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익혀버릴 듯 여름 햇살이 쏟아지는 강마을은 어귀마다 배롱나무꽃이 붉습니다. 타는 듯한 그네의 색감은 뜨거운 여름과 잘 어울립니다. 녹색 천지인 이 계절에 아름다운 꽃잔치를 펼치는 배롱나무는 한자어로는 자미화(紫薇化)라 부릅니다. 개화기가 길어 백일홍이라고도 하며, 수피를 긁으면 잎이 흔들린다 하여 간지럼나무라고도 합니다. 뜨거운 볕살에 지칠 때면 빨리 서늘하고 시원한 계절인 가을을 생각합니다. 휴가의 끝자락을 마무리하면서 내년의 휴가를 기약하고, 다음 보너스를 기다리고, 군대 간 아들의 전역을 기다리기도 합니다. 인간의 삶을 기다림의 연속이라는 주제로 부조리극을 쓴 샤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뜨겁게 읽었습니다. 멀리 보이는 배롱나무 붉은 꽃 송이송이 수북하게 피어난 강둑을 보며 공사로 다소 부산한 학교에 앉아 기다림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였습니다. 방학 중 학교에는 학생들 대신 공사를 하러 오신 분들이 비지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을 하십니다. 돌가루가 수북한 복도에 천을 깔아두었고, 비닐로 막을 쳐서 먼지가 날리지 않도록 배려해 주셨지만 먼지가 말을 알아듣는 것도 아니어서 제멋대로 날아다닙니다. 이것을 먼지의 부조리성이라고 할까요? ^^
베케트는 사람들의 삶은 언제나 기다림의 연속이라고 말하며 이런 기다림 속에서 드러난 부조리함을 ‘고도에 대한 기다림’으로 표현합니다. 그것은 2차 세계대전의 피신 했던 작가의 경험이 밑바탕이 되었다고도 합니다.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상황을 우리의 삶 속에 내재된 보편적 기다림으로 변주시킵니다. ‘고도’는 끝내 오지 않고 소년을 통해 오늘은 못 오고 내일은 꼭 오겠다는 전갈을 보낼 뿐입니다. 그러나 고도는 오지 않습니다. 끝없이 오겠다고 하고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오십년이 지나도 그는 오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기다립니다. 숨을 쉬고 당근을 먹고 순무의 맛을 이야기하며, 신발을 벗어던지고 그 사실을 잊어버린 희극 배우가 되기도 하고 허리띠로 나무에 매달릴 생각도 하면서 기다립니다. 이따금 기다림을 마저 잊을 때도 있지만 다시 말합니다. “우리는 뭘 하고 있지?” 그러면 또 다른 이는 말합니다. “고도를 기다리고 있지.” “그래, 맞아 우리는 고도를 기다리고 있지!” 이것은 어느 한적한 시골길, 앙상한 나무 한 그루만 서 있는 언덕 밑에서 고도를 기다리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라는 두 방랑자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네요. 저도 언젠가로 대변되는 무엇인가를 늘 기다리고 있었네요. ^^
블라디미르 왜?
에스트라공 이 지랄은 이제 더는 못하겠다.
블라디미르 다들 하는 소리지.
에스트라공 우리 헤어지는 게 어떨까? 그게 나을지도 모른다.
블라디미르 내일 목이나 매자. (사이) 고도가 안 오면 말이야.
에스트라공 만일 온다면?
블라디미르 그럼 살게 되겠지.
붉고 탐스러운 배롱나무꽃의 화려한 꽃차례는 그저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짙푸른 무논의 벼들도 그 자리에서 여름을 견디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손에 잡히지 않는 무언가를 찾아서 매일매일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투덜거리고 노력하고 섭섭해 합니다. 여름은 참 멋지게 자신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뜨겁게 더 뜨겁게, 그녀에게 너무 빠져들지는 마십시오. 때론 적당한 거리에서 그녀와 밀당을 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아, 강마을은 너무 덥습니다. ^^
『고도를 기다리며』, 샤무엘 베케트 지음, 오증자 옮김, 민음사,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