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학년 새학기가 시작된지도 보름이 지났다. 처음의 각와 다짐이 벌써부터 위태로워지는 듯하다. 신입생들은 긴장이 풀렸는지 꾸벅꾸벅 조는 학생들이 많아지고 학급의 기강도 많이 흐터러지고 있다.
그렇다면 늘 처음의 각오처럼 팽팽한 긴장감으로 마지막을 마칠 수는 없을까? 리포터는 몇 년 전에 읽은 책에서 마침내 그 해답을 발견했다. <조선왕조 오백년 한명회 편>에서 발견한 바로 이 구절 시근종태(始勤終怠)하니, 종근여시(終勤如始)하라 - "처음에는 부지런하다가 나중에는 게을러는 것이 인지상정이나니, 끝까지 삼가고 조심하기를 처음과 같게 하라."
조선시대에 칠삭둥이 재상으로 유명한 '한명회'란 사람이 죽으면서 유언으로 남긴 말이다. 그의 호가 ‘압구정’인데 지금 서울의 압구정동은 바로 이 사람 때문에 생긴 지명이다. 지금은 이렇듯 역사에 남은 유명인사가 되었지만 그의 어린 시절은 매우 불우하고 보잘 것이 없었다. 가난도 가난이지만 너무 못생겨서 태어나자마자 길에 버려졌다는 일화도 있을 정도이다.
한명회는 이렇듯 혹독한 어린 시절을 오직 자신의 강한 의지력 하나로 극복하고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인 영의정에 세 번이나 올라, 살아생전 세 분의 임금을 섬겼던 입지전적인 재상이다. 또한 세조의 장자방으로서 그를 임금으로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사육신들의 단종 복위운동을 좌절시키는 동시에 그들을 참살하는데도 적극 가담하여 욕도 많이 먹었다.
한명회가 현실적 감각이 뛰어난 유능한 정치인인지 아니면 권모술수에 능한 희대의 모사꾼인지는 역사학자들이 판단할 몫이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논외로 하고 리포터는 다만 그가 죽음의 순간에 남긴 의미심장한 유언을 소개하려고 한다.
한명회가 오랜 와병 중에 드디어 임종 직전이란 급보가 대궐에 전해졌다. 성종에게 한명회는 신하이면서 동시에 스승이며 사사로이는 빙장어른이었다. 명석한 임금이었던 성종은 즉시 승지를 보내어 그의 마지막 충고를 귀담아 들어오도록 했다. 그만큼 한명회는 지략과 궁량이 뛰어난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천하가 내 손바닥 안에 있다.'고 큰소리를 칠만큼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과 조감력이 탁월했던 한명회가 과연 자신의 사위이자 조선 제9대 임금인 성종과 자녀들을 위해 남긴 마지막 충고의 말 한 마디는 무엇이었을까.
여기는 다시 한명회의 대저택. 노재상의 마지막 가는 길을, 대궐에서 파견된 도승지를 비롯한, 온 가족들이 긴장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드디어 한명회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혼신의 힘을 다해 마른 입술을 열었다.
"전하, 사람들은 처음에는 부지런하다가 나중에는 모두 게을러집니다. 이것은 인지상정이옵니다. 모름지기 끝까지 부지런하기를 처음과 같게 하신다면 반드시 대업을 이룰 것이옵니다."
아, 이 말은, 지금으로부터 522년 전에 우여곡절의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한 경세가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간절한 유언이었다.
그랬다. 끈기가 없어 무슨 일을 하든 흐지부지 용두사미가 되어버리던 리포터에게 이 말 한 마디야말로 가슴에 두고두고 새겨야할 촌철살인의 금언이었던 것이다.
그 후로 리포터는 '한명회'의 이 말을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모든 일에 참고하며 지금까지 종근여시(終勤如始)하고 있으니 오호라, 죽어서도 잊을 수 없는 금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