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은 배우고 익히는 것이다. 배웠으면(學), 익혀야(習)한다. ‘습’의 소리는 무언가를 들이마실 때 나는 소리 ‘스읍’과 비슷하다. 배웠으면 들이마셔야 하는데, 배움이 느린 학생들은 안 그래도 만만치 않은 ‘학’을 ‘학학학’하느라 ‘습’은 시도도 못한다. ‘습’을 하지 못했으니, 오늘 분명 배웠으나 내일 새롭게 모른다.
배움의 환경은 친절해야
學에는 필요한 조건이 있다. 첫째, 궁금함이 훼손되지 않아야 한다. 학습부진학생 대부분은 표면적으로는 딱히 궁금한 것이 없다고 하지만, 깊게 이야기하다보면 호기심이 훼손당했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대개는 부모건 교사건 궁금해 했던 순간에 주변에서 보여준 반응이 상처로 기억되면서 궁금함을 감추기 시작한다. 궁금함을 표현할 때 당연한 것을 묻는다고 면박을 받으면 궁금하다는 것이 창피해지고, 한번 숨기기 시작하니 다시 꺼내기가 영 어려워진다.
둘째, 그래서 배움의 환경은 극도로 친절해야 한다. 학습부진학생들에게는‘이렇게까지 하면서 가르쳐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친절함이 필요하다. 초등 6학년생들에게 몇 학년으로 돌아가고 싶은지를 물었더니, 학년은 다양해도 이유는 모두 같다. "그때 선생님이 저한테 친절하셨어요." 감정적 기억은 인지적 기억보다 강해서 친절하게 배웠던 장면을 훨씬 잘 기억해낼 수 있다. 내용의 기억보다 감정의 기억이 훗날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다시 한 번 배우고 싶어지게 하는 감정의 기억이 배움을 지속하는 막강한 원천이다.
셋째, 단 한번이라도 제대로 해 볼 수 있는 멍석이 깔려야 한다. 학습된 무기력에 빠진 학생에게 조금만 고민하면 성공할 수 있는 수준의 과제를 제시하고, 해결하는 과정을 기다려주고, 들여다봐주며, "이미 알고 있었네, 멋지다" 등의 추임새를 넣어주는 것인데, 말이 쉽지 실천은 어렵다. 그래도 혹시 학생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는 장면을 곁눈질로 확인했다면 멍석 깔기는 멈출 수 없는 일이 돼버릴 것이다.
習의 대표적 신호는 "아~" 하는 간단명료한 탄성이나, 이 간단한 신호를 얻기 위해서도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표현은 習이 시작되는 첫 단추이다. 수업 중에 관찰되는 학습부진학생들은 학생들의 표현을 끌어내기 위한 과제가 제시되거나 발표 또는 전시의 기회가 제공될 때 숨는다. 자신을 표현하고 드러내봐야 좋은 피드백을 받기 어렵다는 판이 훤하게 보이니 당연한 행동이다. 그러니 이들의 표현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무엇을 알고 있고, 무엇을 놓쳤는지, 도움을 받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등을 ‘개별로’ 물어야 한다. 가까이 다가가 무엇을 원하는지 조용히 물으니 "한 번 더 설명해주시면 이해될 것 같아요.", "알아들을 때까지 설명해주세요."라고 한다. 표현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다.
연습 통해 쌓은 습관의 힘
둘째, 반복되는 사소한 연습들이 누적될 때 習이 이루어진다. 학습부진의 원인 중 가장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습관의 미형성이다. 학습부진학생들은 성취감의 경험이 부족했으며, 규칙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 것에 대한 의미와 중요성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매일 아침 혹은 잠들기 전에는 반드시 해야 하는 무엇이 정해져 있고, 그 수준과 양이 과하지 않으며, 매일 지켜냈을 때의 만족스러운 내적 성취감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 학습을 위한 최소의 근육이 생길 때까지, 사소하지만 하면 할수록 쌓이는 것이 직접 체감되는 과제 제시와 이에 대한 세심한 모니터링은 학습부진학생들의 습관 형성을 지원한다.
학습을 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문제이다. 졸리거나 배고프지 않아야 하며,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이 없어야 하고, 소속감과 존중받고 있음도 느껴야 한다. 그 다음 순서가 學이고 그 다음이 習이다. 사실 대부분의 학습부진학생들은 學習 전 단계부터 치열했다. 그래서 또 다시 상처받지 않도록 친절한 배움이어야 하고, 충분히 씹고 음미하며 삼킬 수 있는 여유로운 익힘이어야 한다. 가르쳤으니 알아들어라? 설명했으니 다 이해했을 것이다? 성인에게도 힘든 일이다. 學과 習의 조건은 성인이 아이들에게 베풀어야 하는 최소한의 교육환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