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PO에 맞는 옷차림 좀 하세요.”
TPO는 때(Time), 장소(Place), 상황(Occasion)의 약자이다. 줄임말이 낯설다 느낄 수도 있지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초등학교 실과 시간에 배웠을 옷차림의 기본 원칙이다. 실제로 실과 교육과정에는 ‘옷의 기능을 이해하여 때와 장소, 상황에 맞는 옷차림을 적용한다’는 성취기준이 있다.
교사에게 TPO란 ‘수업시간에, 학교에서, 학생들과 만난다’이다. 어린 학생을 만나고 그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특수성이 교사의 옷차림에 영향을 미친다. 해리 왕·로즈메리 왕의 <좋은 교사 되기>에서는 좋은 교사를 만드는 조건에는 긍정적인 기대가 있으며, 그 기대 요소 중 하나가 교사의 옷차림이라고 했다. ‘성공하는 교사의 옷차림’이라는 챕터에서는 교사는 옷을 잘 입는 만큼 인정받을 수 있으며 학생들에게 ‘옷으로 말하는 효과’가 있으므로 전문적이고 신뢰감 있는 옷차림에 신경 써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옷으로 말하는 메시지가 있다는 점은 2020년에도 변함없다. 그러나 이 책이 미국에서 <The First Days of School: How to be an Effective Teacher>이라는 제목으로 발행된 시기가 1991년이었다는 사실은 새로운 의문을 남긴다. 30년 전 미국 교사의 스타일, 한국에 번역되어 나온 2013년 한국 교사의 스타일과 2020년 한국 교사들이 추구하는 스타일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을까?
성공적인 교사의 옷차림에 대한 기준을 묻다
전문성과 신뢰감을 담은 교사의 옷차림이란, 어떤 스타일을 말하는 걸까. 2030 교사들도 여성이라면 블라우스와 슬랙스, 또는 H라인 스커트를 떠올리고 남성이라면 셔츠에 정장바지를 떠올릴까?
2011년 첫 발령을 받았을 때 필자는 매일 정장 투피스나 바지정장에 블라우스를 입고 다녔다. 부모님이 새로 마련해주신 옷 세 벌 정도를 매일 돌려 입었다. 우리 반 학생은 “선생님은 왜 맨날 이런 옷만 입어요?”라고 물었지만, 선배 선생님들은 “신규교사로서 용모 단정하고 자세가 되었다”라고 하셨다.
10년이 다 된 지금, 그때의 나를 솔직하게 돌아보자면 나는 단지 사회초년생으로서 금전적 여유도 없었고, 전문적인 느낌을 주면서도 멋스럽게 꾸밀 만한 패션감각이 없었던 것뿐이다. 그럼에도 다른 패션을 시도하지 않고 신규 1년간은 정장스타일로 입었던 이유는 ‘신규’라는 이유로 ‘비전문적’이라거나 ‘권위가 없다’는 이미지를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 그때는 옷차림이 주는 후광효과를 활용한 셈이다.
일 년 내내 블라우스와 정장의류를 입고 다녔던 나는 조금씩 니트 등 편안한 복장을 입기 시작했다. 6학년 담임을 한 2년 차부터는 검정색 바람막이 점퍼를 교복처럼 입고 다녔다. 안에는 캐릭터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을 때도 많았다. 기억 속 나는 6학년 아이들과 춤추고, 매일같이 체육 등 바깥 활동을 하며, 책상과 사물함 위를 오르락내리락 한 적이 많았다. 복장이 편해야 활동이 편하고, 학생들과 마음 편히 교감할 수 있다는 생각이 강했다. 어쩌면 교사의 권위란 옷차림에 힘을 준다고 생기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옷차림이 편했던 그 시절 나는 그 어느 해보다도 학생들과 가까웠다. 성공적인 교사의 옷차림이란 해에 따라 학급 분위기와 교사와 학생 간 상호작용 방식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는 결론을 조심스럽게 내본다.
인터넷 교사커뮤니티에 종종 ‘출근 복장으로 트레이닝복은 안 되나요?’ 같은 질문이 올라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편하게 입고 싶은데 안 좋게 보이겠냐는 질문이다. 이런 질문은 유난히 많은 조회수와 댓글 수를 기록한다. 댓글의 관점은 매우 다양하다. ‘학교도 직장이니 TPO를 지켜야 한다’는 의견도 있고 ‘학생이랑 생활하는 게 교사의 일이므로 학생과 생활하기에 교사가 편하면 된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이런 질문을 올린 교사가 한 번 더 확인과 인정의 단계를 거치기 위해 글을 썼다는 사실, 수많은 댓글과 좋아요(공감표시)가 ‘교사다운 복장이 갖추어야 할 요건이 있다’는 의견에 동의한다는 점은 시대가 변했다고 해도 많은 교사가 자신의 직업과 복장의 역할을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물론 ‘교사의 복장이 조금 더 자유로워야 할 필요가 있다. 옷부터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반대의견 못지않게 많다.
쌤스타그램과 교단 사이, 자기표현의 욕망이 있다
교사 Y는 교무실에 가기가 무섭다. 자기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길이의 치마를 골라 입는 것뿐이고 실제로 요즘 옷가게에서는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정장 스커트를 찾기가 힘든데 교감선생님께 옷차림에 대해 지적을 받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교사 H는 히피펌을 했다가 “단정치 못하다, 웬 보헤미안이냐”는 뒷말을 들었다. 교사 J는 밝은 갈색으로 염색하고 파마를 했다가 교감선생님에게 ‘남자가 무슨 파마 염색이냐’는 말을 들었다.
이런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문제는 단정함의 기준이 합의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이 평소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수준의 복장까지 지적받고 바꾸길 강요당할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도 스트레스라는 점이다. 특히 ‘이 정도가 왜 문제가 되는가’라는 의문이 생길 때는 더욱 내적·외적갈등이 깊어진다.
교사로서 문제가 되지 않는 복장이라는 기준에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쌤스타그램을 보면 알 수 있다. 사진 위주의 SNS인 인스타그램에는 #쌤스타그램 이라는 태그를 단 사진이 많이 올라온다. 쌤스타그램이라는 태그를 꼭 학교 교사만 붙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교무실 책상, 교실 칠판 앞에서 셀카로 찍은 사진들은 그 중 상당수가 학교 교사들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쌤스타그램 속 교사들은 회색이나 밝은 노란색 머리로 탈색한 경우도 있고 평소 학교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복장보다는 학교 밖에서 노출된 복장을 하고 있기도 하다. 학교에서 레깅스나 조금 편안한 수준의 평상복 같은 트레이닝복을 입은 경우도 많다. 화려한 네일아트도 이제는 익숙한 멋내기 옵션이다. 특히 여행 중인 교사들의 모습은 더 자유롭다. 여성은 짧은 반바지, 끈으로 된 민소매 원피스나 탑 스타일의 상의를 입은 경우도 많고 남성은 민소매 상의에 반바지를 입은 경우도 많다. 이런 스타일은 이미 많은 이들에게 ‘부적절’하지 않은 흔한 패션 스타일이다. 그들은 멋스럽기도 하고 자유로운 느낌까지 주는 ‘힙한’ 패션코드가 자신에게 어울리면 당당하게 취한다.
2030 교사들은 대중문화나 해외 경험 등의 영향으로 선배세대보다는 더 다양하고 개방적인 패션스타일을 접하고 실제로 직접 선택하기도 한다.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면 타투 또한 보수적인 시선을 고려하여 교사로서 드러내놓고 하기 힘들 뿐, 관심을 가지고 언젠가 할 계획이 있거나 보이지 않는 곳에 이미 한 교사들도 있다.
다른 직업을 가진 젊은 세대에게 패션코드로 읽힐 수 있는 모든 수단은 2030 교사들에게도 자기표현의 수단이 된다. 교사의 복장에 대하여 사람마다 한계로 설정해놓은 내면의 기준은 있겠지만, 2030 교사 인구 전체를 놓고 본다면 그들이 관심을 갖는 패션에는 사실상 한계가 없다. 그러니 ‘문제 되지 않는 복장’에 대한 생각이나 한계선도 다양하고, 가끔은 그런 개성이 학교 안에서는 무난함과 난해함의 경계에 놓이는 경우도 생기는 것이다.
존중의 기준에 대하여
밀레니얼 세대와 비슷한 개념인 N세대 교사는 최근 10년 이내에 교직에 들어선 세대를 말한다. N세대 교사의 교직생활에 관한 질적 연구결과에 따르면 N세대 교사들은 복장에 대해 ‘구성원으로서의 나’보다는 ‘개인으로서의 나’를 표현하는 일환으로 눈치껏 ‘적당한 수준으로 튀지 않을 정도로만 차려입으려는’ 경향을 보인다. 연구 대상으로 참여한 교사들은 학부모 앞에서나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단정하게 입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너무 파격적이지만 않으면 찢어진 청바지도 입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도 교사로서 학생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직장에서 허용되는 수준에 맞추기 위해서라는 점에서 ‘교사다운 복장’을 강조한 선배세대와 다른 판단기준을 가지고 있다고 연구는 밝혔다.
2030 교사들은 학교 안팎의 패션에 대한 온도 차이가 분명 있음을 느끼고 가급적 학교와 사회가 요구하는 ‘교사의 TPO’에 맞는 복장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가끔 모호한 기준이 차별적으로 적용된다고 느낄 때는 그들도 저항하고 싶은 마음을 느낀다. 교사 B는 스포츠 브랜드의 갈색 슬리퍼를 교내용 실내화로 신었다. 동학년 선배교사가 어느 날 “디자인이 단정치 못하니 다른 디자인의 검은색 슬리퍼로 바꿔 신으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교사 B가 분개한 것은 단순히 복장 지적을 받았다는 점이 아니었다. 다른 고경력 교사는 매일 등산복을 입는 데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교사 B는 반감을 느낀다.
2030 교사들의 패션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 실행력은 확실히 선배세대와는 조금 다르다. 단정함이라는 말로 합의되지 않은 기준을 강요하기보다는 차이를 존중하고 인식의 틀을 넓히면 교사가 학생에게 옷차림으로 전할 수 있는 메시지도 더 다양하고 창의적일 수 있다. 다만 경력이나 성별에 따라 다른 기준으로 바라보지는 않는지에 대한 성찰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