화를 주체하지 못하면 갑자기 교실 밖으로 뛰쳐나가서 어딘가로 숨어 버리는 행동을 반복하기 일쑤였다. 모둠 활동을 할 때도, 모둠 주제와는 상관없는 엉뚱한 행동을 했고, 그런 행동에 짜증을 내는 아이들에게 현민이는 책상을 발로 차곤 했다. 그러다 기분이 좋아지면 자기를 보아 달라는 듯 교실 바닥을 뒹굴며 재주를 넘기도 하고, 주머니에 감춰두고 있던 사탕을 건네기도 하였다.

어느 날 현민이는 작은 얼굴에 커다란 마스크를 쓴 채, 기침하는 것이 예사롭지 않았다. “현민아, 많이 아프구나! 어서 나았으면 좋겠다.” 나의 위로가 좋았는지 자꾸 내 책상 주위를 맴돌고 말을 붙였다. 점심시간엔 감기약을 자꾸 꺼내서 보여주기만 할 뿐 먹지를 못했다. “현민아, 약 잘 먹으면 사탕 줄게. 한번 먹어보렴.” 그러자 눈 딱 감고 꿀떡 삼켰다. 현민이가 선생님 지시에 순순히 따른 몇 안 되는 순간이었다.

현민이의 이런 모습이 무척 귀여워 보였다. 자세히 관찰해보니 현민이는 사소한 행동에도 언제든지 도화선이 되어 폭발할 것처럼 보였지만, 한편으로는 ‘잘해보고 싶은데 다른 아이들만큼 잘되지 않으니 짜증을 내고, 괜히 엇나가는 행동을 한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받아쓰기 시험도 뜻대로 되지 않아 화가 많이 났는지 공책을 마구 구겨 버렸다. 그리기, 만들기, 노래 부르기, 달리기 등의 수업은 그런대로 제법 잘 따라 했지만, 받아올림이나 받아내림이 있는 수학시간,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국어시간처럼 사고력이 필요한 시간을 유난히 힘들어했고, 그 시간에 자꾸 주변 아이들을 더 성가시게 했다. 자기가 화난 것을 알아주기를 바랐던 것처럼…. 곰곰이 돌이켜 보니 잘하고 싶은 데 자기 성에 차지 않는 모습을 자신이 감당하려니 너무 힘들었던 모양이다.

며칠 전 상담 선생님께서 경계선 지적 지능아동(느린 학습자) 체크리스트를 보내주셨다. 18개 항목 중 8개 이상이면 ‘느린 학습자’로 간주하는데, 현민이는 18개 모두에 해당했다. ‘또래에 비해 행동이 어린 아동’, ‘주변 정리를 잘하지 못하고 실수를 많이 하는 아동’, ‘충동적이거나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는 아동’, ‘갑자기 화를 내는 아동’, ‘학습을 힘들어하거나 노력에 비해 성적이 지속적으로 낮은 아동’….

그랬다. 현민이는 단순히 분노조절이 안 되는,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는 아이가 아니라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였다.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더불어 수업 시간에 더 관심 있게 살피며 학습적인 면에서 더욱 도움을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현민이를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 같아 마음이 벅차올랐다. 이런 선생님의 마음을 아이들은 어찌 그리 빨리 눈치 채는지, 현민이는 처음으로 수학시간에 나와서 문제를 풀어 보겠다고 번쩍 손을 들었다. 고맙고 미안했다. 경력이 쌓일수록 반성이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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