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반은요. 모두 민수 그림자 같아요."
서울대동초 4학년 5반 김유리 양의 말을 알아차린 듯 민수(가명·정신지체)가 부끄럽게 웃음 짓는다. 두 살 아이의 지능에 멈춰있다는 민수는 아이들과 재잘거릴 때면 언뜻 장애가 있다는 걸 눈치채기 힘들다. 29명의 아이들 모두가 민수를 '편견'으로 바라보지 않아서일까.
중증 장애우보다도 따돌림과 편견에 더 시달린다는 경증 장애를 가진 민수. 하지만 아이들은 장애를 차이로 인식한다. 1학기 때 짝이었다는 유리 양은 "민수는 우리보다 못하는 게 좀 많으니까 도와야죠. 그래서 친구들도 서로 짝 하려고 해요. 밥 먹을 때 많이 흘려서 치워야 하고 가끔 소리를 지르기는 해도 이젠 다들 익숙해요"라며 웃는다.
쉬는 시간. 민수가 원격 자동차를 꺼내 조종하자 아이들이 구름같이 모여든다. 나도 해보자고 조르는 친구들과 장난치며 떠드는 모습이 정겹다.
담임인 송영자 교사는 "민수를 장애아로 보지 않고 그저 '차이점'이 많은 친구로 이해시키면서 수업과 학교생활에 있어 되도록 아이들이 함께 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 지도한다"고 말한다.
민수는 국어, 수학, 과학 등 교과시간에는 '열린반'(고학년 특수반)에서 활동하고 예체능 시간과 바른생활, 재량활동 시간에는 4학년 5반에서 수업 받는 부분통합교육을 받는다. 그런 점에서 송 교사도 학습지도보다는 생활지도와 체육시간을 이용한 운동능력 향상에 신경을 더 쓴다.
대근육 발달이 덜 돼 층계 오르내리기도 서툰 민수지만 결코 체육시간이라고 열외는 없다. 오히려 송 교사와 친구들은 민수 손을 잡고 구령을 붙이거나 박수를 치며 즐겁게 뛴다. 그 덕에 학년초 전혀 달리기를 못하던 민수가 지금은 운동장 한바퀴를 거뜬히 돌게 됐다. 발야구를 할 때도
민수는 친구 손을 잡고 베이스를 돌며 게임을 즐긴다. 민수와 똑같은 상황을 만들기 위해 공격-수비팀 모두 짝을 지어 손잡고 뛰는 룰을 만들었다.
선해수 군은 "이젠 정말 잘 뛰어요. 지난번 경기 때는 저랑 3점이나 냈는걸요"라며 어깨를 으쓱인다. 현장학습 때도 아이들은 서로 민수를 챙긴다. 수목원에 갔을 때는 함께 구령을 붙여가며 신나게 뛰어다녔고, 서울 시티투어를 할 때는 다른 조 아이들이 민수를 데리고 다니며 안내원의 설명을 들었다.
하지만 무조건 돕는 건 아니다. 진정한 '통합'을 위해 민수 스스로 해야할 부분은 남겨 둔다. 층계를 내려갈 때도 한 걸음에 한 계단씩 옮겨야 할 급한 일이 아니면 혼자 가도록 지켜본다. 식사 후 옷이 음식물로 더러워지면 혼자 물로 닦게 하고 화장실도 '큰 일' 볼 때만 돕는 등 나름대로 룰이 있다. 물론 이 모든 일을 짝이나 당번이 하는 건 아니다. 민수가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면 주위 친구들이 자연스레 다가선다.
열린반 배은선 교사는 "민수와 함께 장난치고 이동할 때 도와주는 행동들이 얼마나 자연스러운지 놀랄 정도"라며 "늘 민수의 교육을 위해 저와 상의하며 교육일정과 교육수준을 맞추시려는 송 선생님과 민수를 부담스러워 하지 않고 똑같이 어울리는 4학년 5반 친구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지난 6월 학교 수련회 때는 가슴 뭉클한 기억이 있다. 장기자랑 시간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란 노래에 맞춰 수화를 준비한 4학년 5반. 다 배우지 못해 무대에 오르지 못한 민수가 갑자기 친구들 앞으로 뛰어올라가 서툰 폼으로 수화를 따라하기 시작한 것.
송 교사는 "아이들이 마치 민수를 향해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하는 듯한 광경이 연출됐다"며 "남을 생각하는 마음이 한 뼘은 더 커진 녀석들이 정말 사랑스러웠다"고 기억했다.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민수와 그런 민수를 사랑하는 4학년 5반 친구들은 2일 '장애인 먼저 실천중앙협의회'(상임대표 이수성·전 국무총리)가 주는 사회통합부문 우수실천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