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학교나 마찬가지겠지만, Wee 클래스와 보건실 단골손님은 겹친다. 마음이 아파서 몸도 아픈 것인지, 몸이 힘드니까 마음까지 고단한 것인지, 어느 것이 먼저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학생들은 아침저녁으로, 시도 때도 없이 ‘문안 인사’를 온다. ‘아파요, 힘들어요, 죽고 싶어요’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하면서.
신체화 증상, ‘마음이 아프다’고 몸이 보내는 신호 이 아이들의 ‘아픔’은 꾀병과는 다르다. 어떤 목적을 달성할 의도로 꾸며낸 것이 아니라 실제로 열이 오르고, 심장이 조여와 숨이 턱턱 막히며, 머리가 깨질 듯한 편두통은 물론 심한 복통과 함께 구토 증세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 ‘아픈 척’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아픈 것이다. 다만 의학적으로 아무 이상이 없을 뿐. 심리학에서는 이를 ‘신체화 증상(somatization disorder)’이라고 부른다.
문제는 반복되는 신체화 증상은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처럼 점차 신뢰감을 잃어간다는 것이다. 공부하기 싫으니까 엄살을 피우는 것으로, 학교를 빠져나가기 위한 수단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떤 아이는 특정한 과목 시간만 되면 아프다. 학기 초 이런저런 일들이 겹치면서 교사와 갈등이 생겼고, 그 후부터 머리가 깨질 듯 아프다고 호소한다. 어떤 아이는 학교 교문만 들어서면 배가 아프다. 데굴데굴 구르며 아프다고 난리를 쳐서 119를 타고 병원에 간 적도 있지만, 결과는 ‘이상 소견 없음’이었다. 또한 아이들이 호소하는 신체화 증상의 대부분이 가슴이 답답하거나, 머리가 아프거나, 배가 아프거나, 잠을 못 자거나 하는 것들이다 보니 ‘스트레스’로 인한 것이라며 가볍게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 “어휴, 매일 아프다고 해요. 스트레스 없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혼자서 그렇게 유난을 떠는지”라며 무시하는 부모도 많다. 어떤 경우는 “또 아프니?”하며 짜증을 내거나, “정신력이 약해서 그런 거야. 그런 정신으로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래?”라며 질책하는 경우도 있다.
부모 상담을 진행해보면 “처음엔 걱정을 많이 했죠. 그런데 병원에서 MRI까지 찍어봐도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고, 지켜보니까 제멋대로 안 되면 아프다고 하는 것 같더라고요. 관심받고 싶어서 그러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이제 버릇될까봐 관심을 안 줘요”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그렇다. 신체화 증상은 부모나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고 싶어서 생기는 병이다. 왜 이 아이들은 ‘아파야만 관심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픔’이 가져온 이차적 이득, 부모의 관심과 걱정 경우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신체화 증상은 부모·자녀 사이의 상호작용 방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일반적으로 부모들은 자녀가 감정을 표현할 때 아이의 입장에서 그 감정을 공감해 주고자 한다.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며 소통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자신이 부모에게 사랑받고 있음을 확인한다. 그러나 신체화 증상을 겪는 아이들은 자신이 감정을 표현했을 때, 공감이 아닌 ‘무시’ 혹은 ‘비난’ 등 부정적 경험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딴 걸 가지고 뭘 그러냐’며 혼나기도 한다. 그래서 점차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게 된다. 대신 배가 아프다거나 머리가 아프다는 식의 간접적인 표현을 통해서 ‘나 힘들어. 좀 알아줘’라고 온몸으로 이야기한다. 즉, 신체화 증상을 통해서 자신의 마음이 힘듦을 부모가 알아주고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무의식적인 감정의 표출’을 하는 셈이다.
자녀의 ‘아픔’은 싸우던 부모도, 자신에게 무관심했던 부모도, 먹고사는 일에 바쁘던 부모도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나만 바라보게’ 하는 힘이 있다. ‘아픔’이 부모의 관심과 걱정이라는 이차적인 이득(secondary gain)을 가져온 것이다. 평상시에는 자신의 말이나 행동, 감정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던 부모님이 ‘아프다’는 말에 걱정과 관심을 쏟아내는 경험을 하게 되면, 아이들은 이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 신체화 증상이 효과적인 ‘의사소통 방식’으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언어’로 상대방과 소통할 수 있도록 신체화 증상은 ‘마음이 아프다’고 몸이 보내는 신호이다. 따라서 이유 없이 아프다고 호소하는 학생들을 ‘또 시작이네’라고 넘기기보다는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어린아이는 ‘울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그것 밖에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말’을 조리 있게 잘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들 역시 ‘몸’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때리고, 깨물고, 발버둥 치면서. ‘언어’를 사용할 줄 아는 청소년이 되면 몸이 아니라 ‘언어’로 상대방과 소통해야 한다. 따라서 ‘지금 아픈 이유’를 함께 찾아보고, ‘언어’로 해소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또한 학생이 자신의 감정을 언어적으로 표현하고 해소하는 상황이 안전하게 느껴질 수 있도록 교사와 신뢰있는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늘 강조하지만 사람은 ‘진심’이 느껴질 때 안정감을 찾고, 자신에 대한 이런저런 잔소리를 ‘충고’로 받아들인다.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건 ‘지적’일 뿐이다.
부모님의 도움도 절대적이다. 부모 상담을 통해 자녀가 호소하는 신체화 증상 기저에 깔린 감정을 설명하고, 평상시 다양한 방법으로 관심과 사랑을 확인시켜줌으로써 신체화 증상을 통해 가족의 관심과 허용이라는 이차적 이득을 경험하지 않도록 협조를 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