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봄이 왔습니다. 경남의 소도시에는 거리마다 벚꽃나무의 분홍 물결이 눈부십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무채색으로 보이던 도시에 환한 꽃들이 잔치를 하고 있습니다. 아, 눈물이 날 듯 반갑고 고맙고 장합니다. 꽃을 시샘하는 바람이 지나가자 꽃잎 하나가 팔랑하고 제 옆으로 떨어집니다. 저는 며칠 전에 읽는 신카이 마코토의 소설 속 장면을 기억하였습니다.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 초속 5센티미터래”
아카리와 그녀를 좋아하는 소년 타카키의 모습이 환한 꽃 속에서 생각났습니다. 초등학교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아카리의 전학으로 헤어지게 됩니다. 아카리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지내던 다카키는 먼 가고시마로 전학을 가게 됩니다. 그래서 아카리를 만나러 가지만 폭설로 인한 전철이 4시간 늦어집니다. 아카리는 보온병에 담긴 차와 직접 만든 도시락을 가지고 늦은 밤까지 대합실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읽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첫사랑의 만남입니다.^^
그러나 첫사랑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타카키는 전학 간 가고시마에서 자신을 쫓아다니는 고교생 카나에에게 마음을 열지 못합니다.
어른이 타카키는 우울하고 외로운 도쿄에서 직장에서도 연인에게도 정착하지 못합니다. 멀어져 버린 공간,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시간, 그리고 타카키와 아키리 사이의 물리적 거리는 자꾸만 멀어져 가고 그는 점점 자신의 담을 쌓아갑니다.
이 책은 원작이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작품입니다. 소설로 읽어도 참 좋습니다.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타카키와 아키리가 살아가는 속도는 서로에게 다가가기 위한 속도일까요? 어느 정도 속도로 살아야 주변 사람들에게 마음의 거리를 좁힐 수 있을까요? 저는 이 글에서 ‘속도’라는 단어에 주목하였습니다. 사전적 의미는 ‘물체가 나아가거나 일이 진행되는 빠르기’입니다. 고속화도로, 고속버스, 고속충전 이런 단어들이 일상적으로 쓰이는 현대는 속도의 시대입니다. 그렇지만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 초속 5센티미터, 비는 초속 5미터, 구름은 초속 1센티미터’라고 소설 속에서 아카리는 말합니다. 두 속도 사이의 균형이 필요해 보입니다.^^
봄이 속도위반을 하며 다가섭니다. 뭉게뭉게 피어나는 꽃구름 같은 봄 풍경이 반갑고 고맙고 사랑스럽습니다. 제 마음은 어느새 빛의 속도로 물들어 버립니다. 행복하고 아름다운 봄을 기쁘게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초속 5센티미터』, 신카이 마코토 지음, 대원씨아이,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