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교원으로 만나 딸과 아들을 두었다. 남들이 보면 부부가 교원이니 자식교육도 모범적으로 잘 했으리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그게 아니다. 부모가 될 준비교육을 받지 못하였으니 항상 시행착오의 연속이고 무엇이 정답인 줄도 모르고 지금까지 세월을 보냈다.
우리 딸은 지난 2월 대학을 졸업하고 유명 통신회사에 입사해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아들은 내년 2월 졸업을 앞두고 서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자취를 하고 있다. 딸과 아들, 모두 우리 집에 있는 자기 방을 비우고 독립세대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요즘 핵가족의 새로운 트랜드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우리 자식들, 부모가 있는 수원집 방문이 뜸하다. 두 달에 한번 정도 자기가 필요할 때 부모를 찾는다. 부모가 얼굴 보고 싶다고 오라고 해도 일이 바쁘다고 하면서 미룬다. 한편으로는 이젠 품안의 자식이 아니라고, 자립정신이 강하다고 스스로 위로도 해보지만 부모와 자식간의 정은 더 이상 깊게 맺을 수가 없다.
얼마 전,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직장에서 거는 모양인데 속삭이듯 말한다. 용건인즉 자기 통장에 40만원 정도를 입금시켜 달란다. 회사에서 월급을 받고 있지만 적금을 붓고 이번 달엔 운전면허 강습을 받다 보니 돈이 모자란다는 것이다. 그렇다 자식들은 아쉬울 때 이렇게 부모를 찾는다. 잠시 후 입금통장 번호가 문자로 도착했다.
요즘 자식들은 우리 때와는 전혀 다르다. 우리 세대는 첫 월급을 타면 부모님께 동전 하나까지 다 갖다 바쳤다. 또 감사의 뜻으로 부모님 내의 선물도 했다. 필자의 경우, 결혼하기 전까지 13년을 어머니께 월급봉투를 그대로 드렸다. 누님은 동생에게 용돈을 주면서도 나보다 더 긴 세월 동안 월급을 어머니께 갖다 바쳤다.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우리 딸이 받는 월급을 우리 부모는 전혀 모른다. 자식이 알려주기 않기 때문이다. 다만 첫 월급이 140만원이라는 것을 보고 깜작 놀랐다. 첫 달을 날짜로 계산했다지만 대학 초임으로는 또 알려진 유명기업으로서 너무나 적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보수는 받지만 적금, 아파트 관리비, 식비 등을 지출하고 나면 얼나 남지 않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던 딸이 우리 집에 왔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직장 이야기를 꺼낸다. 퇴근 후 집까지 걸어간다는 것이다. 소요시간은 1시간 30분이라는데 또 깜작 놀랐다. 직장이 광화문인데 집이 있는 고려대 입구까지면 보통 먼거리가 아니다. 대략 잡아도 10km 정도 된다. 딸의 말로는 운동 삼아 건강을 유지하려고 그런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듣는 부모 마음은 안타깝기만 하다. 건강도 좋지만 90분 동안 서울의 매연을 마시고 또 교통사고 위험에 노출이 되고. 혹시 대중교통 요금을 아끼려고 그러는 것은 아닌지 염려되는 것이다. 그런데 딸은 자기가 좋아서 그렇게 걸어서 퇴근한다고 말한다. 그러더니 몇 년간 모은 돈이 몇 천만 원이라고 한다. 우리 부부는 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딸이 서울로 올라가면서 했던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히 남아 있다. 그냥 혼자서 하는 말인데 그 말을 듣고 말았다. “통장 잔액이 230원밖에 없네.” 이게 어찌된 일인가? 또 무슨 뜻인가? 통장에 돈을 더 넣어달라는 뜻인지? 생활비가 모자라니 용돈을 매달 달라는 것인지? 그 속마음을 알 수가 없다. 자식에게 부모는 속마음을 보이는데 자식은 그렇지가 않다.
나는 딸의 통장에 약간의 돈을 넣었다. 딸 통장 잔액을 천 원 미만으로 도저히 그대로 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딸은 자기 통장 잔액을 확인하지 않았는지 돈 잘 받았다는 연락이 아직 없다. 자식에게 사랑을 줄 수 있는 것도 행복이다. 자식이 부모에게 손을 벌리는 것은 부모가 그만치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돈의 풍족함보다는 부족함을 체험하게 하려는 것이 내 신조이다. 우리 부부의 자식교육, 제대로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