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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교사로서 사안 조사하기

함께하는 생활지도

최근 업무 정상화의 하나로 학교생활교육소위원회(구 소선도위원회)가 학년부로 이관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에 따라 담임교사가 학생들의 안전사고, 학교폭력, 선도 사안 등을 조사할 일이 늘고 있다.

아이들은 자신의 행동이나 상황을 잘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증거를 보여줘도 부인하는 등 조사가 어려울 수 있다. 교사는 수사기관과 달리 수사권도 없고, 학생의 학습 시간을 많이 빼앗을 수도 없어 고충은 더하다. 따라서 최대한 진실에 가깝게 조사하는 기법을 터득해놔야 한다. 다음 내용은 필자가 공동집필한 ‘학교폭력 사안 처리 100문 100답’ 중 ‘사안 조사 매뉴얼’의 내용을 요약·편집한 것이다.

01. 초동 조사 

사안을 처음 발견한 교사는 그 자리에서 작은 쪽지에 간단히 두세 줄이라도 진술서를 받는 등 초동 조사를 해야 한다. 이 내용을 미리 주변 교사들과 협의해 통일된 태도를 보이는 것이 좋다. 이 과정이 없으면, 피·가해학생이 학년부실로 불려 오는 도중, 가해학생이 피해학생을 눈빛으로 제압하는 등 사안 자체가 무위로 돌아갈 수 있다.

02. 분리 조사

일단 사안이 발생하면 해당 학생들을 모두 격리해 분리, 조사한다. 한 장소에서 조사하거나, 교사가 잠시 자리를 이탈한 채 아이들만 방치하면 피해학생을 협박하거나 가해학생끼리 입을 맞춰 곤란한 상황이 발생한다. 처음 사안을 발견한 날, 모든 과업을 중지시키고 조사해 일정 정도만이라도 얼개가 드러나야 한다.

필요하다면 일과 시간을 초과할 수도 있다. 다만, 학교장의 허락과 학부모의 사전 동의 혹은 최소한 사후 통보가 필수적이다. 이 경우라도 사안 조사가 길어져 학생의 하교가 너무 늦어지지는 않도록 주의한다.

03. 수업시간과 사안 조사 

교육부 지침에는 ‘가능한 한 수업시간을 피해 조사’하게 돼 있다. 이 문구 때문에 수업시간을 제외한 시간에만 사안 조사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매우 위험한 전략이 될 수 있다. ‘가능한’이므로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수업시간 중 너무 많은 시간을 이용한 조사는 바람직하지 않지만 최소한의 시간 할애는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세세한 조사는 수업시간을 피하더라도 사안의 주요 특징은 파악해야 한다. 시간이 오래 지나면 미궁에 빠질 수 있음에 유의하자.

04. 진술서 쓰기(1)

일차적으로 학생의 진술방향을 안내할 수 있는 간단 진술서를 활용한다. 사안이 경미할 때도 이용할 수 있다. 간단 진술서를 바탕으로 교사가 추가 질문하면 학생이 보충 답변하는 형식으로 대화하면서, 그 내용을 학교 양식의 진술서에 적으면 된다. 백지도 무방하다. 학생이 작성한 진술서를 검토하면서, 이해 안 가는 부분, 앞뒤가 안 맞는 부분, 틀린 문장 등을 고치면서 두 번째, 세 번째 진술서를 적도록 한다. 대개 수차례 이상 진술서를 써야 제삼자가 봤을 때 겨우 이해할 만한 진술서가 탄생한다.

05. 진술서 쓰기(2)

진술서는 육하원칙에 따라 구체적으로 쓰도록 한다. 학교 진술서 양식에 쓰기 전에 사안이 발생하게 된 까닭과 과정을 구체적인 이야기체로 서술해 보는 것도 좋다. 가능하면 사건을 있는 그대로, 시간의 경과에 따라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서사체로 쓰도록 한다. 사안이 일어났을 때, 주변에 누가 있었는지, 목격자, 방관자, 참여자, 행인이 있었는지도 적도록 한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을 비난하지 않고 말하는 그대로 듣는 것이 중요하다. ‘네 행동은 옳지 않다’는 등의 비난을 하면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 아이들이 진실을 말하는 대신 사안을 축소하고, 억울해 하거나 마음속으로 교사에게 반항하며 사실을 말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사안 조사 중에는 절대 ‘학교폭력’, ‘가해자’, ‘불법’ 등으로 단정하지 않는 것이 좋다. 교사가 조사 중에 가·피해학생을 구별하거나 단정해 버리면 사안의 진실과 전체 과정을 파악하기 어려울 수 있다. 교육부 역시 강력한 지침으로 이를 경계하고 있다.

아이들이 싸웠을 때나 일방적인 폭행으로 불려 왔을 때에는, 야단치지 말고 일단 당사자들의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 아무 말 하지 않고 분리해서 세워 두거나, 앉혀 놓거나, 두 손으로 손을 꼭 잡아줄 수도 있다. 그 후 아이들의 마음이 진정되면, 과정을 간략히 물어보고 전술한 조사 절차를 진행한다.

진술서는 무조건 구체적으로 써야 한다. 개념어나 두루뭉술한 표현보다는 행위를 구체적으로 서술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욕을 했다면, 무슨 욕을 어떻게 했는지 구체적으로 쓰도록 한다. 폭행했다면, 어떤 부위를 무엇으로 어느 정도의 강도로 몇 대나 때렸는지 등 사실 위주로 구체적으로 쓰도록 한다.

06. 진실의 파악(1)

관련 학생의 진술서를 비교해 보면 주장이 일치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일반적으로 양측의 주장이 어느 정도 일치하는 시점까지 조사해야 하는데 80%만 일치해도 성공적이다. 가령, 피해학생은 10대 맞았다고 진술했는데, 가해학생은 8대 때렸다고 진술하면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가해학생은 가해 사실을 축소·은폐하고 모르쇠로 버티는 경우도 많다. 증거를 들이대도 ‘나는 죽어도 안 했다’는 식이다. 눈물을 흘리며 억울하다고 하는 경우까지 있다. 노련한 교사가 아니면 그 거짓 눈물에 속아 넘어가기 쉽다. 눈물과 호소, 읍소 앞에서 초연하게 진실을 파헤치는 것은 어렵다. 더구나 상당수의 학부모는 교사보다는 자식의 말을 믿는다. 일부 피해학생도 본인의 피해 사실을 확대하기도 한다.

따라서 조사를 담당한 교사는, 학생의 진술이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는지를 항상 살펴야 한다. 학생이 은폐·축소·과장·부정하거나 모르쇠로 일관하면 말이 앞뒤가 안 맞음을 질책하고, 진실을 종용하면서 진실만이 용서받는 길이요, 사과의 첫걸음임을 강조한다. 다만, 학생을 너무 윽박질러서는 안 된다.

가·피해학생과 목격자·방조자 외에도, 여러 출처에서 관련된 이야기를 듣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진실이 밝혀지지 않으면 주변 학생에게 목격자 진술서를 받아야 한다. 처음부터 이름을 쓰라고 하면 머뭇거릴 수 있으므로 진술서를 다 쓴 후 이름을 쓰든지 진술서가 누구의 것인지 담당자만 알도록 표시해 놓으면 된다. 진술서가 많을수록 증거 능력은 높아진다. 때에 따라서는 학급 전체의 진술서를 받을 수도 있다. 피해학생과 친한 학생에게 사안의 정황 파악을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 종종 그들이 다시 가해자가 되기 때문이다.

관련 학생 사이에 힘의 불균형이 있는지도 파악해야 한다. 물리적 힘은 물론, 언어·표정·심리적 표현이나 인간관계에 의해 유발될 수 있는 불균형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대다수 학생이 웃고 넘기는 농담도, 어떤 아이에게는 위협으로 느껴질 수 있다. 괴롭힘의 대상이 교실에 힘의 불균형이 있다고 느낀다면,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집단에 의한 폭행의 경우 문제가 매우 심각할 수 있으므로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정황 증거도 찾아봐야 한다. 교내·외 사안 모두 필요하면 사안 현장에 가봐야 한다.

07. 진실의 파악(2)

학교폭력이나 선도 사안의 조사에서 가해학생 또는 비행학생이 사실을 부인한다고 해서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피해학생이 피해를 하소연한다고 해서 그것을 다 믿을 수도 없는 일이다. 대부분의 사안에는 목격자, 방관자, 정황 증거, 행인, 여러 기초 자료 등이 있다. 교사는 이런 것들을 찾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해야 한다.

문제는 이런 것들을 찾기 힘든 경우다. 피해학생의 진술 외에 가해학생의 폭력행위를 뒷받침할 만한 정황 증거나 목격자, 기초 자료가 없을 때는 가해학생의 ‘부인’을 믿을 것인가, 피해학생의 ‘피해 주장’을 믿을 것인가의 문제가 뒤따른다.

이럴 때는 우선 각 진술에 모순되는 내용이 있는지 살펴야 한다. 진실을 말하는 쪽은 모순되지 않고 일반적이고 상식적이며 일관된 진술을 하기 마련이다. 다시 말해 관련 논리 전개가 어느 정도 타당하고 개연성이 있다. 양측 진술에 모순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사안의 주변 흔적이나 간접적인 정황이 있는지, 있다면 누구의 진술과 더 잘 부합하는지 살펴야 한다. 허위 진술은 주변 정황과 잘 조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교사가 관련 학생에게 ‘왜 그랬냐’고 물을 때 ‘그냥’, ‘이유 없이’라고 응답하는 경우도 의심할 만한 소지가 있다.

한편 학생이 비행이나 가해를 자인한다고 해도 곧이곧대로 믿을 수도 없다. 가해자의 진술만으로 학생이 폭력을 행사했다고 단정하면 안 된다. 물리적·심리적으로 힘이 센 다른 학생이나 또래집단으로부터 압력을 받고 거짓 진술을 할 수도 있고, 교사가 압박과 설득을 했을 때 ‘될 대로 돼라’는 식으로 거짓 시인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억울한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주변 정황을 끊임없이 확인해야 한다. 

08. 사안 조사서 작성

이상의 과정을 거쳐 확인된 사실에 대해 사안 조사서를 작성해야 할 때가 있다. 작성은 정확하게 확인된 사실만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물론 앞서 말했듯이 가해학생이나 비행학생이 인정하지 않거나 목격자가 증언을 거부해도, 다른 여타 정황을 통해 사실로 파악이 가능하면 확인된 사실로 기록할 수 있다. 이때 생활지도부 교사, 전문상담교사, 학교담당 경찰관, 학교 고문 변호사 등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양측의 첨예한 의견 대립이나, 의심스러운 일부분에 대해서는 양측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 적어서, 폭력 여부나 비행 행동 여부의 판단을 약간 뒤로 미루는 것도 하나의 전략이다.

09. 진술서 유출 금지

교사와 학생의 상담록, 대화 요약, 진술서 등은 절대 외부에 유출할 수 없다. 검찰·경찰이 압수·수색으로 가져갈 때, 국회·감사원이 요구할 때만 예외다. 경찰이 협조 요청을 해도 공문을 통한 공식 요청, 학교장의 허락, 해당 학부모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학부모가 본인 자녀의 진술서를 보여 달라면,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보여준다. 개인정보, 예민한 내용, 제삼자가 봤을 때 문제가 있을 만한 내용이 들어 있는 경우에는 자녀의 것이라도 보여주지 않거나, 해당 부분을 지우고 사본을 보여 줄 수 있다.

학부모가 와서 상대방이나 목격자의 진술서를 보여 달라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원칙적으로 보여줘서는 안 된다. 다만, 때에 따라 진술자의 이름을 지우고 보여주는 것이 도움이 될 경우도 있다. ‘우리 아이는 절대 남을 때릴 아이가 아니다’라며 노발대발하던 가해학생 학부모도, 피해학생의 진술서나 몇몇 목격자의 진술서를 보여 주면 바로 태도를 바꿔 학교의 사안 처리에 협조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술서에서 문제가 될 만한 내용만을 골라내 그것을 꼬투리 삼는 경우도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또 관련 학생의 부모와 동반하는 친척 등은 대개 악성 브로커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이들의 신분을 정확히 파악해 학교에서 나가 줄 것을 요구해야 한다. 필요하면 학교담당 경찰관 등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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