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시농부 4년차다. 내 땅을 소유하고 있는 것은 아니고 일월공원 둑 아래에서 공원 텃밭을 가꾸고 있다. 내가 관리하고 있는 텃밭은 손바닥만하다. 아주 작은 면적이다. 지금 여기엔 가지, 방울토마토, 고추가 잘 자라고 있다. 가지 세 개는 벌써 나물로 만들어 먹었다. 또 한 가지, 여기에서 도시농부의 행복도 익어가고 있다.
밭 딸기가 한창 익어갈 무렵에는 기상과 동시에 밭으로 달려갔다. 새끼손톱마한 딸기의 상큼한 맛을 보기 위해서다. 아침에 싱싱한 딸기를 맛보면 왠지 청춘으로 돌아갈 것만 같다. 딸기를 따면서 혼자서 중얼거리는 노래가 있다. ‘잎새 뒤에 숨어 숨어 익은 산딸기’ 동요와 ‘아무도 모르라고 도로 덮고 내려오지요’라는 가곡이다. 자연 속에서의 행복감 표현이다.
수확한 한 컵 정도의 딸기, 누가 먹었을까? 아내가 몇 알 먹고 경로당 문화교실 참가 어르신들이 드셨다. 간식 시간에 딸기 세 알 정도 드리는데 할머니들 반응이 재미있다. “에게, 요만큼 주시면 어떻게요?” “한 움큼 주면 안 되나요?” “나 좀 몇 개 더 줘요.” 마트에서 살 수 없는 상품가치가 낮은 것이지만 맛만은 한번 보면 또 먹고 싶다. 땀 흘리고 드시는 간식이기에 꿀맛인가 보다.
어제는 마음먹고 카메라를 들고 텃밭에 갔다. 고춧잎에 실잠자리가 앉아 있다. 날개와 꼬리가 얼마나 가느다란지 자세히 보아야 보인다. 아침 식사에 풋고추 몇 개 맛보려고 고추를 따다가 참새를 보았다. 참새가 날파리를 입에 물었는데 곧바로 먹지 않고 땅바닥에 뱉었다가 몇 차례 다시 문다. 마치 도시농부에게 먹이 잡은 솜씨를 자랑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느 날은 조리로 물을 주다가 깜짝 놀란 일이 있었다. 땅의 수분 증발을 막고 잡초를 막으려고 텃밭에 발을 깔아 놓았는데 그 속에서 커다란 두꺼비가 어슬렁어슬렁 기어나오는 것이었다. 마치 주인에게 인사를 하려는 듯. 도심 속에서 두꺼비라? 도시에서는 개구리도 보기 힘들다. 텃밭 가꾸면서 농작물만 키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도시 사람들에게 까치는 익숙할 것이다. 흔히 볼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일월공원엔 물까치가 있다. 까치와 크기는 비슷하고 습성도 비슷하지만 회색빛을 띤다. 다만 까치와 다른 점은 사람을 무척 경계한다. 가까이 다가가면 금방 날아간다. 이 곳엔 부부 물까치가 여러 마리가 나들이를 즐기고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려주고 있다.
여기서 뻐꾸기는 직접 보지 못하였지만 울음소리는 자주 듣는다. 인근 청룡산에서 들리는데 언젠가는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산비둘기는 자주 본다. ‘구구구구’ 하면서 운다. 아파트 살구나무에서 산비둘기 둥지를 본 적이 있다. 아내가 사용하지 않는 참깨를 음식물 찌꺼기로 버린다하기에 내가 넘겨받아 블루베리 나무 밑동에 부었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비둘기가 아침과 점심, 저녁 식사로 다 먹었다.
요즘엔 보랏빛 블루베리 열매 맛보기에 빠졌다. 작년과 올해 물주기가 부족하여 열매 굵기는 작지만 시음용으로는 최고다. 혼자 먹지 않고 함께 하는 이웃 텃밭에게도 한 두 알 나누어 준다. 텃밭 구경을 하는 산책객에게도 맛보시라고 건네준다. 이 곳에는 사과나무, 살구나무, 자두나무, 감나무, 뽕나무 등이 여러 그루 자라는데 도시농부는 자기 텃밭도 살펴보고 유실수에도 애정을 쏟는다.
공원텃밭 원두막 바로 옆에는 정원 열 곳이 있다. 올해 ‘해와 달 행복을 짓는 사람들’이 이곳을 가꾸고 있다. 전 수원시농업기술센터 소장이었던 송순옥 씨가 마을공동체를 만들어 산책객에게 행복을 선사하고 있다. 연중 가꾸는 화초만 90종 정도 된다. 지금은 캘리포니아 양귀비가 만개했다. 추억정원엔 유년시절 보았던 해바라기, 채송화, 칸나, 다알리아가 자라고 있다. 이것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도심에서의 행복 찾기,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특히 일월공원에서의 행복 찾기는 호수가 있는 자연과 함께 하기에 금방 발견할 수 있다. 텃밭을 가꾸며 자연에 애정을 갖고 있다면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 피부에 와 닿는 것이 모두 행복이다. 내가 도시농부가 되길 정말 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