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옛날 얘기야?" 할지도 모르겠다. 몇 년새 소위 '복고풍'이라는 6,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대량으로 쏟아져 나왔다. '안봐도 뻔한' 그 시절 이야기로 사람들이 눈시울을 붉힐 것도 뻔한 사실이니까.
1954년, '4사5입'이라는 이상한 숫자놀음은 얼룩진 부정선거를 절정으로 내몰더니 결국 나라 전체를 끊임없는 숫자의 소용돌이로 빠뜨렸다. 3.15, 4.19, 5.16으로 숨가쁘게 이어지던 역사는 혼란스럽고 어두운 6,70년대로 흘러간다.
동네에서 '두부 한모'로 통하는 효자동 '효자리발관' 주인 성한모(송강호). 우연처럼 필연처럼, 그는 역사의 한복판에서 결혼을 하고 아들 낙안이를 얻는다.
얼떨결에 간첩신고를 하다 정치권력에 휘말린 성한모는 또다시 얼떨결에 대통령 각하의 면도와 이발까지 책임지는 '귀하신 몸'이 된다. 청와대 행사에 초대받고 각하를 모시고 미국 순방에도 따라나서게 된 그는 동네 사람들은 물론 낙안이에게 최고의 영웅이 된다.
그러나 북에서 내려온 간첩들이 설사병에 걸렸다는 뉴스가 나온 이후 높으신 분들은 정국돌파를 위해 설사병이 '간첩과 접촉해서 생긴 전염병'이라고 발표한다. 어느 날 이발사의 아들 낙안이마저 그 '몹쓸 병'에 걸리고 시민의식이 투철한 대통령의 이발실장은 아들을 직접 경찰서로 데려간다.
효자동 주민들은 모두 우리 옆집에 살 법한 사람들이다. "나라에서 하는 일은 다 옳아. 두고보면 알게 돼"라고 큰소리치던 통장 아저씨는 어떻게 됐을까, 청와대 출입 이발사의 '빽'을 빌려 보려던 만두가게 왕씨 아저씨는 또 어디로 갔을까. 절대권력 앞에 숨죽일 수밖에 없었던 나약하고
소심한 사람들, 그러나 자기 방식대로 꿈과 희망을 지키려 발버둥친 이들의 사연은 너무나 절절하다.
영화는 가슴 아픈 현대사의 일부를 최대한 밝게, 코믹하게, 따뜻하게 그리려고 애쓴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묘한 표정을 짓게 되곤 한다.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해야 한다는 거대한 애국 논리와 아들에 대한 소박한 사랑 사이에서 눈물 흘려야 했던 성한모는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아버지의 모습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어버이날이 지나갔다. 평범하게 사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 된 이 때, 묵묵히 자기 일에 충실했던, 말없이 나를 사랑해주셨던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내 아버지가 새삼 존경스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