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패기만 넘치던 그 시절 ‘서른 살 전에 모든 대륙을 가보겠다’라는 목표를 세웠다. 그렇게 유럽·오세아니아·아시아·북아메리카·아프리카를 다녀왔고, 서른이 되기 바로 이틀 전 마지막 대륙 남아메리카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동거리는 물론 현지의 치안, 불편한 인프라 탓에 많은 사람이 가고 싶지만 쉽게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는 ‘꿈의 여행지’ 남아메리카. 그렇게 멀고도 위험한 곳에 ‘고3 담임’과 ‘졸업을 앞둔 제자’가 함께 여행을 했으니 어쩌면 내 이십 대에게, 그 친구의 십 대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 아니었을까.
숙소에서조차도 여행을 만끽하고 싶다면 ‘에어비앤비’ 추천
남미는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몇 개월 이상 유랑하는 여행자들로 넘쳐난다. 요즘은 남미로 들어가는 하늘길이 비교적 저렴하다. 한두 번 정도 경유할 경우, 100만 원 미만으로 편도 항공권을 구할 수도 있다.
남미를 여행하는 가장 흔한 코스는 페루 리마로 들어가서 아르헨티나 또는 브라질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루트이다. 물론 정반대의 루트로 여행할 수도 있지만, 리마→ 쿠스코(3,300m) → 우유니(3,600m)로 이어지는 경로를 추천한다. 그 이유는 점차 고도를 높여가며 이동하면 고산병에 적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의 루트를 이용할 경우 갑자기 높은 고도인 우유니로 이동하게 돼 자칫 남은 여행 일정을 모두 망칠 수 있다. 현지에서 들은 이야기로는 10명 중 8명이 고산병 증세를 겪고, 그중 2명은 고산병 정도가 심해 급하게 고도가 낮은 지역으로 이동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고산병은 예방이 쉽지 않고, 증세가 나타났을 땐 약효도 없으니 여행 전에 미리 건강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
숙소는 호텔, 호스텔(게스트하우스) 등 다양하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남미 전통 가옥과 현지인들의 삶 자체를 체험해보고 싶어에어비엔비(Airbnb : 숙박 공유 서비스)를 이용했다. 쿠스코에서는 야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언덕 위에서, 칠레 푸에르토 나탈레스에서는 드넓은 초원 위에서 그리고 아르헨티나에서는 거실에 탱고 연습장이 갖추어진 집에 머물렀는데, 나라마다 그리고 도시마다 그 색깔이 다양해 숙소에 머무는 동안에도 여행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미의 첫 관문인 ‘리마’와 잉카제국의 심장 ‘쿠스코’
남미의 첫 관문인 리마는 여행자들이 쿠스코로 들어가기 위한 경유지이다. 볼거리가 많지 않지만, 하루 이틀 머무르면서 긴 비행으로 인해 떨어진 체력을 보충하며, 고산지역으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 준비를 하기 좋은 곳이다.
리마에서 비행기로는 1시간 남짓, 버스로는 12시간 정도 걸려 도착한 곳은 잉카제국의 심장 쿠스코이다. 해발고도 약 3,300m에 자리 잡고 있어서인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현기증 증세가 나타나더니 이내 숨 가쁨이 느껴졌다. 잉카제국의 수도답게 과거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어 도시 내부를 걸어만 다녀도 마치 과거로 시간여행을 온 기분이 들었다. 어디든 올라서서 바라본 쿠스코의 전경과 야경은 넋을 빼놓았고, 그 황홀함은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
쿠스코를 기점으로 택시와 기차로 약 3시간을 이동하면 마추픽추의 관문 아구아스 깔리안테스에 도착한다. 마추픽추에 오르기 위해선 이 마을에서 버스를 타거나 등산을 해야 한다. 만약 버스를 이용할 계획이라면, 도착한 날 버스표를 미리 구매해야 편리하다. 당일 아침에는 줄이 워낙 길
어 표를 구매하고, 버스에 탑승하는 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페루는 12월부터 3월까지가 우기이다. 그래서 이 기간에 마추픽추를 여행하게 되면 구름 가득한 마추픽추를 만나기 일쑤이다. 하지만 절대 실망하지 말자. 해가 뜨기 시작하면서 구름이 걷히고, 그 사이로 펼쳐지는 마추픽추와 대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무대의 장막이 걷히는 것처럼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고대도시 마추픽추의 모습은 훨씬 극적이다.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마음으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마추픽추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최초로 잉카제국의 심장을 발견한 탐험가가 된 기분이었다.
땅과 하늘의 데칼코마니 ‘우유니 소금사막’
다음은 많은 사람의 버킷 리스트에 담겨 있는 우유니 소금사막이다. 쿠스코에서 비행기로는 직항이 없어 볼리비아 수도 라파즈를 거쳐 이동해야 한다. 버스로도 이동할 수 있지만 꼬박 하루 정도가 걸리기 때문에 비행기로 이동하는 것을 추천한다. 남미도 저가항공이 보편화되어 있어 비행기로 이동하는 것이 수월하다.
어렵게 도착한 우유니의 첫인상은 사진 속의 멋진 장소가 이곳에 있을지 상상이 안될 만큼 낙후된 시골 마을이었다. 인프라가 잘 갖춰 있지 않아 대부분 도로가 비포장이며, 숙소는 기대치를 최대한 낮추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을 것이다. 대부분 숙소는 태양열로 전기를 생산해 저녁이면 정전도 문제지만,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아 겨울엔 찬물로 샤워를 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니 감
기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사념은 우유니 소금사막에 발을 딛는 순간 모두 사라진다. 눈앞에 펼쳐진 땅과 하늘의 데칼코마니를 보고 있으면 내가 하늘을 밟고 있는 건지, 땅을 밟고 있는 건지 헷갈릴 정도다. 그곳에 머무는 내내 꿈 속에서라도 이런 장면을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우유니를 여행하는 방법은 현지 투어를 이용하는 방법밖에 없다. 투어 프로그램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대부분 ‘선셋+스타라이트’ 또는 ‘스타라이트+선라이즈’ 투어를 선택한다. 스타라이트는 쏟아지는 사막의 은하수를 볼 수 있고, 해가 뜰 때나 해가 질땐 가장 아름다운 우유니 사막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유니에 도착하면 한국인 여행자가 상당히 많아 여기가 한국인지, 볼리비아인지 헷갈릴 정도이다. 대신 투어 참여나 우유니 생활, 남미 여행에 대한 팁을 얻을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마지막 정상의 문턱을 넘어 마주한 ‘토레스 삼봉’ 이제는 칠레로 이동한다.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 들어서자마자 그동안 과거로 떠났던 시간 여행이 끝이 났음을 직감했다. 흔히 봐왔던 익숙한 도시의 모습이 약 보름만에 나타난 것이다. 마치 문명의 세계에 처음 발 디딘 것처럼 오랜만에 보는 최신식 가전제품으로 그동안의 부족함을 채웠다. 산티아고에서 정비를 마친 다음 칠레의 최남단 푼타아레나스로 이동했다. 푼타아레나스는 남극으로 가는 관문에 위치한 곳으로 유명하지만 최근 몇 차례 방송을 통해 ‘신라면’을 팔고 있는 아저씨로도 유명한 곳이다. 한국 슈퍼에서 살 수 있는 라면 가격의 10배가 넘지만 매운 국물에 주인아저씨의 인생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그 돈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푼타아레나스에서 버스로 4시간가량 이동하면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으로 유명한 푸에르토 나탈레스에 도착하게 된다. 국립공원 트레킹을 위해 모인 전 세계 여행객들로 붐비는 이곳에 가는 방법은 버스와 렌터카이다. 버스는 하루에 이동편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출발과 도착 일정에 맞춰 산행하려면 렌터카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남미에서는 자동 변속기어 자동차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워, 적어도 몇 달 전에는 ‘반드시 예약’을 해야 한다.
토레스 델 파이네의 하이라이트인 토레스 삼봉은 마지막 정상의 문턱을 넘어서야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낸다. 마추픽추와 우유니도 그랬다시피 이곳도 쉽사리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화려한 ‘이구아수’, 장엄한 ‘이구아수’
추억을 뒤로하고 아르헨티나로 향했다.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엘칼라파테의 페리토 모레노 빙하이다.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빙하 트레킹이 가능한 곳이다. 빙하 위를 한참 거닐다 마지막엔 12년산 양주에 무려 3만 년산 빙하 얼음을 온더록스(on the rocks) 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색다른 경험이 있을까? 가끔 거대한 빙하 벽이 굉음을 내며 무너지는 모습도 볼 수 있으니 여기를 그냥 지나치지 말아야 한다.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남미의 파리’라고 불릴 정도로 파리와 닮아있다. 라 보카 지역을 중심으로 탱고 문화가 발달되어 있는데 무엇보다 3일, 7일, 1개월 탱고 수업을 수강할 수 있기 때문에 탱고의 본고장에서 탱고를 배워보는 것을 적극 추천한다. 매일 밤 자정 가까이가 되
면 탱고 클래스에서 춤을 배우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영화 속 한 장면에 들어온 기분이 들 것이다.
마라도나와 메시로 유명한 아르헨티나 축구를 경험해보기 위해선 리버플레이트나 보카 주니어스 경기장을 찾아갈 수 있다. 두 팀은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연고로 하는 팀으로 부유한 지역의 팀인 리버플레이트와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을 연고로 하는 보카주니어스의 불꽃 튀는 신경전도 함께 느껴볼 수 있다. 경기장 내에서 흡연이 가능해 마리화나를 피우고 있는 사람들의 유혹이 많으니 잘 이겨내야 한다.
마지막으로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경계에 있는 이구아수 폭포로 떠났다. 약 한달간 이어져 온 여행 동안 봄·여름·가을·겨울을 다 겪다 보니 찜통 같은 더위와 높은 습도로 무장한 이구아수는 남은 체력을방전시키기에 ‘딱’이었다. 이구아수 폭포는 크게 아르헨티나 사이트, 브라질 사이트가 있는데 두 곳을 하루 만에 둘러보기는 힘들지만, 하루에 한 곳씩 살펴보는 것은 무리가 없다. 아르헨티나 쪽에서 바라보는 이구아수는 폭포를 눈앞에서 바라볼 수 있는 화려함이, 브라질에서 바라보는 이구아수는 폭포 전체를 아우르는 장엄함이 있으니 꼭 두 곳 모두 살펴보는 것을 권한다. 걸어서 국경을 넘어가는 독특한 경험은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에필로그 몸은 지쳤지만 마음만은 계속 머무르고 싶었다. 남미는 사계절을,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자연과 인문을 모두 담고 있는 보석 같은 대륙이었다. 돌아오는 비행기를 따로 예약하는 바람에 제자는 미국을, 나는 뉴질랜드를 거쳐 한국으로 돌아왔다. 먼저 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러 가는 제자가 ‘선생님!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게 된 여행이었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버렸다.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스무 살의 내가 첫 유럽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앞으로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했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제자와 함께한 한 달의 시간은 지난날을 되돌아보게 하였고, 현재를 즐기게 해줬으며, 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