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서 3학년 꺾고 메달 획득…내·외면 강한 선수
아버지 돌아가시고 어머니 연락 끊겨…생계 막막
“장학금으로 운동복 사고 고기도 마음껏 먹고파
쌍둥이 동생과 같은 대학 진학해 운동하는 게 꿈”
[한국교육신문 김예람 기자] 지난달 24일 인천체육고 레슬링부에서 만난 류가람(2학년) 군은 ‘단단한 돌멩이’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선수였다. 지난해 제46회 대통령기 전국레슬링대회에서 고1짜리가 3학년 형을 월등한 점수 차이로 꺾고 57kg급 동메달을 땄을 때도, 중3 때 같은 대회에서 한 차례 금메달을 차지한 이력만 봐도 이미 그가 외적인 실력 면에서는 충분히 ‘단단한’ 선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류 군의 진짜 매력은 ‘단단한 내면’에 있다. 트라우마와 부상, 어려운 가정환경까지 어린 나이에 이 모든 일을 겪기에는 버거웠을 것이 분명한데 그는 “처참한 일을 겪으면 겪을수록 점점 더 단단해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새벽과 오후, 야간 2시간씩 빽빽하게 돌아가는 운동 일정도 굳건하게 버텨내며 기량을 갈고닦는 모습에 흔들림이 없어 보였다.
강지훈 감독은 류 군이 ‘시합형 선수’라고 했다. 주특기는 상대의 기술을 역으로 이용하는 ‘목 감아 돌리기’다. 인사이드 태클을 정면 태클로 바꾸는 등 다양한 기술로 연결하는 것도 장점이다. 강 감독은 “가람이는 배운 기술을 응용하는 능력이 좋고 대회에서 느끼는 긴장감을 즐길 수 있는 선수”라며 “운동 센스와 성실함을 모두 갖추고 있어 미래 성과가 기대되는 학생”이라고 말했다.
류 군의 꿈은 레슬링 국가대표 선수나 UFC 프로 선수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7월 아버지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그의 삶은 뿌리째 흔들렸다. 어머니는 어렸을 적 가정을 떠나 연락이 두절 됐기에 아버지의 부재는 큰 충격이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큰 형이 아버지 역할을 대신하게 됐지만 함께 레슬링 운동을 하는 쌍둥이 동생까지 있어 삼형제끼리 생계와 운동을 병행해 나가기에는 어려움이 컸다.
“그동안 말은 못했지만 남들이 훈련 끝나고 잘 때 몰래 세탁실에서 내일 입을 운동복을 빨면서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요. 훈련 끝나고 배고픔을 이기기 위해 물로 배를 채운 적도 있었고요. 쌍둥이 동생이랑 저랑 먹는 양이 많은데 양껏 먹지 못하는 것도, 운동복이 부족해 빨래를 자주 해야 하는 것도 힘들었는데 이제는 적응돼서 견딜 수 있어요.”
류 군은 올해부터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아이리더’에 선발돼 장학금을 받게 되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덜고 운동에 매진할 수 있게 됐다. 그는 “장학금으로 부족했던 트레이닝복도 구입하고, 라면만 먹을 것이 아니라 고기도 실컷 먹어보고 싶다”며 “체력보강을 위한 프로틴이나 영양섭취에도 신경 써서 훌륭한 선수가 돼 형의 부담을 덜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레슬링 트라우마와 부상을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확고한 운동관이 생겼다고 했다. 상대방의 빈틈을 이용해 태클을 들어가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공격이지만 언젠가부터 태클을 들어갈 때마다 밑에 깔릴 것 같고 다칠 것 같은 두려움이 생겨 운동을 그만두려는 생각까지 했었다고. 류 군은 “코치님이 태클을 더 들어가보고 당해보기도 하는 등 1년 동안 반복적으로 훈련을 해주시며 제가 극복할 수 있도록 끝까지 기다려주신 덕분에 중3 때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다”며 “포기하지 않는 힘의 원천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운동을 하다가 쇄골이 골절됐던 때도 많은 동기가 생겼다. 쌍둥이 동생을 비롯한 친구들 모두 기량이 좋아지는 동안 자신만 퇴보하는 듯한 느낌을 받은 것이다. 그는 “회복을 위해 갖은 치료와 보조운동에 최선을 다했다”며 “재활 후 본 운동에 참여할 때는 절실함이 생겨 벌어진 실력 차이를 따라잡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한 덕에 금방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경험으로 생긴 그의 운동관은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류 군은 현재 쌍둥이 동생과 한국체육대 진학을 목표로 레슬링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가정 형편 때문에 고등학교는 따로 왔지만 대학은 나란히 진학해 함께 운동하고 싶다고. 동생들을 위해 밤낮으로 일하며 묵묵히 챙겨주는 큰형을 위해서도 장학금이 헛되이 쓰이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살면서 힘든 일이 많았다고 골치 아프게 생각이 많아지면 저만 힘들어지잖아요. 그래서 일부러 더 단순해지려고 해요. 단단한 돌멩이처럼요. 시합 나가면 ‘이겨야겠다’ 이 생각만 해요. 그러면 연습 때 안 되던 것도 시합 때 써보면 다 돼요. 훈련도 힘들다 생각 안 해요, 일상이니까요. 지금처럼 다른 말에 휩쓸리지 않고 쭉 나의 길을 가고 싶습니다.”
※한국교육신문이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인재양성사업 ‘아이리더’의 지원을 받는 아동들을 소개합니다. 지금까지 학업·예체능 등 다양한 분야에 잠재력 있는 저소득층 아동 556명에게 약 123억 원이 지원됐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후원과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전용 후원 계좌
국민은행 102790-71-212627 / 예금주: 어린이재단
기부금영수증 신청 1588-1940
■이 학생도 주목해 주세요=류가람 군 취재 때 강지훈 감독의 소개로 만난 인천체육고 모아이즈(2학년) 군에게 안타까운 사연이 있어 함께 소개한다. 그는 어머니가 러시아 국적인 다문화 학생이다. 2000년에 한국에와 레슬링에 입문한 그는 뛰어난 운동신경 덕분에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문체부, 회장기, 대통령기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각종 대회에서 빛을 발하며 이목을 끌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에 임하며 대한민국 대표로 올림픽에 출전하겠다는 포부가 생겼지만 한 가지 걱정은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적이 없다 보니 전국체육대회에도 출전할 수 없는 상황이 됐고 모아이즈 군은 이런 현실을 매우 힘들어하고 있다고. 한국인 아버지의 직장도 불안한 상황이며 어머니도 몸이 불편해 잠시 일을 쉬고 있는 등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는 훗날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대회에 출전하는 것을 목표로 지금 이 순간에도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