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학생들의 선호 직업 1순위에 꼽힌 교사. 하지만 치열한 입시, 과중한 업무, 존중이 희박해진 학생, 학부모와의 갈등에 좌절하며 방황한다. 그때마다 교사들은 초임시절 간직했던 교사의 꿈을 꺼내 보며 다시 일어서기도 한다.
1일 인천시교육연수원 유‧초‧특수 신규임용 직무연수에서 만난 새내기 특수교사 3명도 평생을 길잡이 해줄 초심을 곱게 품고 있었다. 각자 교직에 발을 디딘 사연은 달랐지만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는 말처럼 모든 아이들을 사랑하겠다는 ‘그 마음’은 하나였다.
박민지 교사는 자폐성 장애를 가진 동생을 정성으로 가르친 담임교사에 감명 받아 특수교사가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는 “동생이 사칙연산을 못할 정도여서 가족들도 한계를 느낄 때 당시 담임선생님은 포기하지 않고 차근차근 가르쳐 깨우쳐주셨다”며 “정말 멋지다는 생각을 했고 그때부터 특수교사의 꿈을 키웠다”고 말했다.
2015년 말 건강 이상으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그는 세 번의 도전 끝에 합격했다. 박 교사는 “결핵이 심하게 걸려 한 차례 시험을 놓쳤고 6개월 정도 공부를 못해 짧은 기간 동안 악착같이 했다”며 “절박했던 만큼 합격이 정말 기쁘다”고 밝혔다. 그는 “3월에 교단에서 아이들을 만날 생각으로 매일 설렌다”며 “동생의 담임선생님처럼 학생 한명 한명에게 깨우침을 주는 교사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주원희 교사는 5년 간 장애인 대변 신문에서 활동한 기자 출신이다. 그는 “언론을 통해 법을 바꾸고, 장애인들의 인권을 지키는 것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지만 현장에서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깨달을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아이를 낳고 시작한 공부라 시간이 부족했지만 간절함이 합격의 원동력이 됐다.
이어 “기자시절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이 통과되는 과정을 취재하면서 법이 현장과 맞물리고 적용되려면 교사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아직도 사회 곳곳에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존재하고 그것을 깨는 첫걸음은 교육이라 믿는다”고 덧붙였다.
허준환 교사는 고등학생 때 영문도 모른 채 같은 반 장애인 친구에게 몸을 물렸다. 그는 “처음에는 이유를 몰라 화가 났지만 특수교육 선생님과 상담하면서 차츰 친구를 이해하게 됐다”며 “이후 엠네스티 동아리 활동으로 장애인에 대해 관심을 넓혔고 유아특수교육과에도 진학하게 됐다”고 말했다.
허 교사는 교생실습 때 일반 초등학생들과 유아 특수반이 함께 연극관람을 했던 일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떠드는 일반학생과 달리 특수 학생들은 조용히 관람만 하는 모습을 보며 특수라는 선입견으로 아이들을 과도하게 조용히 만든 게 아닌가 생각했다”며 “아이들이 연령에 맞게 자유로운 자기표현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교사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