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으로 올라가는 이층 계단에 하얀 꽃잎 하나가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손으로 주우려는 순간 꽃잎은 나비가 되어 팔랑 눈앞에서 날아갔습니다. 날아가는 나비를 한참동안 바라보면서 꽃잎이라고 생각했던 사물이 나비였다는 사실이 신기하였습니다. 어떤 요정이 꽃잎에 요정가루를 뿌린 것이 아닐까하고 엉뚱한 생각을 하였습니다.
우리들이 무심코 보는 사물에 대해 작가는 상상력을 동원하여 아주 깊은 곳까지 사유하여 쓴 책을 읽었습니다. 『김선우의 사물들』은 숟가락, 거울, 의자, 반지, 못, 걸레 등 어디에나 보이는 일상적인 물건들이 그 소재로 등장합니다. 푸른 감자를 긁던 어머니의 기억에서 시작된 사유는 숟가락이 가지는 본질적인 둥근 부드러움과 섬김으로 이어지면 작가의 추억과 버무려져는 글은 감칠맛을 더하며 읽힙니다.
그곳으로 바람이 들어오고 나뭇잎 몇 장이 쓸려오고 고양이가 걸어가고, 길 잃은 풍뎅이 한 쌍이 의자 밑 그늘 속에서 사랑을 나눈다 해도, 매번 등을 구부려 의자 밑을 확인해보지 않는 한 그곳은 비밀스러운 파동을 유지한다. 게다가 그 비밀스러운 통로는 우리들의 엉덩이 바로 밑에 존재하는 것이다!/의자
스스로를 구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스스로일 뿐이라는 것을 그는 온몸으로 보여준다./쓰레기통
소라 껍데기는 한 채의 집이다. 사랑을 나누고 움직이고 자라던 산 것의 몸이고 동시에 집이다./소라 껍데기
모든 우연은 필연이 몸을 감추는 방식이며, 또한 몸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여행은 땅과 공명하고 사람과 공명하는 여정이다./여행
작가 김선우는 시인의 눈으로 사물의 영역과 경계를 허물고 생각의 범위를 확장시키고 있습니다. 내밀하고 깊은 관찰이 글쓰기의 기본임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글을 읽으며 내 주변의 사물에 대해 얼마나 깊이 있게 그리고 따뜻하게 바라보았는지를 반성하였습니다. 그녀의 시 ‘연두의 내부’, ‘단단한 고요’, ‘감자 먹는 사람들‘을 읽다보면 얼마나 사물에 대한 깊은 사유와 성찰로 이어지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녀의 시에서 보여주던 시적 언어가 다시 산문의 언어로 변하여 꽃잎 같았던 시어는 배추흰나비가 되어 날아다님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처서를 지나고 확연히 달라진 들판 풍경과 확실히 더 잘 들리는 벌레소리들은 큰 걸음으로 다가서는 가을을 느끼게 합니다. 먼 곳에서 시를 쓰는 벗에게 가을이 왔다고 엽서 한 장을 쓰렵니다. 모두 행복한 가을맞이하시기 바랍니다.
『김선우의 사물들』, 김선우 지음, 단비,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