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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번역'과 '편역'의 경계는 어디?

중3 국어 교과서 그리스 로마신화 '길 잃은 태양마차' 논란


'번역'과 '편역'의 경계는 어떻게 구분하며, 편역자가 누릴 수 있는 자유는 어디까지일까.

편역(編譯)한 책은 번역서 보다 베스트 셀러가 되는 사례가 많다. 번역에서는 피할 수 없는 딱딱함과 원전의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최고의 베스트셀러라는 이문열 평역 '삼국지'(민음사)나 100만 부가 넘게 팔리면서 '신화 열풍'을 주도한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웅진닷컴)가 바로 이런 케이스에 속한다.

이들 책에는 독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을 역자가 빼거나 더하고, 일부 순서를 바꿔 재미와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문제는 편역자가 원전에 없는 내용을 자신의 상상력으로 추가, 원전과 다른 내용의 책을 만들 수 있느냐는 것이다.

'번역'과 '편역'의 경계에 대한 이 논쟁은 12일 성균관대 이재호 명예교수가 대구가톨릭대 에서 열린 한국번역학회 학술대회에서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신화' 중 일부인 '길 잃은 태양마차'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점화됐다. '길 잃은 태양마차'는 중학교 3학년 2학기 국어 교과서 19∼41쪽에 '오비디우스 지음, 이윤기 옮김'으로 실린 것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의 원전으로 여겨지는 고대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BC43~AD17)의 서사시 '변신 이야기'중 일부다.

이 교수는 논문에서 "이 글은 엄격히 말해 번역이 아니라 황당무계한 억측을 가미한 패러프레이즈(paraphrase·바꿔쓰기·의역)일 뿐만 아니라 원시(原詩)에는 없는 날조된 것이 수두룩하고 틀린 것도 많다. 탈락도 심하고 표기가 잘못된 것도 있다"고 비판했다.

논문은 '길 잃은…' 서두에 신화의 무대를 이집트의 '헬리오폴리스'로 소개한 것부터가 잘못이라고 짚고 있다. 이는 원문에 없는 내용으로 이야기의 무대는 '아이티오페이아'라는 것. 역자의 착각이 낳은 오역도 지적했다. '길 잃은…'은 '아이티오페이아'의 어원을 '도덕(에토스) 높은 사람들이 많아서'라고 설명했으나 정확한 어원은 '햇볕에 탄 얼굴'이라는 것이다. 또 에게해의 신 '아이가이온'이란 표현도 에게해의 신 '아이게우스'와 손이 100개씩 달린 거인 3형제 중 한 명인 '아이가이온'을 혼동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교수의 비판에 대해, 이 씨는 해명서 '아킬레우스 건(腱), 맞습니다'를 내놓으며 대응했다. "지난해 교과서에 실리기 전 '이윤기 옮김'이 아닌 '이윤기 편역 또는 평설'로 바꿔줄 것을 요구했지만 바로잡히지 않았다"면서 "번역이 아닌 편역한 글을 '황당무계한 억측'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이 교수는 다시 "아무리 편역이라 할지라도 지켜야 할 것이 있다"며 "'길 잃은…'처럼 원전을 심하게 변형시키는 것은 원저자에 대한 모독이자 독자를 우롱하는 것"이라고 반박하고 나섰다. 번역학회 김지원 회장도 "고치라고 했는데 안 고쳤다는 해명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문제는 학생들이 잘못된 책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교육부 교육과정 정책과 김차진 연구관은 "문제가 된 인명이나 지명 등은 저자와 합의를 거쳐 오류를 바로잡았다"며 "2학기부터 학생들은 수정된 교과서로 공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논쟁이 된 '편역'문제는 '편역'이나 '평역(評譯)' 이라는 말이 국어사전에 등재된
정식용어가 아닌 만큼 '이 글은 옮긴이가 내용 구성 및 표현의 효과를 위하여 원전과 다소 다르게 더하거나 뺀 부분이 있음'이라는 각 주를 달기로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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