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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도 '아빠, 어디가?'의 아빠도 모두 X세대이다

<2편> Z세대의 부모, X세대 바로알기

‘자식 맡긴 죄인’은 학부모의 오래된 넋두리였다. 하지만 요즘 학부모들은 다르다. 자녀가 혼났거나, 수업내용에 불만이 생기면 가차 없이 이의를 제기한다. 학교 운영에 전권을 부여하고, 교사의 학생지도에 순응했던 과거 학부모와는 다르게 담임교사와의 관계도 수평적이기를 원한다. 교사의 전문성을 인정하기보다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인다. 더이상 ‘자식 맡긴 죄인’이 아니라 ‘당당한 학교공동체 구성원’으로서 학교의 전반적인 운영에 영향력을 발휘하고자 한다.

 

‘감 놔라, 대추 놔라’ 시어머니 노릇하는 ‘센 학부모’

물론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학교에 부는 ‘치맛바람’은 거세다. 하지만 학부모가 되어 돌아온 X세대의 영향력은 조금 결이 다르다. 과거의 치맛바람이 촌지를 찔러주며 ‘우리 아이만 잘되면 된다’는 이기적 치맛바람이었다면, 지금의 치맛바람은 학부모 커뮤니티나 학교운영위원회 같은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보다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공동체적 치맛바람’이다.

 

‘내 아이가 잘되기 위해서는 학교가 잘돼야 한다’는 생각으로 학부모끼리 커뮤니티를 꾸려 끊임없이 정보를 찾고 토론하며, 방법을 모색하고 시도한다. 학교운영위원회에서 발언권을 높이는 것은 물론 학교 교육에 다양한 의견을 내고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새벽부터 학교에 나와 급식모니터링을 하고, 점심시간에는 학교폭력이 일어나는지 순찰을 돌고, 시험 감독도 마다하지 않는다. 문제가 생기면 막무가내로 큰소리치기보다는 청와대나 교육청 민원실에 요목조목 따져가며 힘을 모은다. 자사고 폐지나 농산어촌 학교 통폐합 등 학교에 위기가 찾아오면 교육청으로, 언론사로 쫓아다니며 학교 살리기에 ‘올인’하기도 한다. ‘위기의 학교’가 ‘학부모의 열정’ 덕분에 되살아났다는 일화도 심심찮게 회자된다.

 

학교는 이런 학부모가 마냥 달갑지만은 않다. 오히려 자주 찾아와 하나부터 열까지 간섭하며 시어머니 노릇을 하는 ‘센 학부모’들이 부담스럽다.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학부모 커뮤니티의 빠른 정보력은 교사의 정보력을 뛰어넘은 지 오래고, 고학력 전문직 학부모의 증가로 특정 영역에서는 교사보다 더 전문성을 발휘하기도 한다. 담임교사와 자녀교육에 관해 사소한 부분까지 공유하기를 원하며, 충족되지 않을 경우 ‘교사의 역할’을 운운하며 서운함을 표출한다.

 

학부모의 세대교체…X세대가 부모로 돌아왔다

학부모 역시 교사가 탐탁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시대가 변했는데, 자신들이 교육받던 그때와 별반 다를 것 없는 교육상황과 교사의 ‘꽉 막힌’ 사고방식이 답답하다. ‘학교와 교사가 변하지 않으면 아이의 미래도 없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내 아이만 잘 봐달라는 것이 아니라, ‘교사라면 모든 아이를 소중하고, 세심하게 돌봐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당당히 교사의 역할과 책임을 강조한다. 교사도 사람이고, 혼자서 30명의 아이를 챙기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하면 ‘핑계’라고 말한다. 도대체 X세대 부모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기에 학생도 학부모도 모두 상대하기 힘든 것일까?

 

‘Z세대’를 키우고 있는 ‘X세대’는 이전 세대가 겪어보지 못한 획기적인 삶의 변화를 학창 시절과 20대에 온몸으로 경험한 세대이다.

 

1983년 시행된 교복 자율화로 교복을 한 번도 입어보지 못한 유일한 세대, 민주화 항쟁을 겪었던 386세대 교사에게 진보적 사회의식을 배웠던 전교조 1세대, 1987년 「남녀고용평등법」 제정을 시작으로 남녀평등사상을 대학에서 배우기 시작한 1세대, 88올림픽 이후 ‘세계화’ 물결을 타고 해외여행이 자유화된 배낭여행 1세대, 1994년 학력고사 대신 수능 제도로 대학에 입학한 수능 1세대, 1994년 대학자율화 정책으로 대학진학률(특히 여성의 대학진학률)이 급속도로 증가한 고학력 1세대, 1995년 ‘5.31 개혁안’을 통해 열린 교육으로 수업받기 시작한 이해찬 1세대, 1995년 ‘윈도 95’와 함께 개인용 PC가 보급되고, 천리안으로 무선통신을 처음 시작했으며, 삐삐와 휴대전화(셀룰러폰) 등 정보기기를 처음 사용한 정보통신 1세대, 1997년 IMF로 인해 ‘대학 졸업=취업’이라는 공식이 깨진 고학력 청년실업 1세대, 그리고 1998년 역사상 첫 정권교체가 이뤄졌던 국민정부 1세대….

 

이처럼 X세대는 한국인의 삶과 가치관이 가장 크게 변화된 1990년대를 관통한 세대이다. 즉, 한국의 새로운 시대를 연 ‘신세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X세대로 불렸던 요즘 40대 부모들은 이전의 40대와는 다르다. 학부모의 세대교체가 시작된 것이다.

 

가족 구성원의 재구조화…엄마의 영역이 사라졌다

X세대 엄마가 이전 세대와 구분되는 가장 큰 차이점은 ‘활발한 사회생활’ 즉, 대학 졸업 후 결혼이라는 공식을 깨고 ‘커리어 우먼’으로 사회에 진출했다는 점이다. 일하는 엄마가 많아지면서 아빠도 변했다. 집안일은 물론 공개수업·일일교사·급식 봉사·청소·교통 도우미 등 학교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아이들 역시 엄마에 의존하기보다는 ‘스스로 해결’했다. 부모는 자녀의 의견이 사회통념상 아주 그릇된 것이 아니라면 자녀의 뜻을 존중해주기 시작했다. 이처럼 엄마의 사회진출은 일방적 부부관계에서 서로 돕는 수평적 부부관계로, 수직적 부모·자녀 관계에서 수평적 부모·자녀 관계로 ‘가족 구성원’의 관계 재구조화를 가져왔다.

 

그래서 X세대 부모들은 학교에서도 학생과 교사, 학부모와 교사의 관계가 수평적이기를 원한다. 자신들이 자녀의 의견을 존중해주는 것처럼 교사도 학생의 상황을 이해하고, 수용하며, 학생 편에서 생각해주기를 원한다. 혹은 자신이 바빠서 해주지 못하는 ‘돌봄’ 기능까지도 학교에서 정성스럽게 해주기를 기대한다.

 

자신의 부모처럼 살지 않는 첫 세대…X세대 엄마, 아빠

두 번째 차이점은 ‘더이상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X세대 엄마들은 출산이나 양육만큼 사회적 성취도 중요하며, 아이 때문에 일을 소홀히 하고 싶지 않다고 강조한다. 이것은 자식을 사랑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남편보다는 내가 제일 소중하기 때문이라고 당당히 말한다. 한평생 가족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온 ‘답답하고 가여운’ 자신의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아빠 역시 마찬가지다. 늘 엄한 가르침으로 대하기 어려웠던 무서운 아버지, 가족을 위해 밤낮없이 일했지만 결국 가족과는 정서적으로 멀어진 바쁜 아버지가 아닌 ‘친구 같은 아버지’로 관계가 설정되기 시작했다.

 

‘친구 같은 아빠’와 ‘자기 계발하는 엄마’는 생활지도에서 치명적인 문제점을 드러냈다. 자녀가 원하는 것을 잘 들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적절한 훈육’이 따라줄 때 아이들은 사회적 규칙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고,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조절하면서 책임감이나 타인에 대한 배려심도 몸에 익힐 수 있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방관에 가까운 부모의 양육으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지 않는 ‘멋대로인 학생’이 많아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학급에서 문제를 일으켰을 때, 우리 아이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혹은 집에서는 전혀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데), 담임교사가 우리 아이를 미워하기 때문(혹은 엄마가 자주 학교에 찾아가지 않으니까)이라고 항변한다. “사실 우리 아이가 담임선생님의 차별 때문에 오랫동안 학교생활을 힘들어했다”는 비수와 같은 말과 함께.

 

사교육 시장을 키운 대학 만능주의…X세대 엄마, 아빠

세 번째 특징은 남다른 교육열이다. 어느 시대에나 부모의 교육열은 뜨거웠지만, X세대는 자녀의 대학진학에 이상하리만큼 집착한다. X세대가 대학에 진학할 무렵, 전국에는 ‘듣도 보도 못한’ 대학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고, 너도나도 대학에 가면서 대학진학률은 80%까지 치솟았다.

 

상고와 공고는 ‘공부를 못하거나, 가난한 집 아이가 공돌이·공순이가 되기 위해 가는 학교’로 전락했고, 인문계고를 나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하지만 윗세대가 대학 졸업과 동시에 탄탄대로의 성공 가도를 누린 것과 달리 IMF 경제위기와 국제금융위기로 취업은커녕 졸업조차 힘들어졌다. ‘대학 졸업이 곧 좋은 취직’이라는 공식이 깨진 첫 세대이다.

 

그래서 자녀가 더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를 희망하고, 대학은 꼭 나와야 한다고 고집 피우며, 아이들을 사교육으로 밀어 넣는다. 아무리 특성화고등학교가 변하고, 많은 혜택을 줘도 ‘인문계고등학교’를 고집한다. 고학력 청년실업률이 해마다 늘어나도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라는 인식에는 변함이 없다. 세상을 살아가는 너무나 많은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녀의 진로지도는 여전히 1990년 ‘장밋빛 미래’에 사로잡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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