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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의 끝판

01
병자호란(丙子胡亂)은 ‘난(亂)’이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지만, 나라 간의 전쟁이었다. 이 싸움에서 조선은 신흥국 청(淸)에게 졌다. 병자호란(丙子胡亂), ‘병자년에 오랑캐가 일으킨 난’이라는 뜻이니, 난리의 이름으로만 보면 전쟁을 겪은 조선의 자존심이 당당하다. 그러나 실제 싸움에서 조선은 참패했다. 1636년(병자년) 12월 청 태종은 2만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략한다. 침략의 명분은 조선이 정묘호란(丁卯胡亂) 때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정묘호란의 약속이란 조선은 후금(後金)을 형의 나라로 받들어 예를 지킨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명나라를 섬기는 조선을 군사적으로 정복해 두자는 데 있었다. 청나라가 명나라를 없애고 중국을 지배하기 위한 선제적 군사 조치인 셈이었다.  


청의 대군이 압록강을 건너 한양에 이르는 데 열흘 남짓 걸렸다고 한다. 청나라 군대의 세력이 어떠한지, 또한 조선의 방비 태세가 얼마나 허술했는지 짐작할 만하다.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해 적의 포위 속에서 혹한과 싸우며 버텼으나, 식량이 끊어져 청에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소설가 김훈의 장편 ‘남한산성’은 이 장면을 절절한 감각의 리얼리즘으로 묘파(描破)한다. 그 딱하고 안타까운, 그래서 참으로 끝 간 데 없는 연민, 조상과 역사에 대한 연민의 밑바닥을 우리에게 일깨운다. 


1637년 1월 30일 인조는 지금의 송파나루(석촌호수)인 삼전도에서 이른바 강화의 예를 가진다. 강화(講和)란 서로 싸우던 나라끼리 싸움을 끝내고 화의(和議)하는 것이다. 말이 그럴듯해서 ‘강화’이지, 전쟁 뒤의 강화란 항복의 의식이 중심 내용이다. 삼전 나루에 주둔한 청 태종(淸太宗) 홍타이지에게 인조는 세 번 무릎을 꿇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궤구고두(三?九叩頭)의 굴욕적 예를 행하며 항복했다. 항복의 조건은 이러했다. 청나라와 조선은 임금과 신하의 관계로 의를 맺는다는 것, 조선은 명나라와 국교를 끊는다는 것, 세자와 봉림대군, 그리고 윤집, 오달제, 홍익한 등 청나라와 싸우기를 주장했던 신하들을 인질로 청나라에 보낼 것, 조선은 청에 조공을 바칠 것 등이었다. 


그런데 강화의 조건이 이것만이 아니었다. 참으로 고약한 것이 있었다. 청 태종은 인조에게 항복을 받은 이 삼전도 자리에 청의 전승을 기념하고 자신의 공덕을 찬양하는 비석을 세우게 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대청황제공덕비’이다. 굴욕이 여기에서 더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 비를 어느 누구도 대청황제공덕비라 부르지 않았다. 건립 당시부터 후대의 각종 문헌에 이르기까지 비석이 있는 삼전 나루의 이름을 따라 그저 삼전도비(三田渡碑)라고 불렀다. 그만큼 우리에게는 이름조차 입에 올리기 거북한 치욕의 상징물이기 때문이다.


청 태종 앞에 임금이 무릎을 꿇은 이상 누군가는 이 치욕의 비문을 지어야 했다. 역사의 오명을 짊어지는 일을 누가 맡을 것인가? 1637년 11월 25일, 인조는 비문을 지을 사람을 추천하라고 비변사에 명을 내렸다. 장유(張維), 이경전(李慶全), 조희일(趙希逸), 이경석(李景奭) 등 네 사람의 명단이 올라왔다. 장유는 모친상을 이유로 사양했고 다른 이들도 각자 나름의 이유를 댔으나 인조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며칠 후 고령으로 건강이 좋지 않은 이경전을 제외한 나머지 세 사람이 비문을 올렸다. 그 가운데 조희일은 일부러 글을 조잡하게 써서 1차로 탈락했고, 장유와 이경석이 지은 비문은 청나라에 보내 최종적으로 이경석의 비문이 채택되었다. 비문의 내용은 이러하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 새교육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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