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마을의 봄은 일시에 폭발하듯 피어나는 꽃으로 시작됩니다. 꽃들은 여기저기 무더기로 터져도 아무도 다치지 않으니 참 좋습니다. 사람살이도 이러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곳이 바로 전쟁터입니다. 눈에 힘을 주고 누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살펴 지적하고 야단치고 윽박질러 버리는 곳은 이미 사람 사는 곳이 아닙니다. 맵고 쓰라린 돌팔매를 맞은 패잔병들만 있는 슬픈 싸움의 한 가운데입니다.
새봄을 맞이하면서 저에게 다짐했습니다. ‘봄햇살 같은 사람이 되자.’ 겨울을 몰아내는 것은 거칠고 큰 힘이 아니라 보드랍고 따뜻한 봄빛입니다. 한 줌 쏟아지는 다정하고 착한 빛은 겨우내 춥고 힘들었던 대지에 싹을 틔우고 잎을 밀어 올리는 힘을 주는 것입니다. 겨울의 끝자락 강마을 화단 구석에 핀 파아란 봄까치꽃의 환하고 서러운 웃음을 보면서 ‘아, 저런 거구나.’ 느꼈습니다. 미욱한 선생이지만 그저 따뜻한 봄햇살 같은 마음으로 지치고 힘든 사람에게 한 자락의 봄빛을 내어주자. 진심으로 따뜻한 웃음과 다정한 말 한 마디를 나누어 주는 사람으로 살겠다. 저와 약속하였습니다.
이제 봄은 익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 약속은 봄빛 속에 바래어 있습니다. 세상의 한 귀퉁이라도 밝히는 멋진 사람이라는 자만심덩어리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학생들의 말을 귀 기울여 듣지 않았고, 따뜻한 말보다는 업무에 쫓겨 건성으로 대답하였습니다. 자기가 잘못한 것도 남 탓으로 돌려버렸고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아직 봄도 가지 않았는데, 봄꽃도 모두 핀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어리석은 것일까’ 하고 혼자서 가시나무가 되어 남과 자기를 모두 찔러버리는 짓을 되풀이하는 것이 느껴집니다.
세상일은 그저 바람이 불고 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살아야하는데 대단한 사람인양 요렇게 살아야지 하고 틀을 만들고 그 모양대로 되지 않으면 절망합니다. 그저 자기 자리에서 나무처럼 꽃처럼 피고 지고를 되풀이하며 함께 더불어 살면 되는 것입니다. 비가 오면 같이 비를 맞고 꽃이 피면 벌과 나비를 불러들이고 내가 가진 것을 내어주고 그네의 날개 짓을 느끼는 것으로도 충분한데 말입니다.
일이 있어 잠시 경주엘 다녀왔습니다. 천년고도 반월성 옛터에는 벚꽃이 일시 꽃을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었고 한복으로 단장한 고운 소녀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행복한 웃음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평화로운 모습에 신라의 호국 승려 충담사가 지은 ‘안민가(安民歌)’가 생각났습니다. 충담스님께서 바라시던 ‘평화로운 신라의 모습’이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 경덕왕 재위 24년에 오악삼산의 신들이 때때로 궁전 뜰에 나타나 왕을 모시기도 했다고 합니다. 어느 해 3월 삼짇날에 왕이 귀정문 문루에 납시어 좌우의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누가 길에 나가서 영복한 스님을 만나서 한 분을 모시고 오겠느냐?”고 하니 마침 위풍이 정결한 스님이 지나가기에 모셔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왕은 “내가 말한 영복한 스님이 아니다”하고 돌려보냈고 다시 한 스님이 누더기를 입고 앵통을 짊어지고 남쪽으로부터 오고 있으니 왕이 문루에 나가 기쁘게 맞이했습니다. 왕이 “당신은 누구십니까?”하고 물으니 그는 “충담(忠談)입니다” 했습니다. 기파랑을 기려서 사뇌가를 지은 고명한 충담 스님께 왕이 말하기를 “짐을 위해 백성을 편안하게 다스리는 노래를 지어주십시오”하니 충담사는 노래를 지어 바쳤다고 합니다.
임금은 아버지여
신하는 사랑하는 어머니여
백성은 어리석은 아이라고 할 것 같으면
백성이 사랑을 알 것입니다.
꾸물거리며 살아가는 백성들(윤회의 차축을 괴고 있는 백성들)
이들을 먹여 다스리라
이 땅을 버리고서 어디로 갈 것인가 할 것이면
나라 안이 다스려짐을 알 것입니다.
아으 임금 답게 신하 답게 백성 답게 할 것 같으면
나라 안이 태평하게 될 것입니다.
‘안민가’에는 백성들이 모두 본성 본분을 깨달아 융화하고 합일하여 불국토를 건설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습니다. 유가적 입장에서는 「논어」 안연 편에 나오는 ‘군군신신 부부자자(君君臣臣 父父子子)’를 원용해 ‘임금 답게, 신하 답게, 백성 답게, 할 것 같으면 나라가 태평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특히, 한 나라 최고의 권력자인 임금에게 이러한 노래를 지어 바친 것은 군주의 책무를 더 강조한 것이라 볼 수 있는 충간(忠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얼마 전 지도자가 자신의 책무를 다하지 못했을 경우를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신라의 고승 충담사의 ‘안민가’는 시대를 뛰어넘어 위태로운 대한민국을 이끌고 나가는 이들에게 준엄한 충고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리석은 선생인 저에게도 따끔한 회초리가 되어 주었습니다. ‘사사제제(師師弟弟)’ 스승이 스승답고 제자가 제자다워야 함을 생각합니다.
한 줌의 봄햇살이 춥고 지친 아이들의 마음에서 봄꽃을 밀어 올릴 수 있도록 선생다운 선생이 되어야겠다고 다시 다짐합니다. 꽃잔치가 한창인 교정에서 부끄러운 마음이 홍조를 만듭니다. 제 얼굴에도 봄꽃이 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