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영지와 힘을 가진 아버지는 사랑하는 딸들에게 묻습니다. “너희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해 보아라.” 이 어리석은 질문에 첫째와 둘째는 질문자의 의도에 맞는 달콤한 대답을 합니다.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부풀리고 예쁘게 포장한 말을 하여 엄청난 영지를 받습니다. 하지만 막내딸은 사랑을 수치화하고 계량하려는 아버지의 질문에 자식으로 도리에 따라 사랑할 뿐이라는 대답을 합니다.
어리석은 아버지의 질문에 현명한 대답을 한 딸과 그 진실을 알아보지 못하는 아버지는 비극으로의 첫발을 내딛습니다.
아버님은
저를 낳아 기르시고 사랑해 주셨기에
전 그에 합당한 의무로 보답고자
복종하고 사랑하며 가장 존경합니다. / 1막 1장, 코딜리아
이 행동을 멈추시오. 목숨을 걸고 판단컨대
막내딸의 사랑은 가장 적지 아니하며
조용한 목소리로 공허한 말 않는다고
인정 없진 않습니다. / 1막 1장, 켄트
리어는 가장 충성스러운 신하인 켄트 백작의 간언을 듣지 않고 쫓아버립니다. 그는 끝까지 신분을 숨기고 보필하지만 리어는 알아보지 못합니다. 이렇게 전 재산을 탐욕스러운 두 딸에게 나누어주고 아무 것도 남지 않은 노년의 왕은 황야를 방황하게 됩니다. 이를 어릿광대인 바보는 말합니다.
있다고 다 보여주지 말고
안다고 다 말하지 말고
가졌다고 다 빌려주지 말고 / 1막 4장, 바보
Who is it that can tell me who I am?
내가 누구인지 말해 줄 수 있는 사람? / 1막 4장, 리어
폭우가 내린 중부지방과 달리 남쪽 지방에는 뜨거운 햇살이 쏟아지는 여름입니다. 수직으로 쏟아지는 매미소리는 도시의 아스발트를 뚫을 듯 요란합니다.
모든 것을 잃고 광기에 휩싸인 왕 ‘리어’ 와 자식의 사랑을 알아보지 못하는 또 한 명의 아버지 글로스터 백작, 이 두 명의 노인들은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그들이 말하는 진실의 가치란 무엇이고 인간의 정체성이란 무엇일까요? 왜 코딜리아는 자신의 아버지를 위해 사랑스러운 말로 치장하지 못하였을까? 많은 물음들이 내게 다가섭니다. ^^
시절은 여름의 한가운데 있습니다. 더위와 잘 친해 보시죠.^^
『리어왕』,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민음사,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