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놈은 수천 년 역사에서 티끌하나 우리에게 준 것이 없다. 구걸해 가져가고 도적질해서 가져가고. 그들 국가의 기반이 우리 것으로 하여 이룩되었는데, 그럼에도 티끌하나커녕 고마움의 인사말 한마디 없었다. 은혜를 원수로 갚아 왔다. 그들의 역사는 거짓으로 반죽한 생명 없는 토우(土偶)다. 그 잔혹한 종자들이 오늘 우리를 어떻게 하고 있나? 이제 우리는 생명이나마 간신히 부지했던 우마(牛馬)의 처지에서도 벗어나 전쟁물자가 되었다. 전쟁물자! 일선으로 끌려간 수많은 순결한 우리의 누이들, 그들의 육신은 쇳덩이, 기계가 되고 말았다. 고철이 되서 이름 모를 산하에 버려지고, 기계라 부를 수밖에 더 무엇으로 표현하리. 참나무같이 단단하고 오월 나뭇잎같이 싱그러운 우리형제들은 어찌 되었나, 그들 역시 쓰다가 고철이 되어 삭아서 탄광촌 숲 속에 굴러 있네.” 이 내용은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 5부 5권에 나오는 일제강점 말기 수탈당하는 우리 민족의 모습을 표현한 부분이다. 허구의 세계가 소설이지만 허구라 할 수 없는 진실이다. 박경리는 1926년생으로 일제강점기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토지의 시간적 배경도 1897년 한가위부터 1945년 해방까지 일본의 국권침탈과정과 강점기에 저지른 그들의 만행을 소설 속에서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풀어놓는 역사서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은 어떤 나라인가? 칼로서 만든 나라, 거짓으로 포장한 나라, 가깝고도 먼 나라 등 결코 좋은 나라는 아니다. 가끔 정치적인 관점으로 다뤄지는 뉴스에서 위안부 문제, 독도영유권에 대한 망언을 접하면 우리는 비분강개한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그들이 바른 역사관으로 사죄할 나라는 절대 아니다. 지난 2월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 중계방송 때 해설자로 출연한 미 NBC는 조슈아 쿠퍼 라모의 말을 떠올려 본다. 그는 일본 선수단이 입장하자 뜬금없이 일본이 한국을 1901년부터 1945년까지 점유했지만 모든 한국인은 일본이 문화·기술·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본보기였다고 말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여 분노를 사게 되었고 결국 사과 발언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하지만 이 라모 발언의 진원을 바로 알아야 한다. 라모의 발언은 일본의 한국지배를 정당화하는 일제의 식민지배가 한국의 경제발전에 밑거름이 되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에 근거를 두고 있다. 단지 자기 나라의 역사가 아니라고 쉽게 말했다고 받아들이기 전에 그동안 일본의 미국 외교계에 대한 끊임없는 로비로 동아시아에 대한 왜곡되고 편향된 인식이 표출된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일본은 이미 독도, 위안부 문제 등과 관련해 '사사카와 평화재단' 등 민간단체를 통해 미국의 오피니언 리더들을 친일파로 양성하고 있다. 일본은 한 번의 시도로 거짓이 진실이 되지 않음을 알고 집요한 거짓의 부르짖음으로 거짓을 진실로 바꿔버리는 전략을 펴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3.1 운동 99주년을 맞는 삼월 첫날 우리는 다시 한번 일본에 대한 시각을 새로이 해야 한다.
지금도 일본의 침략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2월 14일 일본 문부과학성은 ‘전자정부 종합청구’를 통해 독도가 자기 영토임을 고교학습지도요령 개정안에 고시 이를 교과서의 제작과 고교 역사총합, 지리총합, 공공과목에서 수업하도록 명시했다. 이는 교육을 통해 거짓을 진실로 만드는 치밀한 작업으로 후세대까지 대결 구도를 만들어 선점하려는 야욕을 그대로 볼 수 있다.
일본은 저력이 있는 나라다. 경제 규모 세계 3위, 군사력 7위, 노벨상 수상자를 25명을 배출한 나라로 일생을 한 우물을 파서 큰 업적을 낸다는 ‘오타구 정신’으로 전문성과 연속성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이런 일본을 유독 우리나라만 우습게 본다는 말이 있다. 그러면 과연 우습게 본다는 것은 어디서 연유한 것인가? 그것은 자국의 실리를 위해 엎드리는 약삭빠른 위정자의 처신에서 명분과 체통을 중시하는 우리로서는 비굴한 형태라 지칭할 수 있다. 그 한 예로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아베 정부의 과도한 의전을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모습에서 일본은 경제적 동물이며 국익을 위해서는 대의명분 체면도 쉽게 버릴 수 있다는 점을 찾아내야 한다. 일본! 분명히 미워하고 증오해야 할 나라이다. 하지만 통한(痛恨)은 가슴깊이 간직하고 가져와야 할 것은 가져오는 것이 현실이다.
삼월의 첫날 기억해야 한다. 세상은 힘이 있는 자의 논리가 정의가 되며 칼은 거짓도 믿게 한다는 것을. 구한말 일제에 의한 뼈아픈 국권침탈과 수탈, 그 이전의 임진왜란 그리고 지금의 망언과 역사 왜곡으로 되풀이돼는 3차 침략을 우리는 당하고만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