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는 ‘공(空)’인가. 일순 찬란한 섬광을 발하다가 사라져버린. 그러나 그 빛이 너무 눈부셔 역사 속에 영원히 각인된….”
시인 김정환이 ‘상상하는 한국사’에서의 표현한대로 ‘역사 속에 각인됐던’ 고구려가 다시 깨어나고 있습니다. 출판계도 예외는 아니지요. 동북공정 실태가 알려진 지난해부터 ‘고구려 바람’을 타고 나온 책들은 줄잡아 수 십여 권. 현장답사, 벽화 연구 등 저마다 다양하게 고구려를 이야기하지만 고구려 관련서의 핵심은 ‘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한 독립 국가이며, 그 정통성이 한반도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있지 않을까요. 정신문화연구원 이인철 교수 등 역사학자 10인이 쓴 '대고구려역사 중국에는 없다'(예문당)는 여기에 가장 충실한 연구서입니다.
중국이 고구려 역사왜곡에 집착하는 이유를 이 책은 이렇게 짚고 있습니다. 현재 중국을 구성하고 있는 주류민족은 한족(漢族)이지만, 역사를 살펴보면 중국의 권력을 다른 민족이 차지하고 있었던 시기(금나라는 여진족, 원나라는 몽고족, 청나라는 만주족이 세운 나라)가 있었다는 것이지요.
동북지역 일대 역사 논쟁에서 밀리면 원ㆍ청ㆍ금의 역사도 훼손당할 수 있기 때문에, 중국이 고구려사 왜곡에 집착하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원나라가 몽고족이 세우고 통치한 나라이므로 그 시기 중국사는 몽고사에 편입 되어야 한다고 하면 중국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중국과 고구려의 동질성을 찾아보기 힘든 이유로 유전자를 들고 있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유전자 분석결과 고구려인의 유전자는 한족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만주인과 가깝다는 것이지요. 물론 언어의 뿌리 역시 확연하게 다릅니다. 고대유적, 무덤의 형태 등도 확연히 달라 고구려가 중국에서 떨어져나간 민족이 세운 지방정부라는 주장은 근본부터 맞지 않는다고 이 책은 비판하고 있는 것이지요.
일제의 ‘반도사관’을 연상시키는 ‘신(新)중화제국주의’는 위험천만한 발상임에 틀림없습니다. 허나, 정작 누가 고구려를 홀대했던가요. “고구려의 역사를 넘보는 중국의 야욕을 방치하고, 일본 우파의 ‘임나(任那)본부설’에 밀리면 한반도의 역사는 결국 한강만 남아 흐르게 될 것이다….” 이
시(詩)가 ‘상상하는 한국사’만으로 끝나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할 수 있는 지식을 갖추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