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단체의 지원으로 학교 담장을 허물고 학교를 개방, 지역주민의 여가나 체육활동 공간으로 만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학교를 지역사회의 중요한 소통공간으로 만들어 함께 호흡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실패로 끝났다. 학교 내에 급증하는 온갖 범죄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담장을 다시 세워야 했기 때문이다.
학교 의견 철저히 무시된 ‘학교 개방’
학교 개방은 ‘생활체육시설의 절대적 부족’이라는 우리나라만의 특수한 상황에 기인한다. 생활체육의 수요는 급증했지만, 이를 해소할 최소한의 기간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이유다. 다른 나라에서는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학교 개방’은 이러한 배경 속에서 진행됐으며, 교육 당국은 학교 개방의 법적 근거와 적용 대상, 시설 사용료 등을 정해야만 했다. 문제는 서울만 특이하게도 교육규칙이 아닌 조례로 ‘학교 개방’에 접근했다는 것이다. 2005년 교육부는 초·중등교육법 제11조를 개정하여 ‘학교 개방은 시·도교육규칙으로 정한다’고 명시했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시·도는 교육규칙으로 이를 정했지만, 서울만 유독 ‘조례’로 법제화한 것이다. 2012년 3월의 일이다.
조례와 교육규칙은 입법 주체가 다르다. 따라서 법률 시행 과정에서의 저항도 다른 양상을 띤다. ‘조례’는 ‘교육규칙’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지역주민의 입김이 작용할 수 있다. 이를 반증하듯 학교 시설의 확대·개방을 골자로 하는 조례 개정안이 2013년과 2015년에 의원 발의되었고, 그때마다 학교 현장과 교총, 학부모의 거센 반대로 번번이 무산되었다. 또한 의원 발의된 조례는 공청회 등 최소한의 민주적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는 맹점이 존재한다.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다. 왜냐하면 지난 8월 19일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에서 학교 개방을 거의 의무화하는 조례 개정안이 발의되고, 이어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지난 9월 9일 서울시의회 본회의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서울시의회는 이 조례에 대해 서울시교육청 의견을 묻는 것으로 정당화했지만, 교육청에 준 검토 기간이 며칠인지 함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공청회 한 번 거치지 않은 조례가 과연 민의를 대변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