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악한 주변환경과 공사지연으로 집단 미등록 사태에 휩싸인 경기 충훈고(교장 계필현)가 3일 등교한 신입생은 교정에서, 등록거부 학생은 도교육청 앞에서 입학식을 따로 갖는 초유의 사태를 빚었다.
올해 개교한 안양 충훈고는 3일 오전 10시 학교 다목적실 1층에서 전체 입학예정자 554명 중 300여명만이 참석해 반쪽 입학식의 아쉬움을 남겼다. 그래서인지 계필현 교장과 교직원들은 학생들을 환영하며 "신설학교라 부족한 것이 많은 만큼 더 열정을 쏟아 3년 뒤 멋진 충훈고의 졸업생을 배출해 낼 것"이라며 참석자들을 안심시켰다.
입학식을 마친 학생들은 15개 학급으로 편성돼 자신의 교실에서 담임 교사와 인사 후, 6교시까지 교과수업을 하고 8시까지 야간자율학습을 하는 등 정상적인 학교생활에 들어갔다. 하지만 3분의 1이 넘는 빈자리가 못내 쓸쓸하다.
14반 K군은 "함께 재배정을 요구하던 단짝친구는 오지 못하고 나만 입학식에 참여해 마음이 아프다. 길에서 입학식을 갖게된 그 친구들만이라도 어서 재배정이 돼 공부했으면 좋겠다"며 "학교 시설이나 환경이 어느 정도 정비돼 공부에 큰 지장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딸을 입학시켰다는
한 학부모도 "분뇨처리장 등의 주변환경은 별로 문제가 안 된다. 다만 버스 종점이 학교 옆에 있어 통학길이 위험하니까 꼭 옮겼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반면 배정처분 취소 행정소송을 내고 등교하지 않은 200여명의 학생과 100여명의 학부모들은 오후 2시 도교육청 앞 길에서 '학교 없는 입학식'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충훈고개교반대대책위 민병권 위원장은 "급조된 교실과 불안한 등하교길, 그리고 눈도 코도 막아야 하는 사각지대에 자녀를 맡길 수 없기에 눈물의 입학식을 하게 됐다"며 "도교육청은 사법부의 준엄한 판결을 존중해 충훈고에 배정된 학생 전원을 즉시 재배정하라"고 촉구했다.
딸과 함께 거리 입학식에 나선 박상신(44) 씨는 "이달 말까지 입학시키지 않으면 끝이라는 협박이나 일삼는 도교육청의 작태에 분노를 느낀다"며 "만일 충훈고에 다시 다니라고 한다면 대한민국에서 학교 보낼 마음이 사라질 것 같다"고 말했다.
전진아(17) 양은 "비판이 일면서 완공기간을 1년이나 앞당겨 부실 우려가 있대요. 꼭 다른 학교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 대책위는 학생들의 수업결손을 막기 위해 5일부터 안양시청에 공간을 마련해 학원강사 등을 초빙해 주요과목 수업을 실시할 방침이어서 파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그러나 도교육청은 여전히 '재배정 불가'로 맞서고 있다. 도교육청 고입관리팀 담당자는 "재배정 계획은 전혀 없다. 학생들이 일단 학교에 등록하도록 한 뒤 소송 결과에 따르는 게 불이익을 없애는 길"이라며 종전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더 나아가 도교육청은 배정 효력을 정지시킨 수원지법의 결정에 불복해 2일 항고서를 제출했다.
법조계의 한 담당자는 "현재 충원고의 시설은 학업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갖춰져 있으므로 무조건 재배정하라는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 배정처분 취소를 요구하는 본안 소송은 진행 중인만큼 판결에 따르면 된다"며 "그 전에 학생들의 학습권 보호를 위해 우선 입학의 길을 열어놓기 위해 배정효력정지 결정을 풀어달라고 항고하게 됐다"고 밝혔다.
도교육청에 따르면 현재 본안 소송에 대해 17일 변론 일정이 잡혀있고 빠르면 3월 중으로 판결이 날 것으로 전망된다. 올 3월 개교한 충훈고는 554명의 신입생이 배정됐지만 열악한 주변환경과 교육시설 미비로 집단 미등록에 이어 이들 학부모가 배정효력정지 가처분신청과 배정처분 취소 소송을 낸 바 있다. 이에 수원지법 행정1부는 지난달 26일 가처분 신청사건을 "이유 있다"고 받아들여 학교배정 효력을 정지시키고 본안 소송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