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만난 이순신
국난으로부터 조선을 구한 이순신의 삶을 모르는 이가 있을까? 아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다시 이순신을 읽고 싶은 것은 필자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책을 읽으며 공직자로서 느끼는 부끄러움, 부모로서 공감하는 인간적인 비애, 시대를 앞서간 스승으로서 남긴 그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울고 웃었다. 그의 단면을 묘사한 일화들을 소개하며 인간 이순신, 공직자 이순신의 모습을 통해 2018년을 살아갈 힘을 얻고자 한다.
그의 평생 동지 유성룡은 이순신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순신의 사람됨은 말과 웃음이 적고, 얼굴은 단정해 몸을 닦고 언행을 삼가는 선비와 같았으나 그의 뱃속에는 담기가 있어 자신을 잊고 국난에 몸을 바쳤으니, 이는 평소 수양을 많이 쌓았기 때문이다. "
대제학 이식은
"공은 비록 무부들과 사귈망정 기상이 높고 조용하고 침묵했다. 동료 무부들이 종일 실없는 말로 서로 희롱하면서도 감히 이순신에게는 하지 못했다. "
영의정 김육이 이순신의 신도비에 쓴 비문의 한 구절이다.
"혹 죄 없이 옥에 갇힐 때에도 죽고 사는 것으로 마음을 요동하지 않았으니, 공은 본시부터 이와 같이 수양한 바가 있으므로 지혜와 생각을 내면 한 가지도 빠지는 것이 없었다." 44쪽
이순신은 충청병사 군관으로 9개월 동안 해미에 머물다가 1580년 7월 만호로 승진하여 지금의 전남 고흥군 도화면에 있는 발포로 간다. 당시 분경(음성적 뇌물)을 하지 않은 알가 군관이 종4품의 무관 벼슬로 임명되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새임지에 부임한 직후의 일이다. 이순신의 직속상관인 전라좌수사 성박이 거문고를 만들려고 발포로 사람을 보냐 만호영 객사 앞뜰에서 오동나무를 베어가려고 했다. 그러자 이순신은 성박의 심부름꾼에게 다름과 같이 호령했다.
"이것은 나라의, 물건이라 사사로운 용도로 쓸 수 없다. 또 심은 이의 뜻이 있었을 터인데 어찌 이 오래돤 고목을 하루아침에 벤단 말이냐?" 53쪽
율곡이 이조판서로 있었을 때다. 율곡은 이순신이 훌륭한 인재라는 소문을 듣고 유성룡을 통해 한번 만나자고 청한 일이 있었다. 파직되어 불우한 처지에 놓인 이순신에게 유성룡도 율곡을 만나보라고 권했다. 그러나 이순신은 한마디로 거절했다.
"나와 율곡이 같은 집안이라 서로 만나보는 것도 좋지만 그가 인사 책임자인 전상의 자리에 있는 동안은 옳지 못한 일이오."
그러고는 끝내 만나지 않았다. 56쪽
23년간 군인 생활 중에 이순신은 세 차례 파직과 두 차례의 백의종군을 겪지만 그 어느 경우에도 남을 비난하거나 탓하지 않았다. 죄천시키면 좌천시키는 대로 임지에 가서 그 직무에만 전념했고, 좌천시킨 자를 탓하거나 원망하는 일은 없었다. 부당하게 파면을 당했을 때도 마찬가지로 아무런 원망 없이 이를 수용했고, 복직 운동 같은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상사의 오해를 받아도 굳이 찾아가 해명하려 들지 않았다. 벼슬을《 주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벼슬을 잃으면 그저 없는 대로 살 뿐이었다. 57쪽
이순신의 진중 일기를 기록 정신의 빛나는 기념물로 높이 평가해야 한다는 지용희(서겅대 경영학 교수)의 글이 있어 이를 인용한다.
기록은 자료이며 정보이다. 개인의 기록, 기업의 기록, 나아가 국가의 기록은 그대로 경쟁력이다. 장군의 빛나는 기록 정신이 있어 오늘의 그가 있는 것이다. (중략) 전쟁은 길었다. 그리고 참혹했다.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은 와롭고 괴로웠다. 단 하루도 편히 잠들지 못했다. (중략) 지친 장군을 견디게 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붓과 종이였다. 장군은 일기를 썼다. (중략) 만일 이순신이 《난중일기》를 남기지 않았다면 후세에 큰 문화유산을 물려주지 못했음은 물론 자신의 전쟁 준비에서 시행착오를 거듭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199쪽
장군은 전쟁 중에도 일기를 썼다! 필자는 평시에도 일기를 자주 쓰지는 못한다. 교단 일기를 남기고자 노력하지만 그마저도 게을음으로 놓치는 일이 많다. 장군에게 배우는 가장 큰 덕목이 바로 이것이다. 게을음이 스멀스멀 밀고 들어올 때마다 이 책을 곁에 두고 읽으려 한다. 전쟁 중에 어깨에 관통상을 입고도 일기를 쓰고야마는 그 비장한 마음을 느껴야 하니. 매 순간 삶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다간 한 인간의 비장한 삶을, 사랑하는 자식을 왜적의 손에 잃고도 그 애통함을 눈물에 붓을 찍어 그 눈물이 가슴을 타고 손 끝에 이르는 순간마저 기록으로 남긴 애절한 부성애를! 그 눈물이 장군을 다시 세웠을 것이다. 아들의 죽음조차 기록하지 않고는 그는 살아갈 힘이 없었으리라.
이순신을 향한 찬탄은 조선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이웃 일본에서는 최고 명장이요 군신(軍神)으로까지 일컬어지는 도고 헤이히치로 제독이 러일전쟁 승전을 축하받는 자리에서 자신을 영국의 넬슨과 조선의 이순신에 비겨 칭송하는 축사를 듣고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나를 넬슨에 비기는 것은 가하나, 이순신에 비기는 것은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
도쿠토미 이이치로의 《근세일본국민사》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이순신은 이기고 죽었으며 죽고 나서도 이겼다. 조선의 전후 7년간에 걸쳐 책사, 변사, 문사가 있었으나 참으로 이순신 한 사람으로써 자랑으로 삼지 않을 수 없다. 일본 수군 장수들은 이순신이 살 있을 때에 기를 펴지 못했다. 그는 실로 조선의 영웅일 뿐만 아니라 동양 삼국을 통틀어 최고의 영웅이었다. 353쪽
세상을 치유하는 책
이 책은 김종대 헌법재판관이 충무공 정신을 약재로 복용한다면 양극화로 분열되고 갈등하는 우리 사회가 치유될 수 있을리라는 확신을 담아 내놓은 책이다. 이순신을 다룬 책과 기록물, 영화들이 많다. 1975년 어느 책방에서 이순신을 만나 인생의 스승으로 가슴속에 품고 산 김종대 재판관은 이 책을 쓰기 위해 철저하게 문헌을 조사하였다고 했다. 이 책이 영화 <명량>의 제작에도 많은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져 다시 한번 기록 정신의 중요함을 깨닫는다.
이 책은 어느 한 대목을 발췌하거나 줄거리 형식으로 쓸 수 없었음을 고백한다. 그 만큼 일자천금의 문장이 가득하기 때문이라고 변명하고 싶다. 어느 대목을 펼쳐도 가슴 뭉클한 명장면이, 도도한 장군의 선비 정신이, 행간마다 넘쳐나서 그 어느 대목도 잘라 쓸 수 없었다.
아프고 힘든 사람들이 넘쳐난다. 그럼에도 이 상황이 임진왜란에 비길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참혹한 전쟁을 치러낸 인간 이순신에 비긴다면 좀 더 용기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위로가 절실한 분에게, 힐링이 필요한 우리 모두에게 인간 이순신의 다독임을 권하고 싶다. 이순신에 관한 책이 넘쳐나지만 그 중에서도 단 한 권을 뽑으라면 이 책은 단연 군계일학이라고, 그러니 이 책만은 어느 집에서나 필독서로 간직했으면 좋겠다.
필자는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이 책으로 들어갈 것이다. 책 속에서 만나는 인간 이순신의 고뇌와 눈물에 기대어 다시 일어설 힘을 얻으리라. 생의 마지막 고개를 넘는 순간까지 남을 단 한 권의 책으로, 아니 이 책은 필자에겐 이미 경(經)이 되었다. 실존을 설파한 그 어떤 철학서보다, 자기계발을 하라고 등떠미는 얄팍한 성공서적보다 우위에 두고 싶은 책이다. 이것만이 진리라고 목청 돋우는 그 어떤 설교자보다 더 심금을 울리기 때문이다. 인간은 감동해야 움직이는 동물이다. 인간 이순신은 신(神)이 아니기에 더욱 따르고 싶은, 배우고 싶은 멘토로서 친근함을 안겨준다. '아버지 이순신이라면 이럴 경우 뭐라고 해 주실까? 직장인 이순신이라면 선생인 나에게 뭐라고 해주실까? '
2018년을 열며 필자의 인생길에 가끔은 기대어 묻고 싶고 울고 싶은 인생의 스승이 생겨서 행복하다. 그 사람이 현존하는 인물이 아니어도, 언제든 그의 목소리가 담긴 책 속으로 들어가면 만날 수 있으니! 말만 앞서는 세상 인심에 비해 묵언수행으로, 철저한 기록 정신으로 죽음까지 넘어선 한 인간의 비장한 기록물 앞에 다시 한번 옷깃을 여며 감사의 눈물을 바치며 이 글을 접고자 한다. 그리고 김종대 작가님에게 존경을 보낸다. 전쟁 중에도 지극한 마음으로 백성을 돌본 공직자 이순신, 어떻게 사는 것이 청렴한 공직자인지. 지극한 효심과 부모로서 친족을 돌보는 어버이의 자세까지 세세히 찾아내어 통합적인 이순신의 모습을 보여준 작가의 오랜 노력에 감사한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에게 절실한 스승이 책 속에서 튀어나와 손짓한다. 다시금 책 속에 길이 있다고, 어려움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배울 것이 별로 없으니 현란한 수사에 넘어가지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