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고 폐지를 놓고 한국사회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학교는 이념 전쟁터로 전락했다. 자사고를 폐지해야겠다는 좌파 진보진영의 밀어붙이기 행정이 빚은 결과다. 특권교육 · 귀족학교 · 입시중심학교라는 프레임을 씌워 몰아붙였다. '평등주의 교육'을 주창하는 이들은 일반고를 살리기 위해서는 자사고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자사고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측은 교육을 이념 대결의 장으로 몰고 가 정권의 입맛대로 좌지우지하려는 의도가 담긴 정치적 판단이라고 반박한다. 자사고 폐지는 학생의 선택권을 무시하고 수월성·다양성 교육에 대한 시대적 요구를 외면한 처사라는 것이다. 학부모들의 목소리는 더 높다. "진보 교육감들은 자기 자녀는 자사고 · 특목고 보내면서 왜 남의 자식 앞길은 가로막느냐"며 ‘내로남불’이라고 쏘아붙인다.
이번 자사고 재지정 평가를 둘러싼 갈등에서 눈여겨볼 점은 대략 세 가지. 우선 지금처럼 행정적·인위적 폐지가 온당한 것인가 하는 문제다. 또 좌파진보진영이 왜 이토록 무리하게 자사고 폐지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이고 이 같은 결과가 한국의 수월성 교육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점이다.
이번 호에서는 자사고 폐지 정책의 교육적·사회적·법적인 문제점을 짚어보고 좌파진보진영이 자사고 폐지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속내를 들여다본다. 아울러 자사고 폐지 정책으로 심각한 위기를 맞은 한국 수월성 교육의 현주소와 극복방안을 모색한다. 자사고 재학생 좌담을 통해 갈등과 혼란의 한 가운데 놓인 학생들의 진솔한 이야기도 담았다.
예측불허의 혼돈으로 빠져드는 한국교육, 교육이 정치와 이념에 매몰된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
자율형사립고(자사고) 폐지의 시시비비를 둘러싸고 사회 곳곳에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한쪽에서는 자사고가 마치 교육평등을 위협하는 다모클레스의 검인 것처럼 폐지를 강하게 주장하고 있고, 다른 쪽에서는 지식기반사회의 도래로 인재경쟁력이 가속화되고 있는 시대적 상황에서 자사고와 같은 교육제도의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반론을 제기한다.
지난 7월 어느 교육감은 기자회견에서 자사고 폐지는 ‘시대정신’이라고 했고, 또 다른 교육감은 ‘자사고 재지정 취소는 교육감의 권한’이라고 했다. 최근에는 논쟁이 가열되어 교육부의 자사고 폐지 부동의를 두고 일부 교육감들은 ‘교육부에 협조하지 않겠다’고 한다. 대다수 국민과 자녀를 가진 학부모들은 중앙정부와 지방의 교육감이 상호협력과 역할분담을 통하여 교육수요자를 행복하게 하는 교육의 모습을 기대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교육부와 지방 교육감 사이의 갈등은 교육 권력의 우위를 점하기 위하여 투쟁하는 모습처럼 보이지는 않을까 우려된다.
원론적이지만 교육은 개인의 성장과 국가와 사회의 유지·발전이라는 큰 목적을 가진다. 따라서 교육은 정치적 공약이 개혁의 유일한 기준이 될 수 없고 몇 사람의 생각이나 가치관에 따라 수시로 바꿀 수 있는 대상도 아니다. 교육개혁을 하고자 하는 때에는 과거에 대한 성찰과 현재의 교육에 대한 정확하고 면밀한 진단, 그리고 미래에 변화할 사회 모습까지 종합적으로 조망하면서 교육정책이 안정성과 계속성을 유지하도록 하여야 한다.
교육제도 법정주의 원칙
지난달 교육부는 시·도교육감의 자사고 지정취소 동의신청에 대하여 지정취소 절차가 현저히 적정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한 1개교를 제외하고, 나머지 학교는 시·도교육감 결정대로 동의해 주었다. 교육부 보도자료를 읽어보면 부동의한 경우에도 ‘사립학교 법적 지위’나 ‘자사고 지정취소 사무의 성질’ 등에 대한 언급은 보이지 않는다.
헌법 제31조 제6항에서는 ‘학교 교육 및 평생교육을 포함한 교육제도와 그 운영’ 등은 법률로 정한다고 하고 있는데 이를 ‘교육제도 법정주의’라고 한다. 교육제도 법정주의는 교육에 관한 기본적 사항을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직접 입법절차를 거쳐 제정한 형식적 의미의 법률로 규정’하여 ‘국민의 교육을 받을 권리가 행정기관에 의하여 자의적으로 무시되거나 침해당하지 않도록 하고, 교육의 자주성과 중립성도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다(헌재 2001. 4. 26. 2000헌가4).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가 100년 이상 걸렸던 경제성장을 불과 20년 만에 이룬 뜨거운 압축 성장 경험이 있다. 이러한 경제성장은 모든 국민이 교육받을 수 있는 교육조건을 마련하여 중등교육의 보편화를 이루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사립학교는 교육입국이라는 국정운영 방침하에서 공립학교의 제도 기준에 동화되어 학생선발, 수업료 자율결정 등 사립학교의 특수성이 유보되어 있다. 그렇다고 하여 법령이나 판례가 사립학교의 다양성과 특수성을 부인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교육제도 법정주의 원칙에서 자사고 지정 내지는 지정취소 사무는 ‘교육제도에 관한 기본적 사항’이다. 현행 사립학교법령에서 사립학교를 설치·운영하는 학교법인에 관한 사무를 국가사무로 하고 있는 것처럼 사립학교는 국가 통치질서의 카테고리에서 제도 기준이 설계되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정부는 법률에 규정하여야 할 ‘자사고 지정 및 지정취소에 관한 사항’을 시행령에 규정함으로써 불필요한 논란을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향후 입법조치가 필요한 부분이다.
자율형사립고 지정·취소는 국가사무
자사고를 지정하거나 지정취소하는 것이 교육감의 권한이라는 주장에 대한 정확한 법적 해석이 없는 상태에서 우세한 여론은 법적 사실관계에 대한 신중하고 중립적인 논의보다는 여론 그 자체를 사실로 단순화시켜 버릴 위험성이 크다.
결론부터 말하면 자사고에 관한 사무는 교육감의 자치사무가 아니라 기관위임사무이다. 여기서 기관위임사무란 본래 국가사무이지만 지방자치단체의 기관인 교육감에게 위임하여 처리하는 사무이다. 기관위임사무를 처리함에 있어 교육감은 교육부 장관의 하부기관으로서 지위를 가지며, 위임받은 교육감은 수임 및 수탁사무를 처리할 때 법령을 준수하고 성실히 수행하여야 한다. 국가는 시정요구·동의 등의 포괄적인 지휘감독권과 사무 처리가 위법하거나 부당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취소 또는 정시시킬 수 있다. 설령 교육감이 주민의 직접선거에 의하여 선출되었다 하더라도 사무의 성질을 바꿀 수는 없다.
무슨 근거로 자사고 지정 및 폐지가 교육감의 고유사무가 아닌 국가사무라고 주장하는가? 자사고 지정 및 지정취소 등을 규정한 초·중등교육법시행령 제91조의 2에서는 사무의 성질에 관한 언급이 없다. 한편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제20조에서 교육감의 관장사무 17가지를 열거하고 있는데 이 사무가 바로 교육감의 법정자치사무이다. 이 법정자치사무 외에 법령에서 교육감에게 처리하도록 하고 있는 사무가 자치사무인지 아닌지는 당해 사무가 전국적 이해와 관계되어 있는지, 지방적 이해에 국한되는 것인지가 준거가 된다.
본래 공립학교는 지역주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학교로 지역의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지역사회학교였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사립학교는 지역적 범위가 아니라 국가의 통치질서 안에서 존립이나 제도기준이 정해지고 있다. 즉, 공립학교의 존재의의가 지역주민이라고 한다면 사립학교는 국민이 되는 것이다.
2000년대 이후 분권개혁으로 국가와 지방간의 사무 재배분을 추진한 일본의 경우에도 사립학교에 관한 중요한 사무를 자치사무로 하지 않고 국가사무에 가까운 법정수탁사무로 배분하였다. 자치사무와 법정수탁사무 배분 준거(merkmal)는 ‘국가통치의 기본에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무’였던 사례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자율성 사립고 폐지가 시대정신?
일부 교육감과 교원단체는 자사고 폐지를 ‘큰 시대정신의 흐름’이라고 주장한다. ‘시대정신’이라는 개념을 논쟁하기 위하여 헤겔까지 거슬러 올라가 고전적 개념을 새로 환기할 필요는 없지만 ‘시대정신’ 주장에는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사전적 의미로 시대정신은 ‘어느 시대를 지배하고 특징짓는 보편적인 인간의 정신적 태도·양식·이념’으로 정의할 수 있으며, 한마디로 정리하면 ‘사회적 상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사고 폐지가 시대정신일까? 시대정신을 정확하게 해명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공약이나 한시적인 기간 교육행정을 운영하는 몇몇 사람의 이념이나 가치관만으로는 부족하다.
정치변동이나 아이디어로 안정되어가고 있는 사회제도를 일시에 개혁하려는 것도 타당하지 않다. 시대에 지배적인 지적·정치적·사회적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면밀하게 분석하여 나온 결과만이 시대정신이 되는 것이다.
지금 국제사회는 탈공업사회의 급속한 진전과 함께 과학기술혁명 시대에 접어들었다. 이미 이러한 사회변화를 예측한 영국·미국 등의 선진국에서는 학교선택제를 확대하고 교육기관의 설명책임을 강화하여 학력향상을 기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학교유형을 다양화하여 공교육 붕괴를 막는데 정책의 좌표가 향하고 있다. 미국·영국·핀란드 등지에서는 교원 자격을 석사학위로 상향하거나 새로운 연수방법을 고안하여 교육의 질 향상을 기하고 있으며, 교육 거버넌스 개혁을 통하여 종전의 획일적이고 경직적인 학교제도를 유연하고 다양하게 바꾸어가고 있다. 이처럼 몇 가지 국한된 사실을 보아도 자사고 폐지는 ‘교육평등’의 보루가 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시대정신과는 다른 주장이라고 생각된다.
교육의 다양성 확보와 유연한 교육제도가 바로 시대정신
교육제도 기준을 전국적으로 표준화·규격화하면 누구나 교육의 결과가 동일하게 될까? 전국의 모든 학교에는 자격을 가진 교사가 있으며, 국가가 세세하게 규정한 교육과정을 준거로 집필한 교과서로 지도하고 있다.
학교에 배분하는 교육재정도 다르지 않으며 교육환경도 차이가 없다. 그런데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에서 지역 간에 격차는 왜 생기고 있으며 대학진학에서 지역별로 질적 차이가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사고 폐지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먼저 여기에 대한 해답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교육의 결과가 평준화나 규격화된 교육으로 동일하게 나온다는 주장은 이상론이다. 교육의 결과는 다양한 사회문화적 환경조건이 함수가 되어 나타나는 결과이다. 이러한 지역 간 교육격차를 해소하여 교육평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교육의 규격화와 표준화를 복음처럼 생각하는 편견에서 벗어나 교육제도를 더 유연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미국에서 학교선택을 확대한 배경에는 부유층이 향유하고 있는 것과 동등한 권리를 빈곤 지역의 주민도 가져야 한다는 ‘기회균등’ 원리가 작동하였다는 점도 참고할 가치가 있다. 정리하면 교육의 평등은 학교제도의 규격화·획일화로는 이루기 어렵고, 교육재정의 배분과 적극적인 교육비 정책을 통해 실현이 가능하다.
한 가지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2018년 11월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이 협력해서 공동 개발하여 공표한 자사고 평가지표 표준(안) 및 2019학년도 운영성과 평가 안내의 지정취소 판단 기준에서는 일정한 평가를 위해 기준점수를 70점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 기준을 지키지 않고 새로 기준을 만들어 평가하여 지정취소 결정을 내리고, 이를 동의하지 않은 교육부에 소송 제기·불협조 등으로 논쟁을 이어가는 것이 교육적인지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 교육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지방교육행정에 주민의 의사가 반영되고 있으며 정책의 입안이나 집행 등 행정과정은 투명하게 공개되고 있는지 즉, 민주성과 투명성이라고 본다. 교육감이 지역주민의 선거로 선출되는 것 자체를 민주성 확보로 이해한다면 지역주민의 교육에 대한 의사반영은 더 어렵게 되고 교육기본법(제6조 제1항)이 금지하는 ‘개인적 편견을 전파하기 위한 방편’으로 교육정책이 입안되거나 교육행정이 운영될 소지가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