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원왕조 종속 지방정권 주장, 고조선 왜곡 조짐
"漢人도 고구려 민족 근원" ‘통일적 다민족론’ 대입
日도 고구려 서술 없고, 백제 신라 건국 4C로 기술 중국 학계가 고구려사를 중국사의 일부로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부터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고구려의 풉물?관할지역이 중국 영역 안이며, 중원왕조에 종속된 하나의 지방정권이라고 주장하며 장차 그 앞의 고조선까지도 왜곡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단군과 고조선 우리의 중학교 ‘국사’는 고조선을 우리 역사상 최초의 국가라 하고 고등학교 ‘국사’는 ‘삼국유사’의
기록을 근거로 기원전 2333년에 건국되고, 그 세력범위는 한반도 북부, 요하유역, 그리고 만주 일대로 표시하고 있다. 고조선을 계승한 위만조선이 기원전 108년 한무제의 공격으로 멸망하고, 고조선의 일부 지역에 군현이 설치되었으나 곧이어 토착민의 반발을 받았다고 하였다.
북한의 역사교과서는 우리에 비해 단군과 고조선의 존재를 매우 강조하고 있다. 북한은 1993년 평양 부근에서 단군릉을 발굴했다고 한 이후, 역사교과서에도 이것을 사실로서 반영하고 있다. 제1학년용 ‘조선력사’는 “단군은 오랜 옛날 이 땅우에 처음으로 ‘조선’(고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운 왕입니다.…단군은 지금으로부터 5000여 년 전에 평양부근인 오늘의 강동 땅에서 태어났습니다.”라 하고, 이 고조선은 전조선(단군조선)은 1500여 년 간, 후조선은 1 200여 년 간, 만조선은 100여 년 간 존재하였다고 하였다.
또한 제3학년용 ‘조선력사’는 3 000여 년 간 존재한 고조선은 “중국 료동지방까지 령토를 넓혀 동방에서 가장 크고 국력이 강한 나라로 그 이름을 떨쳤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설명은 북한 이외의 나라에서는 학문적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으며, 다분히 정치 사회적 목적을 위해 ‘교육’과 ‘역사’를 이용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단군과 고조선을 중국과 일본의 역사교과서는 어떻게 서술하고 있을까. 먼저 중국 역사교과서에는 단군과 고조선에 대한 직접적인 기술을 찾을 수 없다. 진나라에 이어 통일왕국을 세운 한나라 동북지구의 소수민족을 설명하면서 “오환과 선비 등의 소수민족”이 살았다고 할 뿐 고조선은 생략하였다. 서한(기원전 206-기원후 24년)의 강역을 표시한 지도도 고조선 멸망 이후 한반도의 중부 이북으로부터 요동지역을 한나라의 영역으로 표시하며 한사군의 존재를 나타내고 있을 뿐이다.
일본은 1980년대 역사교과서는 본문이나 지도상으로 고조선을 분명히 서술하였지만, 최근에는 관련 내용이 대폭 삭제되었다. 일본서적의 중학교 역사교과서가 ‘조선의 시작’이란 항목에서 기원전 10세기경 “나라의 도읍을 고조선으로 부르고 있다”고 고조선을 언급하고 있지만, 그나마 고조선을 국가가 아닌 도읍으로 잘못 서술하고 있다.
<중국교과서의 기원전 강역도>고등학교 역사교과서는 대부분 위씨조선과 한사군을 기술하고 있다. 가령 제국서원 출판사의 ‘신편 고등세계사’B에는 “조선반도에서는 기원전 4-3세기에는 토착 정치집단이 성장하는 한편…중국 유민 출신인 위만이 위씨조선(기원전 190-108년경)을 건국”한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일본의 학생들은 한국사의 시작이 중국 유민 출신인 위만이 세운 위씨조선으로부터 시작되며, 이것도 108년 한사군으로 대체되었다고 이해하고 있다.
삼국의 건국시기삼국 중에서 가장 먼저 나라의 모습을 갖춘 것은 고구려였다. 중학교 ‘국사’는 고구려가 압록강 지류인 동가강 유역의 토착민들과 힘을 합하여 기원전 37년에 나라를 세웠다고 하였다. 4세기 미천왕때 요동지역으로 세력을 확대하고, 5세기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때에 만주지방과 한반도 중부 지방에 이르는 광대한 영역을 확보하였다고 하였다. 백제는 마한의 한 나라인 백제국으로부터 기원전 18년에 시작되었고, 신라도 진한의 여러 나라의 하나인 사로국에서 기원전 57년에 건국되었다며 ‘삼국사기’의 기록을 따르고 있다.
북한 ‘조선력사’ 교과서는 우리보다 삼국이 훨씬 이전에 건국된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고구려는 주몽이 즉위한 갑신년이 기원전 277년이라며 이때 고구려가 건국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고구려의 건국연대에 맞추어 주몽의 아들인 온조가 BC 3세기 중엽에 백제 봉건소국을 세우고, BC 1세기말에 완전한 봉건국가로 되었다고 하였다.
현행 중국 역사교과서에서 삼국은 매우 간략히 언급되고 있어, 학생들이 그 존재를 알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중학생들이 배우는 ‘세계역사’ 제1책에서 “조선민족은 예로부터 조선반도에 거주하였다. 기원 전후 조선반도 북부를 통치한 것은 고구려 노예제국가이다. 그 후, 반도의 서남과 동남부는 또한 전후로 백제, 신라 두 개 노예제국가가 출현하였다”고 하는 것이 그 내용이다.
그러나 중국사를 기술한 ‘중국역사’ 본문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없다. 즉 중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인민교육출판사의 ‘중국역사’ 제2책은 2001년판의 각주에서 조선반도에 고구려, 백제, 신라가 있었다고 한 것마저 생략하고 “수조와 당조 초년, 조산반도상의 국가와 중국은 모두 왕래하였다”고만 기술하고 있다.
일본의 역사교과서는 중국에 비해 삼국의 설명이 ‘조금’ 많다. 동경서적의 중학교 역사교과서는 한국사의 첫 국가를 고구려로 표시하고, 건국시기는 기원전후로 기술하고 있지만, 백제와 신라는 이보다 훨씬 뒤진 4세기 무렵에야 건국된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
고구려의 주민구성삼국의 민족에 대해서 중학교 ‘국사’는 우리민족을 ‘한민족’이라 하고 고구려의 지배세력인 ‘부여계통의 이주민’이 동가강 유역의 토착민들과 힘을 합하여 나라를 세웠다고 하였다. 백제와 신라에 대하여 고등학교 ‘국사’는 한강유역의 토착세력과 고구려 계통의 유이민 세력의 결합으로 백제가 성립되고, 신라는 경주지역의 토착민 집단과 유이민 집단의 결합으로 건국되었다고 하였다.
북한의 제3학년용 ‘조선력사’는 고구려는 처음에 단군조선의 후국이었던 구려에서 시작되었는데, 고주몽을 우두머리로 하는 “부여왕실에서 갈라 져 나온 한 집단”이 세웠다고 보았다. 백제는 고구려에서 갈라져 나온 사람들이 세운 작은 나라라 하고, 신라는 그 건국 이야기인 박혁거세와 6부 촌장 전설을 고조선과 고구려 사람들의 이주로 설명하고 있다.
중국의 교과서는 삼국의 건국이나 그 민족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조선민족’이라고 포괄적으로 기재하고 있다. 중학교용 ‘세계역사’ 제1책에서 “조선민족은 예로부터 조선반도에 거주”하고 조선반도 북부에 고구려가, 반도의 서남과 동남부는 백제와 신라가 출현하였다고 할 뿐이다.
그러나 중국 학계의 고구려민족 연구는 이와 다르다. 고구려민족이 예맥 혹은 부여계 사람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은 우리의 주장과 유사하지만, 가장 큰 차이는 이들만이 고구려민족이라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고구려가 건국 후 복속한 수많은 주민들도 고구려민족의 일원이라는 전제하에 숙신인, 선비인, 옥저인, 동예인, 고조선인, 한인(韓人), 거란인, 백제인, 그리고 한인(漢人)도 고구려민족 형성의 주요 근원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중국의 고구려민족관은 중국의 통일적 다민족론을 대입한 것이며, 이것은 ‘고구려민족’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고구려국인’에 대한 설명에 가깝다.
일본의 실교출판사의 ‘고교세계사B’는 “기원전후 무렵 반도 이북에 맥족(貊族)의 일파가 고구려를 건국”했다고 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본의 학생들은 고구려가 맥족에 의해 건국된 것으로 배운다. 그러나 백제와 신라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기술이 없고, ‘신편 고등세계사B’에서 “남방에서 마한·진한·변한 등의 제집단을 형성한 한족이나 예족”이라며 한족과 예족을 언급하는 것이 그나마 눈에 띄는 설명이다.
고구려의 최대 영역 중학교 ‘국사’는 고구려의 최대 영역을 장수왕 말기인 5세기말에 남쪽은 아산만에서 소백산맥을 넘어 영일만을 연결하는 지역에 미치고, 요동을 포함한 만주 땅을 차지한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
북한은 고구려가 강성한다는 지표를 그 영역의 광대함에서 찾고 있다. 제3학년용 ‘조선력사’는 고구려의 최대 영토가 6세기 중엽, 남쪽으로 서해의 아산에서 동해의 영덕 일대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중국의 대릉하계선, 북쪽으로는 송화강 일대가 경계가 되니, 그 넓이가 56만㎢를 차지하였다고 하였다. 심지어 서쪽은 덕흥리 고분벽화를 근거로 베이징부근까지 갔다고 하였다.
중국 역사교과서에서 고구려의 영역은 수나라의 영역을 표시하는 지도상에서 찾을 수 있을 뿐이다. 수나라 동쪽에 고구려를 ‘고려’라 표시하고 양국은 요하(遼河)를 경계로 삼고 있다. 우리의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학생들이 배우는 ‘중국고대사’도 ‘고려’를 비롯한 백제, 신라를 수나라와 달리 같은 색으로 표시하며, 한국사로 간주하고 있다.
일본 역사교과서도 고구려의 영역 서술은 거의 없고, 동아시아를 표시한 지도에서 대략적인 윤곽을 유추할 수 있을 정도이다. 고구려의 전성기를 5세기 혹은 6세기라고 할 때, 이 시기 고구려는 남쪽은 한강유역을 경계로 백제, 신라와 접하고 서쪽은 요동지역을 포함한 만주 남부지역을 차지하고 있다.
고구려 왜곡, 그 후 고조선과 고구려를 비롯한 삼국에 대한 중국과 일본 역사교과서의 내용은 우리의 기대와 너무 차이가 난다. 고조선의 경우, 중국은 전혀 기록하지 않고 한사군만을 중점적으로 지도에 표시하고, 일본은 위씨조선을 서술하고 있다. 삼국도 중국은 거의 관련 내용이 없을 정도이고, 일본이 고구려가 맥족에 의해 기원전후 건국되고, 백제와 신라는 4세기 전후에 세워진 것으로 편년하고 있다.
<중국교과서의 삼국표시>
이와 같은 기형적인 한국사상은 일본보다 중국이 더욱 심하다. 가령, 현재 사용하고 있는 중국의 역사교과서의 본문에서 볼 수 있는 고구려 내용은 ‘수양제의 폭정과 수의 멸망’이라는 단원에서 양제는 “크고 공을 세우기를 좋아하여, 세 번 고려를 쳐서, 사병의 태반이 사망”(중국고대사)케 하고, 혹은 “연이어 고려에 대한 전쟁을 발동”(중국역사, 2001)하여 수의 멸망을 재촉하였다는 부분이 유일하다.
지난 시기에 비하여 최근의 교과서는 고구려에 대한 설명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렇지만 과거 발해사 왜곡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최근의 고구려사 왜곡도 향후 역사교과서에 반영될 것이 분명하므로, 이것에 대한 다양한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 다음 회는 ‘발해의 국가성격과 한국사의 관계’입니다.
/임상선 고구려연구재단 부연구위원
balhae@koguryo.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