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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시네마편지>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희망, 삶의 마지막 이유


쿠르드족. 이란과 이라크의 국경마을에 사는 이름조차 낯선 이 민족은 두 나라간 오랜 전쟁의 여파로 지금까지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

이 마을 아이들은 눈을 기다린다. 여느 아이들처럼 눈싸움을 하고 눈사람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폭설로 길이 끊어져야 마을 주민의 생계수단인 이라크 밀수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12살 아윱은 밀수하러 떠났던 아버지가 시체로 돌아오면서 학교를 그만두고 밀수단 어른들의 심부름꾼으로 따라나선다. 돈벌이는 시원치 않고 선천적 장애가 있는 막내동생 마디는 수술받지 않으면 한달을 넘기기 힘들다는 진단을 받는다.

누나 로진의 결혼지참금인 노새를 팔아 동생을 수술시키기로 결심한 아윱은 마디를 안은 채 다시 이라크 밀수길에 오른다. 노새에게 술을 먹이지 않으면 이길 수 없는 추위, 무릎까지 차올라오는 눈, 국경수비대, 곳곳에 깔린 지뢰, 매복 강도들은 어김없이 어린 형제를 괴롭힌다.

매복 강도를 피해 도망치던 노새들은 술을 너무 많이 먹은 탓에 눈밭에 맥없이 쓰러진다. 강도들의 총성은 점점 가까워지지만 동생의 목숨이 달린 노새 고삐를 놓을 수 없는 아윱은 홀로 울부짖는다.

“인생이라는 놈은 나를 산과 계곡으로 떠돌게 하고 나이 들게 하면서 저승으로 이끄네.”

밀수꾼을 돕기 위해 트럭을 타고 가던 쿠르드 아이들은 뜻도 모르면서 섬뜩할 정도로 냉소적인 노래를 불러댄다. 영화는 총칼을 등장시키지 않고도 전쟁이 얼마나 오래, 또 깊이 인간의 삶을 황폐하게 만들 수 있는지 보여준다.

정말 무시무시한 전쟁의 파괴력은 전쟁이 끝난 뒤에 몇 배로 강하게 나타난다. 폐허로 변한 집, 수많은 전쟁고아들, 일자리와 함께 삶의 의욕조차 잃은 사람들….

어른들의 이기심이 일으킨 전쟁 때문에 가장 상처받는 것은 아이들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아이들의 눈망울은 새삼 '희망’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알려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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