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대안학교 발도르프(Waldorf)학교가 알려진 것에 비해 그 학교 설립자 루돌프 슈타이너(Rudolf Steiner:1861~1925)의 교육사상은 크게 조명 받지 못했다. 게다가 슈타이너가 한국에 처음 소개된 것은 발도르프학교 설립자나 교육사상가로서가 아니라, <20세기 신비사상가들>이라는 책을 통해 신비사상가로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과 정신세계가 눈에 보이는 물질세계만큼이나 분명하게 실재한다’고 말하는 슈타이너는 신비주의 사상가임에 틀림없다. 이런 점이 슈타이너의 교육사상을 널리 알려지게 하는 것을 방해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사상은 신비주의 사상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서 구체적인 실천으로 나타난다. 그의 독자적 사상체계인 인지학의 교육적 실천이 바로 발도르프학교 교육이다.
발도르프학교 설립자, 슈타이너 사상의 태동
발도르프학교는 1919년 독일에서 슈타이너가 설립한 대안학교의 하나로, 긍정적 평가를 받으면서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왔다. 한국에서도 1990년대 말 대안교육운동 흐름 속에서 발도르프학교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마침내 한국 발도르프학교들도 생겨났다. 또한 최근 혁신학교운동이 일어나면서 공립학교 중에서도 발도르프교육을 접목하여 교육혁신을 꾀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발도르프학교 교육의 특성은 개혁적인 프로그램이나 교육방법에 있지 않다. 오히려 인간의 본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성장하는 인간 존재로부터 적합한 교육의 관점이 나와야 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즉, 발도르프학교 교육의 특성은 구체적인 교육 프로그램이나 방법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동의 본성과 발달 단계에 맞는 교육을 하고자 하는 교육철학과 원리에 있다고 할 수 있다(정윤경, 2005).
슈타이너는 1861년 2월 25일 크랄예백(Kraljevec)2에서 태어났다. 철도기술자가 되기를 바랐던 아버지 뜻에 따라 슈타이너는 실과학교(Real schule)를 다녔다. 실과학교를 마치고 비엔나 공과대학에서 피히테(J. G. Fichte), 쉘링(F. W. Schelling), 헤겔(G. W. Hegel) 등 관념론자와 괴테(J. W. Goethe), 쉴러(F. Schiller) 등 문학가들의 사상을 두루 접한다. 특히 문학사 교수 슈레어(Schröer)를 통해 괴테의 작품에 빠져들고, 괴테가 문학가뿐 아니라 과학자였음을 알게 된다. 괴테는 식물·색채 등 자연현상을 정확하게 관찰하고, 플라톤이 말했던 것처럼 자연계의 모든 대상의 배후에는 그 원형(archetype)에 해당하는 관념이 존재함을 확신하고, 그것에 기초해 괴테과학을 발전시킨다. 이런 영향을 받으면서 슈타이너는 정신세계와 물질세계 사이를 관련짓는 인지학적 사상을 확립해가기 시작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에 도달하고자 했던 슈타이너
눈에 보이는 물질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사이의 관련성을 찾고, 연계하려는 슈타이너의 관심은 훗날 발도르프학교 교육에 그대로 적용된다. 그는 당시 이루어지는 학교 교육이 지나치게 눈에 보이고 잴 수 있는 대상과 사실에만 매달리고 있음을 지적하고, 발도르프교육학에서는 두 세계 사이를 연계하려고 노력하였다(Nobel, 1996: 82). 계속해서 슈타이너의 주된 관심은 정신이라는 실재에 도달하는 것이었고, 그는 그것이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인식에 의한 것임을 보이려고 하였다. 정신을 실재로서 인정하고, 정신의 영역을 추구하던 경향은 슈타이너 이전에도 계속 있어왔다. 슈타이너는 특히 신지학(Theosophy)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1889년 슈타이너는 괴테 작품의 바이마르판 전집(Weimarer Goethe-Ausgabe) 출판을 위해 독일 바이마르로 옮긴다. 바이마르에서 출판 일을 하면서 슈타이너는 여러 책을 출판한다. 1891년 로스토크(Rostock) 대학에서 박사학위 논문 <인식론의 근본 문제-피히테의 인식론과 관련하여(The Fundamentals of a Theory of Cognition with Special Reference to Fichte's Scientific Teaching)>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는다. 이것은 슈타이너의 주요 저서 <자유의 철학(The Philosophy of Spiritual Activity)>의 서문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슈타이너의 사상에 영향을 준 것으로 신지학을 들 수 있다. 슈타이너는 1902년 정신세계의 실재를 확신하고, 신지학회에 가입한다. 신지학회는 블라바츠키(H. P. Blavatsky)가 중심이 되어 1875년 설립한 조직이다. 일반적으로 신지학이란 신학과 종교철학상의 합리주의를 반대하고, 인간적인 모든 지식과 인식능력을 넘어서서 신비적인 계시와 직관에 의해 직접적으로 대면하여 그 깊은 뜻을 파헤치려는 것을 뜻한다(廣瀨俊雄, 1990: 16).
슈타이너는 신지학회 독일지부 모임에서 자기 자신의 인지학적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는 독일지부 사무국장을 맡아 운영하는 동안 신지학회 회원이 아닌 청중을 위해서 강연도 했다. 그는 ‘인지학’이라는 제목으로 ‘인류의 정신적 진화’에 대해서 강연했지만, 청중들은 슈타이너가 ‘인지학’이라는 제목으로 사실은 ‘정신세계에 관한 것을 말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슈타이너를 신지학자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인지학자라고 부르는 것을 원치 않았다(St einer, 1977: 344-346; 517).
객관적인 과학에 기초하여 정신적 실재를 탐구하는 인지학
슈타이너는 정신세계에 대한 체험을 종교적 계시의 문제라기보다는 인식의 문제로 보았다. 그래서 ‘인간 내면의 인식을 만들어내는 근원적인 것은 무엇인가?’라는 인식론적 질문을 던지며 정신적인 실재를 탐구해간다. 따라서 슈타이너는 인지학이 신지학과 달리 객관적인 과학에 기초하는 점을 강조한다. 이런 차이점 때문에 1913년 신지학회를 탈퇴하고, 자신의 사상 인지학을 독자적으로 발전시켜간다.
1897년 슈타이너는 바이마르를 떠나 베를린으로 옮긴다. 베를린에서 슈타이너는 노동자들을 위한 민중대학에서 여러 강연 활동을 펼치는데, 이것은 나중에 그가 주도한 ‘삼중적 사회질서 운동’(Threefold Social Order Movement)에도 영향을 주었다.
삼중적 사회질서 운동은 제1차 대전 이후, 독일의 사회복구가 급한 상황에서 일어난 운동이다. 전쟁 이후 슈타이너는 자기가 생각해온 인식론적 관심과 사회에서 벌어지는 실천적인 문제를 관련짓기 시작한다. 1918년 이후 슈타이너는 삼중적 사회질서운동을 하면서 독일 국민에게 알리는 연설문을 시작으로 사회적인 문제와 관련된 글을 주로 발표하였다.
슈타이너의 생애에서 특히 인지학의 발달과정시기를 세 시기로 나눠볼 수 있다. 1902년에서 1909년 동안은 슈타이너의 내적 경험이 개념적인 형태로 발달한다. <신지학(Theosophy, 1904)>, <어떻게 초감각적 세계의 인식을 획득할 것인가(Knowledge of the Higher Worlds: How is it achieved?, 1909)>, <신비학개론(Occult Science, 1909)> 등 슈타이너 자신의 내적 경험이 과학적으로 체계화된 책들로 출간된다. 1910년에서 1916년까지 인지학의 발달 제2기를 맞는다. 네 편의 신비극이 만들어지고, 오이리트미(eurythmy)라는 새로운 형태의 예술도 만들어지는 등 인지학은 주로 예술적인 형태의 발전을 보인다. 슈타이너는 드라마 공연 장소 및 인지학 활동의 중심지를 마련하기 위해, 괴테아눔(Goetheanum)7을 짓는다.
정신세계의 내적 경험이 사회의 구체적 실천으로 이어진 인지학
인지학 발달 3기는 1917년에서 1923년 동안이다. 이 시기는 슈타이너의 정신세계에 관한 내적 경험이 사회의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어진다. 슈타이너가 ‘삼중적 사회질서 운동’을 전개하고, 1919년 발도르프학교를 세워 교육 분야에서 자기 생각을 실천하는 것 모두 이 시기에 이루어진다. 교육 외 의학·농학 등의 분야에서도 인지학적 성과가 적용되기 시작한다. 슈타이너는 1924년 인지학 협회를 설립하고 의장직을 맡아 협회 운영을 활발하게 해나간다. 인지학 입문 코스, 오이리트미 기초 강좌, 교육학 강좌, 의학 관련 강좌를 개설하였다. 이외에도 농업 분야의 유기농법에 관한 강좌, 교육 분야의 특수교육에 관한 강좌를 개설하여 농업과 특수교육 분야에서도 인지학적 실천을 이어갔다. 1924년 유럽 각지로 순회강연을 다녀온 후 슈타이너는 몸이 점점 쇠약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슈타이너는 강연과 자서전을 완성하는 일을 계속 해나갔다. 1925년 도나하에서 슈타이너는 64세로 땅 위에서의 삶을 마친다.
1961년 슈타이너 탄생 100년이 되는 해에 그의 저작이 전집으로 출판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정리된 저작이 1990년까지 전집(Gesamtausgabe: GA) 354권에 이른다. 전집의 가이드북에 해당하는 별도의 3권에는 슈타이너의 전기 요약, 용어색인과 인명색인, 그리고 각 전집의 내용요약이 포함되어 있다. 독일어 전집은 대부분 여러나라말로 번역되어 출판되고 있다(Nobel, 1996: 47).
슈타이너 자신은 인지학을 ‘인간본성에 대한 바른 인식’에 기초해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간주하며, ‘정신과학’이라고도 부른다. 인지학이 교육 분야에서 실천된 발도르프학교는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학교에 따라서 지역이름을 앞에 붙인 ‘○○발도르프학교’ 또는 ‘○○슈타이너 학교’라고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