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혼자 학생지도, 영업, 홍보 모두 감당…‘역부족’
타사 경쟁서 밀리거나 국고지원 끊겨 대부분 포기
교육부 국고지원 감소추세…대학 위주 정책으로 소외
매출보다 교육적 성과 의미 두고 '성업'의 길 모색해야
고교 특성 반영하고 담당 교원에 수업시수 등 배려를
2009년부터 학교기업을 운영해온 대전 A고교는 올해 말 사업을 접는다. 8년간 업무를 맡은 B교사는 자신의 수업 외에 학생 지도, 영업, 홍보, 취업처 발굴, 수주처 발굴까지 그야말로 쉴 새 없이 이 일에 매달렸다. 그러나 교사 혼자 모든 일을 감당하기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B교사는 과로로 갑상선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았다. 그는 “후임자도 없고 이런 방식으로는 계속할 수 없을 것 같아 어렵게 내린 결정”이라고 말했다.
충남 C고는 교육부 국고지원을 통해 학교기업 기반을 다지던 중 중간평가에서 탈락하면서 자체 운영이 어려워져 결국 지난해 폐업했다. D교감은 “매출 등이 평가 기준에 미달한다고 일방적으로 지원을 끊어 지속할 방법이 없었다”며 “이익이라는 성과보다 교육적인 효과를 보면서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장기적 안목으로 봤으면 한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특성화고 학교기업들이 설립 이후 지속적인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학과 달리 교사 혼자 많은 업무를 감당해야 한다는 점, 고교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 정부 정책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한국교육신문이 ‘꿈을 현실로 학교기업’에서 이미 소개한 6곳을 제외하고 새롭게 연락을 취한 고교 학교기업 10곳 중 7곳은 이미 폐업했거나 올해까지 운영하고 문을 닫을 예정이었다.
이처럼 고교 학교기업은 산학협력단이 있고 독립부서를 취하는 대학과는 달리 학교가 자체적으로 운영해야 하기 때문에 교사 인력 등에 한계가 있다. 게다가 공립학교의 경우 담당교사가 전근을 가면 업무의 연계성이 현저히 떨어지게 된다.
사업 경험이 없는 교사들은 새로운 루트를 모색하고 영업과 마케팅을 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서울 E고 F교사는 “영업이나 홍보 분야에 경험이 없다보니 타사와의 경쟁에서 밀려 적자가 지속되는 상태”라며 “돌파구를 찾지 않는 한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밝혔다.
고교 학교기업들은 정책면에서도 대학에 비해 소외받는다. 학교기업을 담당하는 교육부 부서가 대학정책실 소속이라는 점도 고교 학교기업이 지원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는 이유로 거론된다. 우선 대학과 전문대를 포함한 전체 학교기업 수에 비해 고교 비율은 월등히 낮다. 2012년 200개 학교기업은 중 중‧고교는 64개였고 2013년에는 185개 중 58개에 불과했다.
교육부의 국고지원도 줄어드는 추세다. 2004년부터 2005년까지 50개 고교‧대학 학교기업에 378억 원, 2006년부터 2007년까지 50곳에 290억 원을 지원했다. 이는 2008년 66개 기업에 145억을 지원하면서 반 토막이 된 후 2014년 47곳 111억 원으로 해가 거듭될수록 감소하고 있다.
국고지원이 까다롭다는 점도 고교 학교기업의 초기 정착을 저해하는 요소다. 현재 국고지원은 신규형, 성장형, 자립형으로 분류되며 2년짜리인 자립형을 제외한 신규와 성장형은 최대 5년을 지원받을 수 있다. 하지만 매년 평가에서 하위권을 기록하면 더 이상 지원금을 받을 수 없다. 10여 년 간 학교기업을 맡아온 충남 G고 H교사는 “일주일 만에 계획서를 제출하라거나 매출 위주로만 평가하는 등 지원금을 받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국고신청을 포기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교사들은 학교기업이 학생들의 실무능력 향상에 크게 도움이 된다는 데 이견이 없다. H교사는 “우리학교 기업도 계속된 경영난으로 올해 없어질 예정이지만 35년 교직생활동안 학교기업만큼 학생들 실무능력 향상에 좋은 시스템은 없었다”며 “매출을 무시할 순 없지만 학생들의 만족도, 실무능력 향상, 취업연계성 등 교육의 질적인 측면과 과정에 비중을 두고 학교기업을 바라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충남 C고 D교감은 “교육부가 전국 학교기업의 현황을 파악해야 한다”며 “문을 닫는 학교들의 원인과 실태를 분석하고 운영 실적을 수시로 체크해 지속적으로 관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난 9월 한국학교기업협회가 개최한 국회포럼에서 손호일 부천공고 수석교사도 “IT, 서비스, 제과제빵, 공업, 상업, 축산 계열 등 학과 특성에 맞는 학교기업 컨설팅이 요구된다”며 “컨설팅 기관을 발굴하고 매칭해 기업의 재무건전성 및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국고지원을 신청한 학교 외에 자체적으로 학교기업을 설립‧운영하는 학교들은 파악할 방법이 없다”며 “현재 이런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학교기업 내 현장실습 운영 매뉴얼을 학교 급별 특성에 맞는 실습 내용으로 보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교육부는 이밖에도 회계나 마케팅 분야에 어려움을 겪는 학교들의 신청을 받아 맞춤형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지만 신청이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교사들은 고교 특성에 맞는 학교기업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조재철 인천기계공고 교사는 “코디네이터 같은 최소한의 직원 채용 인건비와 수업 시수 경감에 따른 기간제 교사 인건비 정도는 모든 학교에 동일하게 지원하는 것이 좋다”며 “교사가 자리를 비웠다고 해서 업무의 영속성이 결여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항일 부천공고 교사는 “총괄책임자들에 대한 학교 차원의 배려도 필요하다”며 “주당 18시간을 수업하며 업무를 추진하기 벅차기 때문에 10시간 범위 내에서 수업하고 사정에 맞게 시간강사를 활용하도록 하면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
학교기업을 운영하는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참여 노력도 요구된다. 조 교사는 “반드시 국고지원을 통해서가 아니라도 학교운영위원회 심의를 거쳐 교비로 편성‧운영할 수도 있다”면서 “학생들의 실무능력 향상이라는 본래의 목적에 초점을 두고 학교장을 비롯한 교직원들의 의지가 뒷받침 될 때 성공적인 교육사업 모델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