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을 애용하는 어머니 영향으로 외국에 가서도 시장을 찾아다니는 편이다. 한국에서는 양양·보성·예산·용문 등 시골 5일장을, 외국에서는 특이한 시장을 찾아다닌다.
봄바람 살랑거리는 4월에 오만에 있는 동물시장엘 갔다. 목요일에 한 번 열리는 시장을 이란에서도 가본 적이 있는데 ‘니즈와 시장’은 특이하게 동물들을 사고파는 시장이다. 일주일에 한 번 문을 여는 니즈와 동물시장. 무슬림에게는 금요일이 우리네 일요일 같은 날이라 우리네 토요일 같은 목요일에 문을 연다.
시장을 보기 위해 수요일 오후 무스카트에서 차를 몰아 니즈와에 도착했다. 4월이라고 해도 중동지역은 여전히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시기다. 낮에는 거의 돌아다니기가 힘들고 해가 없는 시간에 움직여야 할 만큼 한국과는 비교가 되지 않은 사막의 더위다. 그래서인지 오만에서는 시장도 아주 이른 시간에 시작된다.
니즈와는 동물시장 말고도 세라믹 제품으로 유명하다. ‘수크’라고 불리는 시장 입구에는 다양한 크기의 제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니즈와에 온 기념으로 하나 사보려고 했는데 한국 세라믹 제품에 비하면 다소 정교함이 떨어져 보인다. 그리고 한국까지 가져가다가 흠집이 날 가능성이 커 보였다.
흙이 좋은 마을이라 그런지 흙집이 많이 보였다. 무너진 집들도 많았지만, 여전히 흙집들이 골목을 채우고 있었다. 심지어 하룻밤을 지내는 숙소도 흙으로 지은 2층짜리 건물이었다. 골목을 걷는 일은 마을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고 현지인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엄청난 열기에 걸어 다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흙집이 주는 그늘을 따라 걸었다. 한국에서는 황톳집을 지어서 건강해지려는 사람들이 많은데 여기는 모든 집이 황톳집이다. 니즈와 사람들은 왠지 건강할 것만 같다.
다음날 새벽 5시, 달빛에 의지해 시장에 도착했다. 어제 낮에 느꼈던 그 열기는 온데간데없고 쌀쌀한 바람과 고요함이 불었다. 배낭에 넣어 온 바람막이 점퍼를 꺼내 입었다.
시장은 원형을 이루고 있다. 바닥은 자갈밭이고 가운데 나지막한 무대가 있다. 무대에는 사람들이 빼곡히 앉았고 자갈밭을 사이에 두고 사람들이 서 있다. 동물을 싣고 온 차들이 하나둘 경적을 울리며 도착했다. 자갈 깔린 길이 사람과 동물로 가득 채워졌다. 동물을 살 사람은 예리한 눈빛으로 동물을 주시하다 마음에 든 동물이 보이면 주인을 불러 동물 이곳저곳을 살폈다. 구매자가 시장을 돌아다니며 동물을 사던 중앙아시아 동물시장과 상반된 풍경이다.
시장에는 동물을 사고파는 사람만 있는 건 아니었다. 오랜만에 친구나 친척을 만나 밀린 이야기를 나누느라 동물은 안중에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얀 전통 옷을 입고 전통 모자를 쓴 남자들 사이에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두 명을 보았는데 남편과 시장에 함께 나온 듯 보였다. 무슬림 여자는 이런 공개된 장소에 나올 수 없는가 보다.
사람과 동물이 돌고 있는 길은 자갈길이라지만 먼지가 엄청났다. 이른 새벽 씻지도 먹지도 않고 나와 있다 보니, 졸리고 배고픈 시간이 이어진다. 먼지를 가득 뒤집어썼더니 돼지고기가 생각난다. 그렇지만 무슬림의 나라, 오만에서 돼지고기는 언감생심이다.
시장은 9시 정도가 되자 파했다. 숙소로 가는 길목에 무기를 파는 노점들을 만났다. 무기라고 하니 무지막지한 무기를 판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오만 남자들이 평소 차고 다니는 큰 칼과 총구가 긴 총을 팔고 있었다. 한국에서 이런 큰 칼을 차고 다니려면 관공서에 신고해야 하지만 오만에서는 휴대폰 들고 다니듯 그저 평범한 일상이다.
무기 노점상 옆으로는 채소시장이 있다. 우리네 전통시장처럼 주변 작은 마을에서 물건을 가지고 나온 사람들이 적당한 공간에 물건을 펼쳐놓고 있었다. 덩치가 큰 남자들이 물건을 흥정하는 모습을 한참 보고 있는데 채소시장에도 여성은 한 명도 없었다.
남자들이 동물도 채소도 다 사다 주니 오만 여자들은 집에서 집안일만 하며 살아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골 5일장 돌아다니며 흥정하는 거 좋아하시는 어머니는 오만에 함께 오면 안 되겠다.